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개나리의 학명에는 일본 이름이 붙어있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개나리의 학명은 ‘폴시티아 코리아나 나카이(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다. 물푸레나무과인 개나리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학명의 폴시티아는 개나리 속(屬)을 뜻하며 코리아나는 한국에서 발견된 종이란 의미다. 나카이는 학계에 최초 보고한 사람의 이름이다.
우리의 토종식물인 개나리의 학명에 나카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근대 식물학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형태 분류를 처음 시작한 인물은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다. 그는 1908년부터 시작해 해방이 된 후에도 한반도 전역의 식물을 찾아다녔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토종식물들을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하고 명명자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 토종식물에 일본인 이름이 붙은 종은 비단 개나리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이자 전 세계 딱 두 종만이 서식 중인 금강초롱도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다. 금강초롱의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이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인 하나부사야는 초대 일본공사로 조선에 부임했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이다. 나카이가 금강초롱꽃에 하나부사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종의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초롱과(科)에 속하는 금강초롱꽃은 하나부사야라는 일본인 이름이 붙은 하나의 새로운 속(屬)이 됐다.
더욱이 나카이는 울릉도에서 발견된 섬기린초(Sedum takesimense Nakai)와 섬초롱꽃(Campanula takesimana Nakai) 등에 다케시마라는 종소(epithet)명을 붙였다. 식민지시대였기에 나카이는 당당히 자신들이 부르는 명칭인 다케시마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식물은 독도가 아닌 울릉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527종의 식물 중에서 나카이란 이름으로 학계에 등록된 학명은 무려 327종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한반도는 나카이의 식물보물 창고였던 셈이다. 일본에 이름을 빼앗긴 우리나라 특산물은 식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특산종으로 알려진 미선나무는 학명이 아벨리오필럼 디스티쿰 나카이(Abeliophyllum distichum Nakai)이다. 미선나무는 1속(屬) 1종(種)이라고 하는 독특한 나무다.
미선나무는 1917년에 발견돼 1919년 학계에 보고됐다. 지금도 미선나무의 기준표본은 일본 도쿄대학교 표본관에 소장돼 있다. 느릅나무(Ulmus davidiana var. japonica Nakai), 개느삼(Echinosophora koreensis Naka) 등도 나카이의 이름이 붙어 있다. 문제는 이처럼 정해진 학명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수목원의 장계순 연구원은 “학명을 바꾸려면 개관적인 다른 근거를 확실히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과(科)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아 다른 과로 분류돼야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학계에 인정받아 다른 과에 편입되거나 분류될 경우 특산속이란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권 침탈로 토종식물의 이름까지 뺏긴 설움은 일선 현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나무와 꽃을 가르치고 숲을 공부하는 현장이다. (사)숲연구소에서 숲해설사들을 위해 식물 강의를 하고 있는 윤연순 강사는 “식물 강의를 하다보면 일제강점기에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국민이 내 나라 내 것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빼앗긴 슬픔을 느끼게 된다”며 “국제적인 규약이다 보니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영문명이라도 바꿔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반출된 우리나라 전통문화재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일본
연약한 나라가 국가의 주권을 빼앗겨 자국의 토종식물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명명되고 학계에 보고된 것과 마찬가지로 약소국의 설움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문화재 보존의 현장이다. 현재 해외로 유출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총 17만2000여점(2018년 4월 기준)에 달한다. 국외로 유출된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꼽힌다.
몽유도원도는(夢遊桃源圖)는 안평대군이 자신이 도원에서 논 꿈속의 광경을 안견에게 그리도록 지시해 탄생했다. 조선 초기 산수화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국보급 문화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전시돼 있다. 도쿄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가야 금관, 쿄토 센오쿠 하쿠코칸에 보관돼 있는 수월관음도 등도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다.
현재 국외로 유출된 우리나라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에는 현재 7만4000여점의 우리나라 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현지조사 및 자료조사 등으로 확인한 수치일 뿐 정밀조사를 할 경우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에 우리 문화재가 많은 이유로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의 기간 동안 약탈이 빈번하게 이뤄진 점이 꼽힌다. 특히 1883년 일본 육군 참보본부 밀정에 의해 광개토대왕비 비문 탁본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일본인들의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청일전쟁 기간인 1894년 9월에는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서 탈취한 전리품으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1894년에는 제실박물관 관장인 구기 다가이지가 ‘전시청국보물수집방법’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기 전부터 국보급 문화재 약탈에 대한 수집방법을 기록했던 것이다.
국권을 빼앗은 일본은 우리나라 문화재 약탈에 더욱 열을 올렸다. 문화재청의 김병연 씨는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촉탁으로 근무했던 일본인 ‘고이즈미 아키오가는 ‘고분발굴만담’이란 책을 통해 ‘경주·창녕·대구·성주 등 고분이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도굴을 시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문화재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고 반환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동간 정부는 1965년 한일문화재협정(1432점), 1991년 유래협정(333점), 2011년 조선왕조도서협정(1205책) 등을 통해 3000여점을 반환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본에는 우리나라 문화재가 많다. 특히 일본은 한일문화재협정을 통해 문화재 반환 문제가 종결됐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어 나머지 문화재를 돌려 받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국제조약은 ‘불소급의 원칙’을 적용하기 있기 때문에 1973년 협약 발효 이전의 사건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재의 환수는 지속적인 외교노력이 필요한 현실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수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됐지만 돌려 받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며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적인 교섭과 개인 기증, 경매 등을 통해 유물을 찾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의 경우 반환 요구가 빗발치자 현재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전시나 협조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고 설명했다.
[이철규 기자/ 행동이 빠른신문ⓒ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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