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이철규 부장|배태용·김병만·정현민 기자]예년에 비해 평균 온도가 높지만 올해 겨울은 유독 춥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인한 가계경제 위기 때문이다. 경제구조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가계 경제가 날로 악화되면서 이를 책임지는 가장들의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다. 가장들에게 기존에 비해 더욱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되면서 과거 가장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어려움을 이겨낸 이들의 사례가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친구의 배신으로 몰락한 집안…오로지 가족을 위해 버티고 버텨 끝까지 책임완수
“가족은 저를 끊임없이 달리게 하는 원동력 같은 존재예요. 가족이 없는 삶은 특정한 목표 없이 달리는 마라톤과 다름 없죠. 가족이 있다면 그 반대에요. 저는 아이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마라톤처럼 인생에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달리다 넘어져 상처가 나기도 하고 때론 이젠 걷고 싶을 때도 있죠. 저도 지금까지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를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어 포기하지 않았죠. 물론 지금도 전 달리고 있죠.”
김장빈(58·남) 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가장이다. 김 씨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먹성 좋은 아이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가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행복을 얻기까지 그는 순탄치 않은 삶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어쩌면 그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더욱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일지 모른다.
김 씨의 20대는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한가운데 내던져진 지옥 같은 삶이었다. 그는 20대 초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 건축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당시 그는 영어가 능통하지 못했기에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익혔다. 그는 ‘배워야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묵묵히 일했다. 뜨거운 사막과 태양열 아래에서 수년여 간 열정을 바친 덕분에 그는 건축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김 씨는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이후 중학교 동창인 친구와 주택 건축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김 씨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뭐든 순탄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친구가 자금을 들고 잠적해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린 그는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땐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토록 치열하게 살며 한푼 두푼 모았던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으니까요. 결혼하지 않았다면 전 아마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얼굴에 맘껏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마냥 주저앉을 순 없었죠. 그래서 1995년 건축 계통인 소방 설비 일에 뛰어들었죠.”
삶의 맨 밑바닥까지 떨어지다 보니 김 씨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는 대기업 건축 현장, 소위 ‘막노동판’이라 불리는 곳을 전전하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건축업계의 특성상 1주일에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게 관행이었지만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가족의 기둥이란 책임감에 하루 1~2시간 쪽잠을 자며 일에만 매달렸다.
이후 그는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1000명 정도의 근로자를 관리하는 현장소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수입이 늘면서 가정도 차쯤 안정을 되찾아 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같은 일을 하는 지인들과 함께 건축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에도 오로지 가정을 위해 일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매사 최선을 다했다.
“돌아보면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죠. 그렇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쉴틈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세상에 정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지만 전 안 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안되는 일은 없죠.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저에겐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수입 일정치 않은 무명배우, ‘가족의 행복’ 담은 CF로 새로운 삶 얻어
영화배우인 강재은(45·남) 씨는 2005년 영화 ‘천군’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영화 ‘공작’, ‘신과 함께’, ‘마스터’, ‘사냥’ 등에 출연했다. 주로 단역을 맡았다. 경력 20년의 베테랑 배우지만 단역에 그치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가족을 책임진다는 일념 하나로 일에 매진해 왔다.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일터가 고정적인 게 아니었거든요. 그 때문에 해외에서 촬영할 경우 2~3달 동안 집을 비운 적도 있어요. 수입이 일정치 않다 보니 아내도 직장에 나가야 하고 이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팠죠. 지금도 아이들을 부모님이나 장인어른·장모님에게 맡기고 있지만 너무 죄송하죠.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었죠.”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계기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됐다. 가족의 화목함을 컨셉으로 하는 광고를 찍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담아 진정성 있게 표현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이후 비슷한 컨셉의 광고인 △사랑방잡이 △매일유업 엔요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 UCC △서울랜드 유튜브 광고 △롯데월드 언더씨킹덤 △KDB 산업은행 등 여러 광고 작품을 촬영했다. 덕분에 그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제력과 시간을 가지게 됐다.
“비록 제가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충분히 배우고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가족이란 존재가 있단 것만으로도 제 삶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단지 전 아이들에게 ‘좋은아빠’로 남고 싶어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은 따뜻하고 소중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일확천금 욕심에 가족 전체가 떠돌이 신세 전락…딸의 울음에 재기결심 후 마침내 회생
김구현(45·남) 씨는 2004년 결혼해 올해로 17년째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아내는 군 제대 후에 만났다. 현재 김 씨는 여느 가장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또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그에게도 부침은 있었다.
과거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식집에 취업해 부지런히 돈을 벌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솜씨에 그는 일식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덕분에 가계 경제도 점차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통장에 잔고가 쌓이자 욕심이 생겼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여러 지인과 부동산 전문가를 통해 발전 가치가 있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특히 한 부동산 전문가로부터 소개받은 땅을 사기 위해 전세금과 약간의 생활비를 빼고 그동안에 번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투자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그 땅은 전문가의 말과 달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였으며 부동산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결국 김 씨와 가족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으며 전세 계약이 끝난 후엔 노숙자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았는데 저의 잘못된 선택으로 온 가족이 불행해졌죠. 이때의 죄책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거의 1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어린 딸이 제 모습을 보고 서럽게 우는 것을 봤어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더군요. 결국 여기서 무너지면 나뿐 아니라 온 가족이 위험에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재기를 결심했죠.”
그는 일주일에 4시간을 자며 밤낮없이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내 인테리어 일을 배우길 권유받았다. 김 씨는 곧장 실내 인테리어를 배웠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끝에 나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처음 일당을 받았던 그는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밑바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금액이 적거나 소규모 계약이라도 고객의 요구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고객과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그들이 바라는 것 이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기존 고객들이 또 다른 고객을 소개시켜 주면서 그의 사업은 점차 번창해 나갔다. 수익도 해가 갈수록 증가했다. 덕분에 빚도 청산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 정말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달려왔던 거 같아요.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저와 제 가족이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과 남들처럼 생활하고 산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해요. 가족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감사할 뿐이죠. 전 인생이란 끊임없이 도전하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 그 정점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시간 그 지독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가족’ 때문이었어요. 앞으로의 남은 시간도 쉽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자만하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할거에요.”
[김병만 기자/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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