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은행의 전세대출에 대한 공적보증 축소를 검토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상 올해부터 전세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20년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물량이 시장으로 나오며 전세 시세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 안팎에선 전세대출을 지금보다 막을 경우 상당수의 무주택자가 월세 또는 임대주택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계대출 총량관리 명분…전세대출 공적보증 축소 추진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자금순환표상 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이 219.9%로 나타났다. 197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데다 전년 3분기 말(210.5%)보다도 9.4%p 올랐다. 이 중 가계부채는 1844조9000억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010년 말(843조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불었다.
정부는 이같이 시중에 넓게 퍼진 유동성이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거듭 지적하면서 이와 동시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유동성과 집값의 연결고리를 끊겠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4~5%대로 관리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만들면, 집값 상승이 멈출 수 있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 일환으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내내 가계대출 총량관리 압력을 넣더니 이번엔 전세대출도 막겠다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구랍 22일 올해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전세대출에 대한 공적보증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입자가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을 땐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에서 대출금을 보증해주는데, 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보증공사의 전세대출 보증 잔액은 126조원, 점유율은 약 68%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대출 잔액은 124조4298억원이다. 이는 2020년 말(105조988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18.4%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전세대출 급증세는 공적보증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공적보증 비율이 축소되면 전세대출은 자연히 받기 더 어려워진다. 보증이 축소된 만큼 은행의 책임이 늘어나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부담이 커지면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상환 부담 역시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올해 전세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7월이면 새 임대차 법을 시행한지 2년이 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상당수 물량의 계약 해지가 예정돼 있다는 의미다.
앞선 재계약까진 전·월세상한제법에 따라 보증금을 5%만 인상할 수 있었으나 신규 계약 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주인들은 올리지 못한 보증금을 한 번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올해 전세계약을 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대출이 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한 올해 만료되는 전세 계약분 중 상당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전세·월세 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정책에 불만↑…“전 국민 월세살이 떠미나”
이러한 상황인데도 정부가 오히려 전세대출을 틀어막으려는 모습을 보이니, 시장에선 볼멘소리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고 있는 여지선 씨(40대)는 “지난번 전세계약이 만료됐을 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보증금을 5% 올리고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라며 “집주인이 올해는 전세금을 시장 상황에 맞게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 벌써 걱정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지금 아파트 전세 보증금은 3년 전 수준인데 그동안 전세 시세가 크게 오른 데다 신규 계약 이후, 올리지 못할 분량까지 올려버리면 단순 전세대출만 가지곤 될 것 같지도 않다”라며 “대출이라도 많이 해줘야 전세에 살 수 있는데 오히려 줄이겠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반전세나 월세를 구하는 방향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이명신 씨(30대)는 “새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명백히 서울, 수도권 전세 시세가 올랐는데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전세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라며 “최근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인기가 저조하다고 들었는데 이런 공공주택의 흥행을 유도해 정책적 과실을 가리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는 서울, 수도권의 전셋값이 더욱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시장 왜곡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올해는 유독 입주 물량이 적었던 지난해보다도 더욱 입주 물량이 적다”라며 “더구나 7월 이후부턴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물량이 다수 나오는 만큼 전셋값 상승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전세대출 규모를 줄여버리면 대다수 수요자가 월세 또는 반전세 등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금리 인상까지 맞물려 있어 서민 경제가 더욱 휘청거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지난해 전세 시장이 폭등한 사실과 올해 계약갱신청구 계약이 만료되는 점 등을 정부가 간과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다소 의도가 있어 보인다”며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에서 전세대출을 막아버리면, 공공주택 말곤 흥행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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