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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 셰프를 처음 만난 것은 찬바람이 채 가시기 않은 올 3월이다. 강남구 서초동 남부터미널 모텔 밀집지역에 위치한 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다.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서 단박에 찾기 힘든 곳이다. 대부분 한번 씩 헤매고 전화를 하거나 길 찾기 어플을 통해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소위 ‘C급’ 상권이다.
이곳에서 건물주와 의기투합해서 기술투자를 통해 이태리 음식점을 열었다. 한 셰프는 일을 겁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제 아무리 빠지는 상권이라도 성실하고 정직한 맛으로 승부하면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진심은 통했다. 골목 안이지만 예약 손님이 이어졌고 식당은 금세 지역 맛집으로 소문났다.
그에게는 성실함과 함께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청와대 조리장 출신이란 타이틀이다. 정식 직함으로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실 조리장이다. 한 셰프는 양식 부분을 담당했다. 주특기는 이탈리아 요리를 포함한 지중해 건강식 요리다. 지중해식 식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이다.
한 셰프는 현재 서울 시청역 인근 ENA스위트호텔 레나(R.ENA) 총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은 정통 지중해 건강식 요리를 내놓은 곳으로 어느새 시청 인근 식당 중 명소가 됐다.
레나 직전 2년 정도를 서초 골목에서 이탈리아 음식점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놨고 그 전인 2009년 4월부터 2016년 6월까지 7년 2개월간 청와대에 근무했다. 청와대 전에는 1998년부터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조리부문에서 10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다. 조선호텔 베이커리 사업부에서도 잠시 있었다. 그래서 요즘도 식전빵을 직접 반죽하고 굽는다.
대학 때 음식과 무관한 성악 전공…집안 내력 따라 요리가로 전환
화려한 셰프 경력만큼 그의 학력 사항도 독특하다. 강원도 양양 출신이라서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강릉대학교에 입학했다. 외식관련 학과가 아닌 음악학과를 들어갔다. 대학원 석사과정은 세종대학교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학부 전공자도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세종대 호텔경영 석사과정에 비전공자가 들어갔으니 그의 집념이 엿보인다. 내친김에 그는 경주대학교에서 관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사셰프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마음을 후련하게 풀어드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모처럼 시작된 민주화를 통해 국민의 화합을 이룩할 수 있다면 어떤 단죄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임을 깊이 깨우치면서 국민 여러분의 심판을 기다리겠다. 국민 여러분이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 여러분이 가라고 하는 곳이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느 곳이라도 가겠다.”고 발표를 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스스로 유배를 자처한 것이다.
당시 한 셰프 어머니는 인제군 원통리에서 ‘청기와집’이란 식당을 했다. 한자로 하면 청와대인 데 아이러니하게도 백담사에 와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지게 됐다. 한 셰프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셨으니 2대에 걸쳐 3명의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진 미증유의 기록을 세운 셈이다.
‘한상훈’이란 이름에는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비선실세 최순실 등이다. 한 셰프가 2016년 <여성동아>와 진행한 인터뷰에는 여러 매체서 인용할 만큼 국정농단의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었다. 최순실이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거나 문고리 3인방이 그를 기다렸다는 내용, 또 그들이 회의를 할 때는 배가 고프다며 김밥을 말아 달라고 했고 집에 갈 때 싸가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별 내용 같지 않지만 국정농단의 정황증거로 쓰이기 충분하고 중요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한 셰프는 본인이 고초를 겪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곧은 심지 때문에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와 몇 차례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일 욕심만큼 사회 정의에 대한 욕구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성정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고 직후부터 일정기간 칩거하며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에 빚을 지지는 않았다.
한 셰프는 청와대 생활이 특수한 경험으로 보람됐지만 늘 그렇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오더’가 내려올 때는 따르지 않을 순 없지만 입맛이 씁쓸했다고 했다.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 중턱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 기어코 식사를 하겠다는 ‘그 분’의 독특한 식습관 때문에 등짐을 지고 화구(火具), 기물, 음식을 날라야 했고 요리까지 해서 바쳐야했다.
온통 국보와 보물로 이뤄진 경복궁이 지척인데 숯불까지 피워 고기를 구울 때는 ‘그 분’의 역사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 셰프 어머니가 밥을 해준 대통령은 정자에서 골프 샷도 날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내려온다고.
“청와대 셰프 생활 보람됐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아”
한 셰프 요리는 이탈리아식에 가깝지만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는 지중해식 식사(mediterranean diet)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 먹던 지중해식 식사는 특히 심혈관계 질환 위험 감소와 예방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에서는 지중해식 식사를 잘 유지할수록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줄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페인에서는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중해식 식사의 보조적 요법으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과 견과류를 섭취했을 때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을 줄여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감소시켰다는 보고가 있다. 지중해를 떠나 미국에서 행해진 연구에서는 지중해식 식사를 잘 유지할수록 폐경 여성에서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줄었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지중해식 식사는 올리브 오일, 콩류, 견과류, 정제되지 않은 곡물, 과일, 채소, 어류 섭취가 높고, 유제품과 와인을 가볍게 섭취하는 반면 육류와 육가공품 섭취는 낮은 식이를 말한다. 특히 지중해식 식사는 올리브유에 함유된 올레인산의 단일 불포화지방산이 건강이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성분은 올리브유 외에 카놀라유, 참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과 마카다미아,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레나 요리에 올리브유가 듬뿍 들어가는 이유다.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은 지중해 건강식 요리 추구
한 셰프는 레나에 새벽에 출근한다. ENA스위트호텔 투숙객 조식을 레나에서 책임지기 때문이다. 조식은 한식 한상차림과 식전빵, 수프, 베이컨‧계란프라이‧소시지‧구운야채 등으로 이뤄진 양식이 제공된다. 레나는 조식, 중식 손님이 저녁 손님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인근에 큰 기업들이 많아 저녁 단체손님 예약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광구 ENA스위트호텔 총지배인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송년회를 예약하는 기업이나 단체들이 벌써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 하기 좋아하는 한 셰프는 자신의 꿈에 대해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의 꿈은 다름 아닌 진정한 오너셰프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 모든 셰프들의 꿈이기도 하다. 청와대를 나와서 운영한 식당들은 기술투자 개념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오너십’은 약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자신만의 오롯한 식당을 경영해 보고 싶어했다. 최근 그 꿈에 한 발짝 다가서는 움직임이 있다. 잘 되길 기원하면서 18일 저녁에 반포지구 강물 위에 둥실 떠 있는 ‘더리버 벨라쿠치나’에서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 한강 조망이 최적화 된 모던 이탈리안 퀴진 ‘더리버 벨라쿠치나’ |
‘더리버 벨라쿠치나’는 한강 반포지구 강물위에 떠있는 선상 레스토랑이다. 요리는 모던 이탈리안 퀴진을 지향한다. 김수진 총지배인이 관리를 맡고 김동성 총괄셰프가 음식을 담당한다. 김 지배인과 한상훈 셰프는 친구 사이다.
월드하모니란 합창단에서 김 지배인은 피아노를 쳤고 한 셰프는 베이스 파트를 담당하면서 같은 단원 활동을 했다. 마침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됐다.
한 셰프와 이곳에서 식사는 이번이 두 번째다. 벨라쿠치나는 저녁 식사가 매력적이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한강변 석양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저녁 손님으로는 젊은 데이트 족이 많다는 귀띔이다.
이날 식사는 식전빵, 연어리코타치즈샐러드, 봉골레파스타, 크림리조또, 이베리코스테이크, 등심스테이크 등이 제공됐다. 한 셰프에게 음식 평을 해달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저보다 낫네요”라며 열심히 먹는다. 그러면서 가끔 이곳에 와서 음식을 벤치마킹 해간다고 했다. 한 셰프의 겸손함도 있지만 이 곳 김 셰프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음식이 가볍지 않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레나가 지향하는 지중해식 식사보다는 정통 이탈리안 쪽이라서 음식의 결이 살짝 다르다. 이날은 미각포럼 정기 모임이라 많은 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마침 실내에 피아노가 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김 지배인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김 지배인은 ‘오버 더 레인보우’를 감미롭게 연주했다. 앙코르가 나오자 친구인 한 셰프가 ‘오 솔레 미오’를 부를 때 반주를 해 참석자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
벨라쿠치나는 ‘더리버’의 한 부분이다. 더리버는 ‘요팅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복합레저문화공간이다. 요트를 이용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고 카페와 연회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서울 데이트 족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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