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 프로젝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고용보험 사각지대라며 자의적으로 해석한 후 고용보험을 적용하려하자 전문가와 경영계, 심지어 정책 수혜자들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현실과 괴리된 부분이 상당한데다 재원마련 방안 등 핵심적인 내용이 결여된 졸속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면 무조건 일사천리…원하던 원치 않던 고용보험 의무가입 시행 초읽기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고용보험은 집권 후반기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하며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후 정부는 예술인, 특고, 자영업자 등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순차적으로 확대해 오는 2025년 모든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을 완성키로 하고 올해 안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등의 골자를 담은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했다. 택배기사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자들을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시키기 위한다는 취지다.
해당 내용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과 함께 논의됐다가 폐기된 내용을 결국 현실로 옮긴 것이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는 예술인만 고용보험 적용을 받도록하는 내용의 개정안만 통과됐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수를 획득한 정부·여당은 국회 출범 이후 특고 고용보험 적용과 관련한 법 개정을 재추진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대가를 얻는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를 의미한다. 근로자와 사업자 중간 성격을 지닌 계층에 속하는 편이다. 이들은 회사에 직접 고용돼 있지 않고 위탁계약을 맺고 종사하는 명목상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그동안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조종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신용카드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등이 있다.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않긴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쥐는 급여는 높은 직업군이다.
이들은 내년부터 고용보험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안을 살펴보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의 보험료는 근로자 본인과 사업주가 공동 부담한다. 근로자에겐 고용보험의 고용안정 사업과 직업능력개발 사업은 적용되지 않아 실업급여 보험료만 부과된다.
고용보험 가입대상에게는 실업급여와 출산전후급여가 지급된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이직일 전 24개월 중 1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고 자발적 이직 등 수급 자격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소득 감소로 이직한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환상정책에 우는 특수고용근로자들 “왜 우리가 정권 인기몰이 희생양 돼야 하나”
정부와 슈퍼여당은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고용보험 드라이브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지만 전문가와 기업, 심지어 당사자들조차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정마련 방안 부재를, 기업은 고용주 부담 증가를, 근로자는 수입공개로 인한 세부담 증가 등을 각각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근로자는 본인이 원치 않는 법안을 정부가 강제로 밀어붙이는 데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보험설계사, 가전제품 설치기사, 택배기사, 골프장 캐디 등 4개 분야 근로자 23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2.8%가 고용보험 일괄 적용에 반대했다. 근로자를 위한 정책을 정작 근로자 본인이 꺼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응답자 대다수는 고용보험 의무 가입으로 사업주가 보험료를 부담하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 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이 노출된다는 점도 반대이유로 꼽혔다. 특히 10명 중 4명 이상은 고용보험료 산정을 위해 사업주가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해야 하는 소득이 다른 사회보험에도 적용되면서 세부담 증가로 인한 소득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14년 가까이 택배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노진열 씨(가명·39)는 “입법취지는 이해하나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하는 것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며 “회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고용보험료가 너무 크면 근로자 숫자를 감축하거나 임금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합리적인 제도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내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상당히 아쉽다”며 “이번 고용보험 확대 정책은 정책 수혜자가 아닌 다른 국민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소위 보여주기식 정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대통령 인기영합 정책의 희생양이 돼야하나”라고 꼬집었다.
경영계도 사업주 측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 입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은 사업주 측의 요청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다”며 “고용보험 당연 가입 요건 완화와 보험료 분담비율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고용보험에 따른 사업주 인건비 증가분이 직간접적인 고용조정 압력으로 이어지는 부작용 최소화와 재원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입법안보다 근로자의 보험료 부담분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정부가 실업급여 지급액과 기간을 늘려 고용보험기금이 줄어드는 상황이라 보험가입자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의 역차별을 부각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이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며 “충분한 재원확보와 정치권 및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인데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법안 강행 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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