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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국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가 급등세를 보이며 '약세장 피난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올해 상장한 스팩 18개 모두 공모가와 비교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적어 비교적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 기업공개(IPO)를 거치지 않고도 우회상장이 가능한 점이 인기 배경으로 꼽힌다.
다만 유의할 점도 적지 않다. 상장 후 3년 내 합병회사를 찾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된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공모가보다 비싸게 살 경우 원금보다 적게 돌려받을 수 있다. 합병하더라도 최종 합병가액 하향 조정 등으로 주가가 하락할 위험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개선하는 등 스팩이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삼성스팩6호, 공모가 대비 220% 치솟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2일까지 올해 국내 증시(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스팩 18개의 공모가 대비 평균 상승률은 19.82%로 집계됐다. 연초 이후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19.63%, 23.62%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이 기간 증시에 입성한 공모주(스팩, 리츠 제외) 35개사의 공모가 대비 평균 상승률(14.18%)과 비교해서도 크게 앞선다.
삼성스팩6호가 218.5%로 가장 높았다. 지난달 30일 코스닥에 상장한 삼성스팩6호는 상장 첫날 ‘따상(공모가 대비 2배로 시초가를 형성한 뒤 상한가)’을 기록하는 등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구가했다. 스팩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만원대를 뚫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5·6월에 상장한 삼성스팩4호와 삼성머스트스팩5호가 상장 초기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데 따른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삼성 스팩은 상장 초기에 크게 오를 것’이라는 투심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삼성스팩6호를 제외해도 스팩의 수익률은 나쁘지 않다. 나머지 17개는 공모가와 비교해 평균 8.13% 상승했다. IBKS제17호스팩(14%), 키움제6호스팩(13%), 에스케이증권7호스팩(9.25%), 신영스팩7호(8.5%), 한국제10호스팩(8.25%) 등 높은 수익률을 거둔 곳도 많다.
스팩은 비상장기업과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운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M&A를 거쳐 비상장기업을 거래소에 상장시킴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을 수시로 사고팔 수 있으나 3년 내에 M&A를 체결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상장폐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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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임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스팩이 폭락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원금을 손실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합병에 성공하면 투자자는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SK5호스팩은 7일 의료기기 제조업체 비스토스와 흡수합병을 결정한 뒤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5040원까지 치솟았다. 공모가 대비 152% 수익률이다.
합병에 실패할지라도 투자자는 공모가(2000원)를 돌려받을 수 있다. 스팩은 해산 시 투자금 반환을 위해 주식 발행을 통해 모은 자금의 90% 이상을 증권금융회사(한국증권금융) 등에 예치한다.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고 해산하는 경우 투자자는 예치금액 등을 주권 보유비율에 따라 반환 받는다. 소정의 이자는 연평균 1.5%에 달한다.
기업은 IPO를 거치지 않고 우회상장 할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올해 공모주 시장 분위기는 작년과 달리 얼어붙었다.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대어’로 꼽힌 기업들마저 수요예측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했을 정도다.
스팩 상장은 IPO 상장과는 결이 다르다. 수요예측을 실시한 후 공모가를 평가하지 않아 흥행 실패로 헐값에 상장하거나 상장을 철회하는 등의 위험 부담이 덜한 편이다. 피합병법인의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자산, 수익 등 절대적 가치를 반영한다. 기업 입장에선 시황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공모가를 산출할 수 있는 셈이다.
상반기까지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하인크코리아, 누보, 파이버프로, 웨이버스, 하이딥, 모비데이즈, 원텍, 태성 등 8개사다. 하반기에도 7월 코닉오토메이션(NH스팩21호), 8월 솔트웨어(미래에셋대우스팩3호), 태성(신영스팩5호), 원텍(대신밸런스제8호스팩), 9월 비스토스(SK스팩5호), 11월 옵티코어(KB제20호스팩), 신스틸(하나금융15호스팩)이 예정됐다.
스팩 합병 제도를 개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거래소는 2월부터 스팩이 소멸되고 회사가 존속법인으로 남는 ‘스팩소멸합병’ 방식을 허용했다. 기존에는 스팩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회사(피합병 법인)가 소멸되는 ‘스팩존속합병’ 방식만 가능해 기업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서류상 업력이 짧아지고 번거로운 행정 절차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존속법인을 회사로 할지 스팩으로 할지 선택할 수 있다. ‘스팩소멸합병’ 방식으로 합병하면 기업이 존속기업이 되기 때문에 법인격과 업력의 소멸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벤처캐피털(VC)이 운용하고 있는 펀드를 소멸시켜야 하는 문제로 사실상 스팩 상장이 불가능했는데 이제 스팩소멸합병 방식을 활용한 상장이 가능해져 시장 활성화가 예상된다”면서 “대부분의 스팩이 유가증권시장보다 코스닥시장에 많아 기업가치가 큰 대형 기업의 스팩 상장은 어려운 게 한계점이지만 스팩에 눈을 돌리는 기업과 투자자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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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임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상장 스팩 18곳, 시초가 대비 수익률 4%대로 저조
일각에선 ‘상장폐지 리스크’를 우려한다. 3년 내 합병을 완료하지 않으면 스팩이 해산되기 때문이다. 공모주 청약으로 투자한 경우엔 상관없지만 주식시장에서 공모가(2000원)보다 높은 가격으로 스팩에 투자했을 때는 위험하다. 해산 시 돌려받는 금액이 투자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합병 성공률은 63.9%로 집계됐다. 상장 후 3년이 도래한 스팩 133개사 가운데 85개만 합병했다. 올해는 22일까지 케이비제19호스팩, 하이골드3호 등 6개사가 합병대상을 찾지 못한 채 증시에서 퇴출됐다.
실제로 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스팩 18개사의 시초가 대비 평균 상승률은 22일 기준 4.93%에 불과했다. 공모가 대비 평균 상승률(19.82%)과 15%p 차이 나는 수준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삼성스팩6호를 제외하면 -0.93%다. 8곳의 주가가 시초가보다 떨어졌다. 공모주 청약이 아닌 상장된 스팩을 무분별하게 투자할 경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합병가액이 낮아질 수 있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합병가액이란 두 회사가 합병할 때 기업가치를 평가해 1주당 매겨지는 가격이다. 일반적으로 스팩 합병 시 합병가액은 주가를 할인해 결정되는데 자본시장법상 일정기간 주가(1개월·1주일·최근일 평균 종가)로 하되 최대 30%까지 할인할 수 있다.
올해 합병을 완료한 스팩 8개 중 7개가 주가를 할인해 2000원으로 합병가액을 결정했다. 할인율은 IBKS제15호스팩 14.41%, 대신밸런스제7호스팩 5.43%, 한국제9호스팩 18.50%, 유안타제5호스팩 20.16%,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18호 15.86%, 하나금융17호스팩 28.01%, 대신밸런스제8호스팩 22.71%, 신영스팩5호 6.52% 등이다.
스팩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기대한 만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은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가 스팩을 대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과 주주가치 희석효과를 방지할 수 있는 스팩 발기인의 ‘주식매각제한요건’을 투자자 보호 장치로 활용한다. 공모자금의 90% 이상을 공모예치자금의 형태로 금융회사에 예치·신탁하고 합병완료 이전에 인출하거나 차입을 위한 담보로 활용할 수 없는 것도 투자자 보호 장치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10년 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상장된 스팩(220개) 중 합병에 성공한 112개 스팩을 대상으로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합병대상 기업의 신주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비율 △합병소요기간 △합병비율 △주주가치 희석비율 등 네 가지 변수는 주주가치 희석비율을 제외하면 통계적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M&A 시장 접근성이 제한적인 개인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소액의 투자자금으로 M&A 시장에 참여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확보가 가능한 재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분석 결과 스팩의 투자자 보호 장치는 기대한 만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따라서 향후 금융당국은 스팩 시장과 제도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스팩의 투자자 보호 장치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찾아 개선함으로써 스팩이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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