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세 자녀를 둔 경기 김포의 마흔 살 택배 대리점주 이모 씨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에 대한 분노와 절규, 애절한 가족애를 담은 한 맺힌 유서를 남겼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지난 두 달은 노조원들의 태업·파업·집단괴롭힘으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8년 전, 택배원 생활 7년 만에 대리점을 냈을 때만 해도 밝은 미래를 꿈꿨을 법하다. 함께 일하는 택배원 18명과 회식도 자주하는 등 가족처럼 지냈다.
민노총 산하 노조가 생기자 사정이 변했다. 택배원들은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무게·부피가 나가는 물품 배송을 거부했다. 업무에 큰 차질을 빚었고, 비노조원들과 필사적으로 버티는 이씨 부부에게 온갖 폭언·욕설·조롱을 퍼부었다. 카톡방에선 서로를 “노동 동지”라 칭하며 “투쟁”을 고무하고, “대리점을 먹어보자”고 결의한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700만~1000만원이었다. 소박한 생존투쟁이 아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대리점 운영과 배달을 겸해야 했던 이씨는 목·어깨를 다쳤고, 혈관에도 문제가 생긴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택배원은 일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으로 위탁용역계약 개인사업자다. 이들의 집단행동에 대리점주는 제대로 대처할 길이 없다. 실질적 약자는 개별 점주들이다.
2017년 11월 전국택배연대노조는 특수고용직 최초로 ‘노조설립 필증’을 획득한다. 태업·파업 등 단체행동이 가능해졌다. 문재인정부가 업계 특수성을 무시한 채 택배원들 권리부터 보장한 셈이다. 민노총 산하 노조원만 약 6000명이다. 코로나19시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택배업계는 ‘운동권 출신 활동가’들의 블루오션이 됐다.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씨는 노조의 의의를 이해하고 존중하던 소상공인이었다. 그의 선의가 ‘전문 운동꾼’들에게 호재였나 싶어 마음이 더 착잡하다.
민노총은 언제든 대규모 조직적 시위를 벌일 수 있는 대한민국 최강의 세력이다. ‘전태일 정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다. 약자를 내세우지만 권력에 더 관심이 많다. 노동운동 대부 장기표 전태일재단 초대 이사장의 표현을 빌면 ‘노동귀족’, 한때 위장취업 노동자였던 원희룡 전 제주지사 말로는 ‘586운동권과 담합한 특권집단’이다. 몰표의 대가로 각종 입법과 세금형 일자리·용역이 주어진다. 최저임금·주52시간 등의 노동정책 역시 민노총에 대한 ‘보은’이나 다름없다. 집회 땐 방역수칙도 예외다.
민노총 조합원 중 다수는 많은 이가 선망하는 상위 10%의 안정된 직장인이거나 고액연봉자다. 기업과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누리면서 기업을 적대시하고 대한민국 체제 전환을 외친다. 10월 총파업 의제로 ‘국방예산 삭감’ ‘기간산업 및 주택 50% 국유화’ 등을 내걸었다. 파업 명분은 ‘한·미동맹 해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 등이다. 이게 노동단체에서 나올 소리인가. 그래서 ‘종북·주사파’ 꼬리표가 붙는다.
대전의 한 업체 노동자 6명은 민노총의 비리를 지적하고 탈퇴했다가 해고됐다. 그 중 중학생 딸이 7월 “법 위에 군림하는 민노총 해체시켜 주세요” 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호소했다. 자기 편 아닌 약자에겐 이렇게 냉혹하다. 기업과 국가의 미래는 염두에 없다. 당연히 차세대 기술전수나 청년고용을 위한 양보도 없다. 자기들 정년 연장이나 고임금만 보장되면 그만이다. 이런 나라에 누가 투자를 하며 어떻게 일자리를 만드나. ‘민노총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 과언이 아니다. 현 상태의 민노총과 대한민국은 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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