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회사는 단어 뜻 그대로 재산을 ‘믿고(信) 맏기는(託)’ 기업을 일컫는다. 지난 1961년 만들어진 신탁업법에 따라 자본금 5억원 이상 주식회사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신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현금, 유가증권, 채권, 부동산 등을 맡아 위탁자의 재산을 처분해 이익을 내주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대신 관리해주는 것이 주요 업무다. 주력 사업의 성격 탓에 신탁회사들은 무엇보다 ‘이 회사에 나의 재산을 맡기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 신탁회사가 사업 취지에 반하는 행보를 보여 주변의 눈총을 사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은 바로 한국자산신탁이다. 한국자산신탁은 지난 2001년 자산관리공사로부터 민영화 돼 떨어져 나온 이후에도 현재까지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객인 위탁자에게 불공정한 약관 등으로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신탁회사의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고 위탁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당국이 한국자산신탁 회장과 대통령의 인맥 때문에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한국자산신탁의 갑질 논란과 피해자들의 증언, 주변의 반응 등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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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산신탁(이하·한자신)이 믿고 재산을 맡긴 위탁자들에게 불공정한 계약 등을 통해 손실을 교묘하게 떠넘기는 등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들의 재산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는 신탁회사가 존립 목적 자체를 져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목되는 사실은 올해 들어 100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 중인 한자신의 관습처럼 굳어져온 불공정 행위를 정부와 금융당국이 제재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 돈 물 쓰듯 쓰고 오히려 당당…한국자산신탁 갑질에 평생 모은 재산 날릴 판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한 위탁 피해자에 따르면 한자신은 한 시공사에게 지난 2015년 2월분 기성공사비 6억원을 과다지급해 위탁자의 손실을 초래했다. 한자신은 시공사 부도 후 시공사가 부담해야 할 하도급대금 14억800만원을 대납하는 등 부적절하게 사업비를 지출하기도 했다.
한자신이 대체시공사를 선정한 이후에도 원 시공사의 잔여공사비 보다 18억70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 정황도 포착됐다. 쉽게 말해 위탁자들이 맡긴 돈을 임의대로 시공사 업체에 ‘후하게’ 퍼줬다는 주장이다.
위탁 피해자는 해당 사안을 문제 삼고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한자신은 금감원 민원답변서를 통해 “정당한 공사비 지급이었다”며 “신속한 현장인수와 공사재개 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피해 위탁자들은 한자신이 그동안 계약서상 불공정 약관 등으로 고객에 ‘갑질’을 계속 해 왔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행사나 하도급업체 선정에 있어서도 한자신이 임의로 선정해 위탁자들에게 가야 할 이익을 관련 업체들에게로 돌리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냈다.
한 피해자는 자신이 한자신과 맺은 신탁계약서를 약관 사항들 중 불공정 계약으로 의심될 만한 조항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약조항에서 한자신이 위탁자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등 ‘갑질’에 가까운 조항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신탁계약서 상에는 한자신과 위탁자의 한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특약조항에 ‘어떠한 원인에든지 본 신탁계약의 일부 용어 약정 조건, 또는 규정이 불법이거나 무효이거나 집행 불가능하더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본 신탁계약의 나머지 조항은 유효하고 집행 가능하며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탁계약으로 인한 다툼이 발생해 소송이 필요한 경우 을의 본점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으로 한다’ 등도 특약조항이다.
피해자는 이런 특약들로 인해 계약서상 ‘갑’인 위탁자가 ‘을’인 한자신에게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을인 한자신이 갑인 위탁자에게 오히려 ‘을질’을 할 수 있는 전제가 마련돼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내용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약관조항 유형에도 해당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위탁 피해자들의 변호인은 “(한자신이)을이 전혀 을이 아니다”며 “신탁계약서에 나온 특약사항이 모두 불공정한 약관 조항들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나같이 사업자인 한자신의 손해배상범위를 제한하는 반면 위탁자는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표현이 많다”며 “사업자 측의 고의·중대한 과실에 대한 법률상 책임을 회피하는 조항 일색이다”고 설명했다.
한자신은 올해 상반기에만 신탁사업과 관련해 100건이 넘는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공정한’ 특약 약관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위탁자들이 뒤늦게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조치를 취한 결과다. 하지만 법적인 보호장치가 없어 현실적으로 피해를 구제받기는 어려운 처지다. 위탁 피해자들은 한자신이 “특약 약관을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며 “관련 사항을 알았으면 한자신과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금감원·공정위 피해 사실 알고도 모른 척…대통령 인맥 봐주기 논란
주목되는 사실은 위탁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불공정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할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당국이 한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에 나서지 않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난 11월 6개월간 한자신 관련 민원을 제기했던 한 위탁자에게 “귀하께서 손실을 회복할 방안을 성실하게 검토하여 안내했다”면서도 “민사소송이 계속 중이라 신탁계약의 불공정성을 법원의 최종판단을 받아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발을 뺐다. 이 회신문서를 받은 위탁자는 “금감원이 이러한 답을 주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내쫓듯이 말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감원에 한자신 관련 민원을 제기한 위탁 피해자들은 “금감원이 한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제나 위탁자들이 피해보상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돕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법적으로 해결하라”, “공정위쪽에 제기하라” 등의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마찬가지였다. 공정위에 한자신 관련 민원을 넣었던 한 위탁 피해자는 “공정위가 두 달 만에 답변을 줬는데 아직 한자신쪽에서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 뿐이었다”며 “저쪽 자료를 받은 후 6개월 안에 답변을 주겠다고 했는데 한자신이 자료를 언제 줄지 어떻게 아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피해자에 따르면 사실 공정위가 말한 관련 자료들은 위탁자에게도 받을 수 있고 등기소에서도 충분히 뗄 수 있는 자료다. 즉 공정위도 ‘핑계’를 대면서 피해자들을 나몰라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현재 한자신 신탁계약서가 불공정약관 심사에 청구된 상태다”며 “특약이 약관에 우선하는데 그 내용이 당사자 간 양해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일련의 논란과 의혹과 관련 당사자인 한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자신 관계자는 “신탁계약서는 표준계약서고 특약도 큰 틀에서 같다”며 “위탁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이루어진 정당한 계약이다”고 답변했다.
[곽성규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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