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들이 잠식당한 가운데서도 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더욱 빠르게 전개됐다. 비대면 수업, 화상회의, 재택근무 등의 일상화로 디지털전환 수요가 급증한데다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주요 기업들이 저마다 활로 모색에 나선 결과다. 덕분에 핀테크, 미래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 등 기술과 산업의 융합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산업 패러다임 급격한 변화 속에서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경제강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규제해소, 정책지원 등 자국 내 기업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상태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특히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광폭행보가 돋보인다. 삼성과 SK는 반도체 등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다투고 있으며 LG전자는 2차 전지,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 등에서 각각 선전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 투자계획까지 밝히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일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가들 사이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한국경제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기업의 혁신을 뒷받침해야 할 제도적 인프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집단이 4대 그룹이라는 점에 비춰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차별적 규제를 해소하면서 기업의 도전정신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에 요동치는 4차 산업혁명 물결…바빠지는 4대 그룹 경영시계
코로나 이슈로 촉진된 비대면 수요는 4차 산업혁명 발전에 불을 당겼다. 화상회의, 비대면 수업 등이 보편화됐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이용한 가상체험을 넘어 최근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현실까지 등장했다. 미래 모빌리티, 스마트홈, 디지털 헬스케어 등 기술과 산업의 융합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세계 각 국은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권확보가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소위 말하는 ‘4대 그룹’이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의 확고한 위치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5G 등 미래역량 확보에 역량을 쏟고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와 수소차 분야에서 업계 선두를 다투고 있으며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글로벌 2차 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메타버스 콘텐츠 확보에 분주하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대적인 대미 투자에 나선 점도 고무적이다. 4대 그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총 44조원(394억달러) 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책 요구에 화답한 것이지만 이번 투자를 계기로 반도체, 배터리 분야 등에서 글로벌 1위 지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20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통해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라인 추가 증설을 준비 중이다.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수소,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에 총 74억달러(한화 8조1417억원)를 투입한다. 미국 전기차 시장 확보와 신기술 경쟁 등에 적극 대응하기 위함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과 낸드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10억달러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포드사와 총 6조원 규모 합작사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내 배터리공장 추가 건설도 검토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제너럴모터스)과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원규모(LG 투자금 1조원)의 전기차 배터리 제 2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또 2025년까지 미국에 5조원 이상을 투자해 2곳의 독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4대 그룹의 대미투자 행보와 관련해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앞선 기술과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며 “기업 입장에서 미국 진출을 필수적일 수밖에 없고 어떤 조건으로 진출하느냐가 관건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4대 그룹 입장에서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미국이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투자를 계기로 4대 그룹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보다 확보한 지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국민밥솥 위해 글로벌 기업과 전쟁 중인 4대그룹…文정부 반기업 규제에 ‘진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4대 그룹의 성과는 우리 경제의 발전과도 연관관계가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 근거로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경제 기여도 등이 제시된다. 코로나 발생 이전 경제지표에선 4대 그룹의 경제 기여도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837조원이다. 같은 해 삼성전자의 개별매출액은 155조원이다. 우리나라 GDP 8% 이상을 삼성전자 홀로 일으킨 셈이다. 또 삼성SDI, 현대차, 현대모비스,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LG화학, LG전자, LG유플러스 등 4대 그룹 내 4차 산업혁명과 연결고리를 맺는 기업들의 2019년 개별 매출액 총액은 337조원이다. GDP 대비 18.3%의 비율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선 4대 그룹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부처 등이 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의 규제 일변도 기조로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각 국에서 자국 기업 육성에 정책 지원을 퍼붓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글로벌 경제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최근 ‘대기업차별규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48개 법령에 총 275개 규제가 존재한다. 2019년 8월 기준 188개 대비 46.3%나 증가했다. 지난해 상법, 공정거래법 등을 필두로 한 기업규제 3법 제·개정이 대기업차별규제 개수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전경련의 분석이다.
박병진 교수는 “기업가들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과 경쟁을 통해 혁신을 이룰 때 국민 생활은 풍요로워지고 국가경쟁력도 제고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급증하고 있는 규제는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기업의 혁신활동이 성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다. 이미 세계 강대국들은 정부 차원에서 자국 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으로의 규제혁신뿐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 신설을 제어하기 위한 규제영향 분석 및 규제 일몰제의 강화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이 다소 강압적으로 기업의 투자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함께 기업이 만족할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걸 알아야한다”며 “우리 정부도 기업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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