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조현병 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묻지마 범죄’와 같은 강력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주점에서 김모(34) 씨가 23세 여성을 살해했다. 경찰은 김모 씨를 조사하며 그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에는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김모(17) 양이 8세 여아를 유괴해 살인을 저질렀다. 이후 김모 양이 우울증과 조현병 등으로 주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입원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공포심은 커져갔다. 전문가들은 조현병에 대해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국가 차원의 조기검진, 예방대책 등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정신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처럼 정신질환자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정신질환자 범죄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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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일어난 ‘인천 여아 유괴·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 중 한 곳인 인천 연수구의 한 공원(사진)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건 발생 후 상당한 휴유증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스카이데일리
지난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에 이어 지난 3월 발생한 ‘인천 8살 초등생 유괴·살인사건’ 등 두 건의 끔찍한 살인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건의 가해자들이 흔히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조현병’의 증상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사건 발생 후 사회 전반에 걸쳐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공포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정신질환 환자가 저지르는 강력 범죄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시킨 결과였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먼저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한편, 일반 건강검진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에 대한 검사도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상시적인 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환자를 사전에 파악하고 관련 범죄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초등생 유괴·살인사건’ 사건 발생 3개월 지났지만 인근 주민들 ‘여전히 불안’
스카이데일리는 8살 초등생 유괴·살인사건의 발생 장소인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한 공원을 찾았다. 사건 가해자 김모(17) 양은 이곳에서 8세 여아를 유괴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이 공원은 평소 주민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자주 나오는 곳이다.
공원 곳곳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주민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곳 주민들 중에는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등을 아는 이들이 여럿 존재했다. 가해자 거주지 뒤편에 살거나, 자녀가 피해자와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고 증언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과 지난 3월 일어난 ‘인천 여아 유괴·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들이었다. 이들 사건이 발발한 이후 사회 곳곳에서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직후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위한 애도 메시지를 붙여 놓은 모습(사진 위쪽)과 여아 유괴 사건이 발생한 인천의 한 공원 ⓒ스카이데일리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괴·살인 사건을 언급하자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한지은(39·여) 씨는 “사건 이후 공원 주변에 사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게 황당하고 속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너무 불안해서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가해자 김모 양이 여아를 유괴하던 시간에 공원을 찾았었다고 밝힌 최은미(40·여) 씨는 참담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 씨는 “나중에 TV뉴스로 나오던 사건 소식을 듣고 사건 발생 시점과 비슷한 시간대에 유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당시 자리에 있었지만 왜 보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감정만 들 뿐이다”고 말했다.
최 씨는 사건을 접한 이후 한 달 이상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인근 아파트에 가해자가 거주했다는 사실과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가해자 김모 양은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주민들에게까지 간접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이었다.
사건 이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토로한 주민은 최 씨뿐이 아니었다. 주민 이혜숙(63·여) 씨는 “(피해자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안 됐고 불쌍하다”며 “사건이 알려지고 마음이 너무 아파 한 달 넘게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신질환 관련 범죄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정신질환 범죄는 피해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전체에게 피해를 입힌다”며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병이니 만큼 국가가 나서서 예방·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씨와 마찬가지로 해당 공원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신질환 환자를 예방·관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하다면 건강검진에 정신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5세 남녀 쌍둥이를 키우는 고순진(37·여) 씨는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해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며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부모들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자료 : 법무연수원 [도표=배현정] ⓒ스카이데일리
사건 발생 이후 9살 손녀의 등·하굣길을 마중 나간다는 박원주(66·여) 씨는 “그렇지 않아도 피해자 아이가 손녀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여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우리나라에 정신질환자가 워낙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신질환이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되니 정부에서 나서서 어떻게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씨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감싸게 돼 있으니 가정에서 정신질환을 발견한다 해도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십상이다”며 “정신질환은 건강검진을 통해 국가가 관리를 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매년 증가하는 정신질환자 범죄…“건강검진에 정신질환 검사 포함시켜야”
정신질환 환자 관련 범죄는 10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 환자들이 일으킨 범죄는 지난 2006년 4889건이었지만 2015년 7016건으로 집계됐다. 10년 새 약 43% 늘어난 셈이다.
정신질환자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증가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신질환 환자의 조기 발견 및 관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조현병의 경우도 사전에 병을 파악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라며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 해소가 수반되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정민(35·여) 씨는 “최근 정신병원 방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과거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직접 방문하길 불편해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질환은 결국 본인이 직접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며 “정부 차원의 정책을 만들어 정신과 방문에 대한 인식 전환을 시도한다면 정신질환자들이 주도한 잔혹범죄는 상당수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신질환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병이라는 사실은 인식 전환의 시급성을 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스펙트럼장애 등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한 평생유병률(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5.4%로 나타났다. 성인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겪는 셈이다.
▲ 자료 : 보건복지부 ⓒ스카이데일리
1년 유병률은 11.9%로 집계됐다. 지난 1년 동안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470만명으로 추산됐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조현병 △조현양상장애 △망상장애 △단기정신병적장애 등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1년 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 약 6만3000명, 입원·입소한 환자 수는 약 5만명 등 총 11만3000여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하지만 정작 평생 동안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의한 적이 있는 경우는 전체 조사 대상자의 9.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돼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한 미국(43.1%), 캐나다(46.5%)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 연구책임을 맡은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이 적은 편이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서비스 접근성 확보 등 정책적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최근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방·관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건강검진에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검진도 포함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스카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신질환에 의한 강력사건들이 보도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점검 체계나 사전 검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있었다”며 “하지만 정신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면 낙인효과 때문에 검사를 쉽게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건강도 국가건강검진에 한 항목으로 들어간다는 걸 법률에 명시해 자연스럽게 정신질환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 발의의 목적이다”며 “건강검진 결과는 아무에게나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낙인효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법안 발의의 취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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