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자는 ‘37시간’ 근무 원해
정부가 내놓은 주당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는 현행 주 52시간제에서 시간 상한선을 높인 제도다. 기본 52시간에 추가 연장근로 12시간, 선택 근로 5시간을 더해 한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자는 방안이다. 하루 11시간 30분씩, 주 6일을 일해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일이 몰릴 때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유연화’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이외에도 정부는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저축한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개편 이유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으나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며 “산업 현장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3년 만에 급격히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결과, 많은 기업들이 위법과 적법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소위 포괄임금이라는 임금약정 방식을 오남용해 장시간 근로 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선택권과 건강권이 조화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는다”며 “이번 제도 개편의 지향점은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편적 보장 세 가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노동계와 일반시민의 반대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 개편에 최대 수혜자로 꼽혔던 MZ세대조차 정부와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유는 제도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될 경우, 근로시간이 무분별하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1주에 69시간씩 근무하라는 게 아니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되, 대신 바쁘지 않을 때는 장기 휴가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나눠 쓰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 60시간 근무를 상한선으로 두라고 말하면서 여론 진화에 나섰다. 법안을 공개하고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근로시간 개편 문제는 이제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된 상황이 된 것이다.
국민 반응이 차가운 것은 당연하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에 장기 휴가를 갈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도 주 52시간 넘게 일하지만 주어진 연차조차 모두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IT 스타트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송희(28)씨는 “지금 주 52시간 근로시간인데도 이틀에 한 번꼴로 야근을 하지만 야근 수당이 없고, 연차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직장인은 연평균 17일의 연차휴가를 받고도 실제로는 11.6일만 사용했다. 연차유급휴가 소진율은 평균 58.7%에 불과하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에 속한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인 1716시간보다 199시간, 독일보다는 566시간 더 길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정도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과로 사회’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국민이 희망하는 근무시간은 주 40시간 이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19일 발간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가 희망하는 1주일 근로 시간은 평균 36.7시간이었다. 상용근로자로 폭을 좁히면 37.63시간으로 나타났다. 임시·일용 근로자는 32.36시간으로 더 짧았다.
취업자가 실제로 근무하는 시간은 41시간으로, 희망 근로 시간보다 4시간 정도 많았다. 현재 주 52시간 넘게 일하는 근로자들의 희망 근로 시간은 평균 44.17시간으로 조사됐다.
변수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절한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한 보장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문화의 확산 등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국가다. 희망 근로시간을 고려하면 일하는 시간에 대한 관리가 꾸준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변 연구위원은 “적절한 휴식 시간은 근로자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며 “삶의 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개인과 가족이 매우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획일화된 제도는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고 꼬집었다.
포괄임금제 제도 개선이 ‘먼저’
이처럼 주 69시간 근로제 도입 반발이 거센 배경에는 ‘포괄임금제’가 있다. 포괄임금제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상응하는 수당을 실근로시간과 무관하게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의 임금 약정 방식이다.
문제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데도 근로자를 포괄임금제로 계약해 이를 ‘공짜 야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초과 근무를 하고도 포괄임금제라는 이유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무직 근로자들이 상당수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7~14일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2%가 ‘연장·휴일·야간근로 등 초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0% 이상이 포괄임금제 대상자였다.
이에 당정 뿐만 아니라 야당도 포괄임금제 손질에 동의 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포괄임금제 보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총 3건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장시간근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포괄임금계약을 제한하고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측정·기록하고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의 법안은 포괄임금계약 금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안은 포괄임금계약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근로시간·임금 등 입증책임을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한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포괄임금제 손질을 위해선 무엇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임금 추가 근무는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사항인 만큼 포괄임금제에 대한 실태조사나 연구가 많지 않다”며 “비록 논의의 시작은 근로시간 유연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게 됐지만 정공법으로 포괄임금제 현황·규모별 기업에 따른 실태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문제점과 불공정성을 바로잡아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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