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환경부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올 12월2일 시행 된다. 다만 적용 지역은 대한민국이 아닌 ‘제주와 세종’으로 한정됐다. 원래는 올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일자 12월2일로 한 차례 연기하더니 이마저도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하기로 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정책 후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환경정책이 업계 이해관계로 오락가락한다며 정부의 정책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또 연기
이달 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탁상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자 한 장관이 스스럼없이 “탁상행정이 맞다”고 답변을 한 것이다.
취임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든 한 장관으로선 현안으로 떠오른 이 제도의 미흡한 부분을 지난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전 의원의 국감 질의를 받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맞습니다. 내가 와서 보니 그렇게 돼 있었습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는 소비자들이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살 때 보증금 300원을 부담하고 이 보증금은 컵을 반환하면 돌려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정책이다. 궁극적으로는 일회용품 사용 감축이 목적이다.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관련 법이 제정됐다.
제도가 적용되는 곳은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커피·제빵·패스트푸드·아이스크림·음료 판매점이다. 스타벅스‧이디야‧할리스‧메가커피‧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이 해당된다.
반납 방식도 환경부가 처음 발표한 것과 사뭇 달라졌다. 기존에는 브랜드와 관계없이 어느 매장에서나 컵을 반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최종 발표에서는 같은 브랜드 매장에서만 반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로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4억6000만t에 달했다. 덩달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도 약 3억5300만t으로 늘었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회용품 사용량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했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일회용품 사용량이 2019년 하루 평균 733t에서 2020년 하루 평균 848t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약 15.6% 증가한 셈이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021년 하루 평균 일회용품 사용량은 1000t에 육박했다.
이 정책은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원래는 올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일자 12월2일로 한 차례 연기하더니 이마저도 애초 계획이던 전국 시행이 아닌 세종시와 제주도에서만 실시하기로 해 정책 후퇴라는 거센 비난의 여론을 자초했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도 제기될 수 있는 상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은 부칙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공포 후 2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개정법 공포가 2020년 6월9일 이뤄진 만큼 제도는 올해 6월10일 시행했어야 했다”고 귀띔했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법에서 정해진 시행일을 행정부가 임의로 변경해 입법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환경부는 국정감사에서 “환경부가 행정기관으로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법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고 해명했다.
여러 해명에도 환경부의 정책 추진력에 적잖은 의구심이 일고 있다. ‘자영업자 달래기’와 ‘친기업’ 행보로 포장하면서 오랜 기간 준비해온 일회용컵 규제를 완화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들린다.
일례로 환경부는 제도 시행을 한달 앞둔 5월, 여당인 국민의힘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유예를 언급하자 이틀 만에 시행 유예를 발표했다. 제도 시행의 직전 단계에서 연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부 시민들과 시민단체는 환경부의 이런 오락가락 정책을 두고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정모(43)씨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은 플라스틱 규제 흐름에 맞춰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 정부는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해 일회용품 사용에 관대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연기는 플라스틱 사용을 억제하기는커녕 국가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플라스틱 사용을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국제 사회의 흐름에 역행했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도 “일회용품 사용 감량을 위한 일회용컵 보증금제 국정 과제를 완화 없이 제대로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일회용품 규제 없이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없다. 기후위기 대책도, 탄소중립도 이행할 수 없다”고 환경부를 비난했다.
환경부 “소비자가 일회용컵 보증금 300원 부담, 잘못된 제도”
한 장관의 일련의 행보도 환경부의 탈 플라스틱 정책 추진력에 세간의 의혹을 키우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6월 전국경제연합회를 방문해 “환경규제는 예방 차원에서 경직적으로 설계되는 경향이 있다”며 규제 완화에 방점을 둔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한 장관은 공병‧타이어‧형광등‧건전지 등은 재활용을 생산자가 책임지지만 일회용컵만 소비자가 재활용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소신발언을 이어갔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한 장관에게 “공병‧타이어‧건전지‧형광등 등은 재활용을 생산자가 책임진다. 그런데 일회용컵만 소비자가 (재활용 책임을) 부담한다”며 “자원재활용법엔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제품 포장지로 발생한 폐기물을 회수해 재활용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는데 일회용컵은 보증금을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이 온당하냐”라고 묻자 이에 한 장관은 “잘못됐다고 본다”며 “장기적으로 보증금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국정감사에서는 환경부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두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논의됐다.
윤 의원은 “환경부가 소비자 편의보다는 생산자 편의만 고려해 일회용컵 무인회수기를 KTX역 등 공공장소 500곳과 보증금제 적용 대상인 매장 1000여곳에만 설치하려 한다”며 “대상 사업자 매장 어디에서나 컵을 반환할 수 있도록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커피전문점 다음으로 일회용컵이 많이 쓰이는 편의점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현재 카페 등에서 사용되는 일회용컵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하며 “표준컵을 도입하면 교차반납 등 문제가 해결되는데 환경부가 손 놓고 있다”고 성토했다.
재활용 업계에 따르면 합성수지 일회용컵은 로고 등이 인쇄돼 있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종이 일회용컵도 일정 크기 이상이면 재활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표준컵’ 기준에 합성수지 일회용컵에 ‘인쇄 금지’를, 종이 일회용컵도 ‘표면적 15% 이상 인쇄 금지’를 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번 국감에서 세종과 제주 외 지역에서 언제 보증금제를 시행할지, 언제까지 일정을 마련할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보증금제 시행을 사실상 취소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는 또한 식품접객업소 내 일회용 물티슈 사용 금지를 3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물티슈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 등 합성수지로 플라스틱이 40∼50% 함유돼 있다.
이에 대해 신우용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렵게 공론화한 것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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