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깨끗하면 숲이 청정해서 단풍의 색도 더 선명하기 마련이다. 공기 좋기로 유명한 전라북도 무주는 그런 점에서 국내 최고의 단풍 여행지라 할 만하다.
무주는 2022년 기준 인구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공기가 좋은 데다 천마·사과·산나물 등 건강 식재료가 풍성하니 이곳에서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일이 자연스럽다.
무주는 덕유산·적상산·금강·무주 구천동이라는 천혜의 자연경관에 태권도원·무주반디랜드 같은 특화된 관광지를 여러 곳 거느리고 있다.
호국의 얼이 깃든 안국사와 적상산사고
13세기 고려 충렬왕 시절 월인화상이 머릿돌을 얹은 안국사는 17세기에 이르러 후세에 길이 남을 영광스러운 지위를 갖게 된다. 북방의 묘향산 사고가 후금의 위협으로 실록이 망실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광해군이 이곳에 실록을 이치시킨 것이다.
광해군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이때 조선 다섯 사고 중 강화도 마니산사고의 실록이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1666년 현종이 이를 복원하는 작업을 지시하면서 적상산사고본을 근거로 등사·교정 작업을 진행토록 했다. 역사는 전라·경상·충청 3도의 유생 300명이 이 작업에 동원되었다고 적고 있다.
정묘호란에 이르러 안국사 승려 상훈이 사고의 서책을 절 뒤편 석굴로 옮겨 보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이곳의 실록을 창경궁 장서각으로 이동시켰다. 이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 중 하나인 적상산사고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아무도 간 데를 모르고 그저 북한으로 반출되었으려니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던 2014년 하나의 사실이 밝혀졌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김일성이 조선왕조실록을 평양으로 가져오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 2012년 평양에서 발행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라는 김일성 저서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리조실록 구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북은 1980년 조선실록 한글본을 편찬했고, 실록은 김일성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1990년대 이곳에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적상산사고도 안국사도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적상산사고는 지금 자리로 이전했으며 안국사도 옛 호국사 터로 이전하게 되었다. 호국사는 여순 사건 당시 빨치산 근거지가 될 것을 우려한 무주 사찰주임이 불태워 없앤 절이다.
안국사 극락전 내부에는 1997년 보물로 지정된 10m 높이의 괘불 탱화가 있다. 1728년(영조 4)에 제작된 것으로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로 되어 있다. 화폭 중앙에 화면을 거의 꽉 채울 정도의 석가모니불이 자리 잡고 있으며 왼쪽으로 다보여래와 문수보살·관음보살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과 보현보살·대세지보살을 배치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림 속 석가모니 팔이 유난히 길다.
양수발전소의 산물, 적상호와 머루와인동굴
적상산 중턱 450m 지점에는 ‘무주머루와인동굴’이 있어 나들이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무주양수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굴착 작업용 터널로 사용되던 것을 업사이클링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무주는 국내 머루 생산량의 약 60%를 담당한다. 무용지물이 될 뻔한 양수발전소 작업 터널이 머루와인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머루 농가 110여 가구와 5개 머루와인 제조업체가 힘을 모았다.
머루는 포도와 유사하게 생겼지만 열매가 작고 성글다. 또한 단맛이 진하고 향이 독특해 최근 와인 제품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머루와인은 폴리페놀·레스베라톨 같은 항산화성분이 일반 포도주의 2~5배에 달해 장수 건강식품으로 통한다.
동굴 초입, 반딧불을 형상화한 환상적인 미디어아트 월을 지나면 익살스러운 트릭아트 존, 화려한 빛 터널 존으로 이어지며 시음장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시음장에서 맛볼 수 있는 머루와인은 총 5종이다. 덕유양조·무주군산림조합·샤또무주·산들벗·칠연양조에서 각각 출시한 제품들로 맛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산미가 있거나 더 달콤하거나 하는 약간의 차이는 지니고 있다. 시음 후 개인의 기호에 따라 구입하면 된다.
안국사에서 무주와인동굴·천일폭포·적상산사고·적상호로 이어지는 길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특히 천일폭포는 하늘 아래 단 하나뿐인 폭포라는 뜻이다. 적상산 절벽 벌어진 수직 틈으로 물이 흘러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폭포를 이루었다. 30m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하얀 동아줄처럼 보인다.
적상호 둘레길에 마련된 적상산전망대에 오르면 무주 시내는 물론 멀리 무주리조트·향적봉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는 특이하게도 커다란 원통형의 구조다. 무주양수발전소의 발전설비인 조압수조를 전망대로 활용했다고 한다.
한편 하부댐이 있는 무주호 둘레길에는 무주양수발전소 전시관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양수발전이란 전력 사용량이 적은 밤에 상부 저수지로 물을 끌어 올렸다가, 전력 사용량이 많은 낮에 하부 저수지로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수력발전을 말한다.
해발 860m 지점에 자리한 적상호는 하부 저수지인 무주호에서 끌어 올린 물을 담아두기 위해 건설한 인공호수로 280t의 물이 580m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 낙차로 전력을 생산한다.
무주지역이 지대가 높다 보니 하부댐인 무주호도 해발 28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무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가을 겨울이 빠르고 봄이 늦다. 무주에 갈 때는 옷을 한 겹 더 걸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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