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월북’으로 단정한 뒤 각종 증거를 은폐·왜곡했다는 정황이 감사원 감사로 일부 드러나면서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감사원 통제법’으로 불리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여야 간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해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야권은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문 정부에 대한 표적 감사를 진행 중이라며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권은 이를 방어하면서 ‘성역 없는 감사’로 문 정부의 모든 비리를 규명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달 초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통보 사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국정감사에서 팽팽하게 맞붙은 만큼, 감사원법 개정안은 신·구 권력 충돌의 모습으로 비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19일 ‘감사원 개혁방안 범국민 토론회’ 개최 후 곧바로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해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문재인 전 대통령 지키기’다.
박홍근 원내대표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60명이 9월14일 발의한 ‘감사원법 개정안’은 특별감찰에서 국회 소관 상임위에 감찰계획서를 제출해 사전 승인을 얻고 감사 결과와 감사대상자에 대한 사유를 사전에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當否)’에 대한 감찰을 금지하며 ‘감사 대상자에게 사유를 사전통지’하는 조항도 담겼다.
또한 감사원장·감사위원 등 감사원 임직원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했다. 감사원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신정훈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핵심가치인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감사원 정치개입 방지법’(감사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뒤 북한어민 강제북송 사건,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등 전 정부에서 주목받던 사안들에 대해 줄줄이 감사가 개시되고, 권익위 등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에 대한 사퇴 목적의 먼지털기 식 표적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감사원의 과도한 권한 남용과 정치 개입 방지를 위해 법안 통과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정치개입을 막겠다’는 게 민주당의 전략인 셈이다.
민주당 감사원 개정안 ‘文정부 감사 원천봉쇄’ 비판
윤석열정부에서 감사원은 △문 정부 탈원전 정책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코로나 백신 수급 지연 △2022년 3월 대선 선관위의 ‘소쿠리 투표’ 논란 등과 관련한 전반적 내용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임기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의 중심에 섰으며 이번 국회 윤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도 임기 여부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붙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관련 기관 감사도 진행되고 있다. 만약 해당 법안이 개정될 경우에 관련 감사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발의 이후 여당에서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 이은 감사완박(감사권 완전 박탈)’ ‘169석 다수당의 횡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원을 국회 하위 기관으로 전락시켜 비리 의혹을 무마시키려고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사전 승인’에 대한 여러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감사원법은 2조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로 규정해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언급했으나 사실상 국회 하위기관으로 두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국민의힘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민주당 발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15일 국회에서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라는 것을 무기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감사만 진행하라는 감사완박을 꾀한다”며 “얼마나 저지른 잘못이 많기에 독립적인 감사원의 직무조차 국회에서 통제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다수당 마음대로 감사원의 감사계획을 승인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해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감사원 감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입법 독재를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감출 게 아니라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와 감사에 성실히 임하고 국민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원 관계자 또한 관련 발의에 대해 언론에 “특별감사는 신속, 은밀이 핵심인데 국회 승인을 먼저 받으라는 건 감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도 털어놨다. 같은 날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하위기관으로 두고 국회 다수당이 시키는 것만 감사하라는 발상”이라며 “결국 문재인 정권 관련 감사에는 눈을 감으라는 소리”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어 “권력 견제의 기능까지 무너뜨리며 ‘감사완박’에 나서는 민주당의 행태는, 도둑이 경찰을 지휘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박근혜정부에 대한 ‘적폐청산’으로 불리우는 전 정권 수사가 검찰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이의 수사권을 대선 패배 직후 ‘검수완박’을 통해 무력화했다면, 이번에는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문 정부를 감사중인 감사원의 감사권마저 빼앗을 심산이라는 의미다.
감사원법 개정안 발의 논란은 2라운드를 맞았다. 이달 3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 통보 후 거절한 것이 여야 간 ‘진상규명’과 ‘정치보복’을 두고 공방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서면감사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사가 통상적 감사업무인지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했다.
감사원 ‘문재인 서면조사’ 논란에 ‘감사원’ 정치 중립성 논란 ‘국감 공방’
16일 문 정부 감사원장 출신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에 대해 또다른 범죄의혹이 드러난 것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안보 핵심라인 인사들이 서해 피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왜곡했다고 판단하고 관련 인사 20명을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여기에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고위급이 대거 포함됐으며,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 사냥’이라고 규정하며 각을 세우고 있는데, 최 의원은 페이스북에 “(피격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사실을 인지하고 이씨가 피격·소각 될 때까지 3시간 동안(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허위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으로 몰고 간 정황이 비교적 자세히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피살 및 시신 소각 정황을 파악하고 나서야 안보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자진 월북 가능성을 논의한 다음 삭제했다는 국방부와 국정원의 내부 첩보 106건은 자진 월북이라고 볼 수 없는 정황들이 포함된 정보들일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 “정부의 범죄적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또다른 범죄행위”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문 정부의 대표 비리 의혹 사건으로 꼽히는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을 가장 먼저 언급하며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이 같은 전력의 최 의원이 문 전 대통령에 재차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문 정부에서 이명박정부에 대한 4대강 의혹, 박근혜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 대한 감사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전임 대통령과 정부 관련 수사는 관례적인 것이라는 풀이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해 감사원을 통해 정치중립성과 독립성을 뛰어넘어 ‘정치사냥’을 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에 대해 최재해 감사원장은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11일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이 특정 감사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이어 “참여정부 때 대통령실로부터 감사 요구 17건을 제안받아 자체 검토해 10건은 감사했다”며 “(요구를) 수용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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