Update : 2026-11-0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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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타인 불행 파먹는 이상주의 희망 속 분배정의 암약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63>]-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 오만한 민중(1)
이념적 민중의 배반적 이중성···노동자 깃발 내걸고 일가치 소홀
무책임한 분배 평등론 빠진 오만···불평등 귀족의식에 쉽게 추락
알앤알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6-09 10:37:02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Q. 이념적 민중 이외에 민중은 없다고 하면서 오만한 민중의 의미는
  
A. 민중을 자처하는 민중은 이념적이다. 이는 가공적이며 인공적이기에 허상일 뿐이다. 이들 민중은 약자를 자처하면서 강자가 될 기회를 잃거나 심지어 버리기까지 한다. 약자논리인 상생·협력, 강자논리인 책임·사랑이 이념적 민중에는 없거나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념적 민중은 적대 전선을 형성해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을 촉발시켜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분배와 평등을 정의로 내세운다. 부가가치의 근원이자 공동선 가치인 일은 당연히 등한시 된다. 일은 생명이며 존재의 가치를 부여한다고 했다. 이념적 민중은 노동자 깃발을 내걸고도 일 가치를 소홀히 하는 배반적 이중성을 띤다. 이처럼 오만한 민중은 탐욕스러운 민중을 자처하기에 민중이 아니다. 본래 민중은 지성적 시민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은 근면한 일 가치를 소중히 하면서 생산적 분배를 지향한다. (665쪽 : 존재의 도덕률은 가장 근본이 되는 아름다움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생명유지속성 자체로 존엄성이 있다고 했다. 그 속성을 유지케 하는 핵심 근간에 일이 있다. 일은 조화의 골격이자 얽힘의 상징이다. 일을 통한 얽힘은 자연스럽게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존공영이라는 영혼의 가치로 옹립된다. (665쪽 : 축복이 어린 존재의 바탕에 일이라는 부가가치가 정밀하게 기능하고 있다)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지성적 시민들은 일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낀다. 그 절절함은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는 동인(動因)이 된다. 어떤 난관도 이겨내는 정신을 우선하는 지성적 시민에게 약자를 자처하고 일을 게을리 하는 이념적 민중은 오만하게 보일 뿐이다. 무책임한 평등론에 빠진 오만한 민중은 가장 불평등한 귀족의식에 가장 쉽게 빠지기까지 한다.
 
Q. 민중은 대중적으로 선량하고 정의로운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A. 이념이 내세우는 공동선의 최일선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의가 내걸린다. 약자를 민중과 동일시하는 것이 이념이 갖는 보편성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는 정의감은 옳다. 하지만 그 약자들이 스스로 약자라고 규정짓도록 조장하는 행위는 악하다. 약자는 보호 대상이지만 그 보호의 방식은 상생·협력이라는 자력에 의해서다. 약자는 스스로 일어날 강자의 잠재력이 있다. 약자를 약자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그 출발이다. 이 때 약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약자를 상생·협력의 가치를 우선하는 능력자로 규정지으면 약자는 언제든 약자 탈출이 가능해진다. 이들을 약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차별의 질서다. 조화 속에 차별이 있지만 그 차별은 조화를 위해 필요한 얽힘이다. (544쪽 : 질서는 균형의 미(美)이지만 그 균형은 차별을 필요로 한다) 상생·협력을 중시하는 과정을 거친 약자는 강자가 된 이후 책임·사랑의 가치를 놓지 않는다. 강자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가치에 책임·사랑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본래 지성적 시민은 자신의 위치가 약자라고 해도 차별을 계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중을 무조선 선량하고 정의로운 대상으로 외치는 이념가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이념가들은 차별을 계급으로 조장할 뿐만 아니라 없는 계급도 만든다. 그들은 입으로만 약자 또는 민중을 외치거나 내세우고 막후에서는 그들만의 잔치나 굿판을 벌이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민중의 안락함을 정의의 깃발로 내걸어 공짜주의를 확산시키는 이념의 악마성은 끝내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Q. 안락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이념이 채워줄 수 없는지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파먹기만 해도 먹을 거리가 영원히 나오는 지상의 천국은 만들 수도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 안락함이 정의로 둔갑하는 순간 모두의 불행이 닥친다. (70쪽 : 먹고 마시며 입는 모든 소비의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힘들게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져야 할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다) 안락함만을 희망한 채 자신만을 보면 가장 사악하다. 이념가들은 평등이란 환상을 하늘로 날리며 이를 부지불식 조장한다. 이는 저마다의 내가 서로 타자의 불행을 파먹도록 하는 사술과 다르지 않다. 타인의 불행을 바탕으로 자신의 안락만을 희구하도록 부추기는 정의감이 기막히게 암약하고 있다. (646쪽 : 동토의 땅으로 불려 온 거짓 이상사회에서는 저마다의 각 개인들이 자신만의 안락함이라는 이기심에 부지불식 빠졌다) 극단적 이기심인줄 모르고 분배의 평등이란 먹잇감을 먹으면 어느새 타인의 칼을 자신이 받고 있는 줄조차 모른다. 예리한 칼날은 서슬 퍼런 공포의 소리를 내며 서로를 향한다. 그것이 평등이란 뜬구름만을 계속 좇는 행위다. 이념의 회오리에 빠지면 이토록 무섭다. 마치 사지를 마비시키듯 증오감·적의감 등이 싹터도 그리고 책임·사랑의 가치를 버리고 있어도 정의의 황제복을 입고 있는 냥 오판하기 일쑤다. 하지만 화려한 정의의 옷은 공짜의 마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마녀의 마술이다. 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타자의 안락함을 보는 일이다. 모두의 안락함을 희구할 때 자신은 안락함의 옷을 벗어 던지고 일에 매진한다. 약자라고 해서 안락함이 정의가 되지 않는다. 약자이면서 스스로 선량하다고 생각하면 약자 탈출이 어렵다. 강자가 되는 과정에서 얽힘의 본질을 수행하고 일에 충실할 때 가장 선량하다. 약자 자체로는 선량하지 않다는 의식이 충만할 때 선덕을 행하는 발걸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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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유시장에서 약자가 차별을 당하고 착취당하는 상황이 현실 아닌가
 
A. 약자가 차별을 당한다는 표현을 약자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족함이라고 표현하면 약자의 위상이 달라진다. 약자는 약하지 않고 부족할 뿐이다. 부족함은 가능성이다. 약자는 반드시 부족함을 메워 약자가 아닐 수 있는 위상으로 언제든 올라설 기회를 갖고 있다. 차별은 반칙·변칙 등이 있을 때만 차별이라고 한다. 경쟁 자체에서 뒤처지는 것을 포함해 차별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차별현상을 냉정히 보면 경쟁에서 뒤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태만한 자나 무능력자를 차별이라고 옹호하는 순간 태만이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무능력자는 재기불능 무능력자로 전락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능력자가 없다는 강력한 마인드를 저마다 갖는 태도가 가장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이는 삶의 주인이고 생명의 주역을 자처하는 찬가다. (538쪽 : 노예는 주인의 횡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자유인이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느낌을 갖는다)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은 백지 한 장 차이지만 그 의지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노예의식은 주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주인은 노예보다 자유인이지만 더 많은 고난을 자처하면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의지를 갖는 일은 언뜻 쉬워 보인다. 하지만 노예가 고난을 자처하기는 속칭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유시장에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혼재돼 있다. 자유시장에서 차별을 당한다고 자처하는 이면 속에 노예의식을 갖도록 하는 이념이 암약하고 있음을 응시하지 못하면 주인의식으로 갈아타기 어렵다.
 
Q. 노예의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A. 노예의식에 빠져 있으면 경험해 본 일이 없거나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유라는 책임의 자승자박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사실 누구든 노예의식이 한 켠에 있다. (561쪽 : 노예적 삶은 사슬이 아니라 사슬의 두려움을 회피하는데 있다) 자유시장에서 자신의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향해 차별을 당하고 착취를 당한다고 오인하면 주인정신을 갖지 못한다. 이 때 가장 소중한 생명의 자존감까지 잃는다.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인의 자리가 공포가 아니라는 강력한 긍정 마인드가 요구된다. 동시에 노예의 진짜 공포인 자유인의 책임공포를 항상 찾아다니면서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예의식은 약자라는 인식을 통해 편안함을 추구할 때 시작된다는 경계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노예의식은 자신을 학대하는 자해행위다. 이를 성찰하는 자세는 인정하기 싫은 섬뜩한 공포지만 궁극의 존재감과 안정감을 갖게 한다. 노예는 약자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배수진을 칠 때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주인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고 다잡는다. 자유시장에 노예의식이 사라진다면 변칙·반칙이 아닌 한 차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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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차별을 받는 약자가 없는 자유시장의 개념이 새로운데
 
A. 인간은 실존의 문제에 자신도 모르게 사활을 건다. 누구나 사회적 소외의 문제가 신체적 생명 못지않게 절실한 사안이라고 했다. 소외를 당하지 않는 길에 일에 대한 성실성과 능력이 자리한다. 근면한 노력과 책임 있는 능력은 주인의식을 갖게 하면서 강자의 자리를 언제든 확보할 기회를 갖게 하거나 그 자리를 유지케 한다. 이를 차별이라고 하면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정의 속에 민중이 등장한다면 속임수라고 했다. 민중을 만들어 세력화를 도모하는 이념의 끝은 공동선을 내세우지만 반드시 그 가치가 사라진다. 자신들의 모토를 가차 없이 버리는 이유에는 잘못된 생명유지속성 또한 깃들었다. 살고자 하는 권력에의 의지가 허위의 민중을 만드는 이념에 가득하다. 허위에 빠진 민중은 정의로운 질서를 추구하지만 가장 질이 낮은 계급질서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만다. 자유시장의 질서는 혼돈뿐인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정립되는 질서는 정밀하다. (449쪽 : 자본주의가 인간의 실존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혼돈의 그릇으로 정지해 있을 때 의식은 질서를 지탱해 주고 움직이는 길을 만든다) 시장은 외견상 극심한 혼란 속에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이 인간의 실존재를 증거하면서 늘 멈춤에 빠진다. 역동하지 않는 시장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를 움직이는 것이 의식이다. 혼돈 속 질서를 다잡아 주는 의식은 동시에 새로운 길을 계속 만들어 낸다. (449쪽 : 시장에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한다는 개념은 최적의 경험을 통한 일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는 질서 정립의 과정이다) 일은 경쟁 속에서 차별이 있어야만 일답게 기능한다. 일은 상대적 우위라는 무한경쟁의 법칙을 따른다. 상대적 우위는 끝이 없는 책임감이다. 무한책임은 숭고한 사랑이라고 했다. 모든 종교에 깃든 사랑에는 신성한 존재감이 도도히 흐른다. 사랑은 무한경쟁조차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이 일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최적의 경험이다. 가장 효율을 낼 수 있는 경험의 가치들이 만든 자유시장의 질서는 생명의 꽃밭이다.
 
Q. 자유시장이 생명의 꽃밭이라고 하는 비유는 비약적이지 않을까
 
A. 자유시장의 축인 자유를 새김질 하면 시장이 생명의 꽃밭임을 인식하게 된다. 신체 못지않은 생명에 사회적 생명과 함께 정신적 생명이 있다고 했다. 사회적 생명은 소외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동하고 정신적 생명은 자유가 억압당하는 공포로 인해 촉발된다. 자유는 공기와 같아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인위적인 통제나 제한이 가해지면 가장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한다. 자유는 매순간 선택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는 확률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자유시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확률성을 통제하지 못하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다. 미지 또는 기지의 수많은 확률 사건에서 중심을 다잡아 나가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이 의지들이 모일 때 역동성이 강해진다. 또한 그 의지들은 역동성 속에서 스스로 도덕률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430쪽 :자유의 선택인 의지의 무한 확률이 자유시장 역동성의 기둥이라면 그 의지의 준칙은 자기역동성으로 인한 갈등을 통제하는 도덕률로 나타난다) 자유시장이 생명의 꽃밭인 이유는 자기 역동성 속에서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데 있다. 자유는 주인이다. 의지의 준칙이 자유를 통해 가능하다. 서로 다른 준칙들이 역동성을 보일 때 꽃이 핀다. 생명은 경쟁할수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난다. 차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은 생명의 진한 향기를 뿜는다. 이를 기반으로 발전하는 문명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다. (430쪽 : 시장은 자유의지 준칙들이 쌓여 갈수록 강하게 역동하는 이중성과 반동성을 동시에 띤다) 시장의 이중성은 경쟁과 차별 그리고 얽힘과 조화 사이에서 이뤄지는 파동성이다. 경쟁이 얽힘을, 얽힘이 경쟁을 각각 낳는다. 차별이 조화를, 조화가 차별을 각각 만든다. 서로 배척하면서 끌어당기는 중심에 반동성이 있다. 빛의 원리처럼 전기파와 자기파가 교란할 때 에너지를 주고받는 기능은 반동성이다. 반동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생명의 꽃밭은 더 화려하다.
 
Q. 민중이 자유시장을 장악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주역이 되기는 어렵나
 
A. 이념적 민중은 기본적으로 약자 개념이다. 약자를 자처하면 인공의 허상이라고 했다. 이런 약자가 자유시장을 인위적으로 장악하도록 하는 방법은 경쟁과 차별을 강제로 없애거나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차별만을 부를 뿐이다. 약자를 인위적으로 자유시장의 중심에 올려놓은 것은 죽을 자리에 몰아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약자가 자유시장을 장악하도록 하려면 오히려 약자를 약자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약자를 자처하는 것은 자신안의 타자인 에고를 좇는 우매한 일이다. 에고에 빠질 때 약자를 스스로 규정지어 약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약자를 자처하지 않으려면 자유를 가슴에 묶고 다녀야 한다. 에너지 중 가장 돋보이는 흐름이 자유다. 강력한 의지 역시 자유다. (296쪽 : 자유는 에고라는 타자를 배격하는 힘을 가졌다) 에고를 배격하는 힘을 가진 약자는 없다. 에고를 멀리하는 힘을 가진 민중 또한 없다. 에고를 확실한 타자로 인식하고 강력한 자유의지를 가질 때 약자와 민중은 허약한 자기위안임을 안다. 자유시장은 에너지 흐름이 상시적으로 가장 강력한 곳이다. 에고이즘에 빠진 허약한 약자나 민중이라면 자유시장에서 주인의 위치에 올라서기 불가능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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