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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 이예진 순수미술·조형 도색 작가

“스펙타클한 현대사회에 잠식된 인간 모습 그리죠”

극사실주의 피규어 도색으로 명성…유명 업체와 협업 진행도

기사입력 2021-12-21 00:05:00

▲ 이예진 순수미술·조형 도색 작가(사진)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 사물, 사회, 현상 등을 인물화를 통해 표현하는 순수미술 작가다.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현대사회는 물질성과 주체성을 잃은 채로 스펙터클만이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물질, 사물, 질서, 사회 등 아우르는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저는 고도로 파편화된 사회 속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물질로써 표현해내요. 쉽게 말해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하거나 상상한 다양한 것들에서 비롯돼 인물과 사물, 상황과 관계를 통해 표현하죠.”
  
키덜트(Kid+Adult) 문화 확산에 따라 주목되는 피규어 업계에서 최근 실제 인물과 거의 흡사하게 만드는 장르인 ‘극사실주의’가 크게 부상했다. 이와 함께 피규어의 조형 도색 및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식모 작가로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이 이예진 작가(28)다. 이 작가는 실제 사람과 같은 피부 질감과 머리카락을 표현한 작품을 다수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조형 도색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인물의 형상을 캔버스에 그리는 게 더 익숙한 순수미술가다. 스카이데일리는 순수미술가이자, 조형 도색 작가인 이예진 작가를 만나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와 지향점에 대해 들어봤다. 
 
물질성과 주체성 잃은 현대사회…인물화 통해 메시지 던져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엔 미술 선생님들로부터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잘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곤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단순히 재현하는 벗어난 그림을 그리며, 작품에 임할 때 있어 사고를 전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포트폴리오 덕분에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게 됐죠.”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엔, 수많은 작가의 그림을 보고 미술이론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했죠. 처음엔 단순히 많은 그림을 봐야 예민한 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기도 하고 직접 전시장에 다니면서 눈에 익혔어요.”
 
차별화된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에 이 작가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졸업 작품을 선보일 당시엔 주변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정작 이 작가 스스로는 본인 작품에 대해 100% 만족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무사히 졸업 작품을 완성했지만,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리기로 정했던 만큼, 100% 만족이 되지 않았어요. 향후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만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어요. 특히 앞으로 선보일 어떤 작품이든, 그림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기로 했죠.”
 
▲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던 이예진 작가는 캔버스에 인물을 독창적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던 중 피규어 도색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카이데일리
 
“졸업 직전에 유럽여행을 하면서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실제로 보았을 때 느껴지던 감동과 충격은 여전히 잊히지 않아요. 또한, 여러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가들은 지금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여러 문물을 때로는 자세히, 때로는 멀리서 보고, 듣고 경험했어요. 그러면서 그리기를 계속해나갔고 저의 그림의 방향성을 점점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시작은 고도로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저 또한 여러 조각의 파편들이 구축돼 만들어진 존재임을 긍정하는 것부터였어요. 이미지의 심층적 의미가 사라지고 부유하는 것에 대한 물질적이고 행위적인 대응법으로, 보고 들은 것, 생각한 것을 파편화한 뒤 다시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는 이런 과정이 공허한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신체적 측면에서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 감각적 각성으로 향하는 부단한 움직임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상상력과 감각이 발생시키는 공명을 마주하기 위한 물리적 토대였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영감을 얻은 이 작가는 인간 존재를 파편화된 것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유기체로 보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파편의 집합체로서의 인간을 물질, 구조 등 그림의 형태로 표현하고자 하니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이 작가는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조형적 실험과 동시에 관찰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각본을 토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들을 통해 상황과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은 마치 마법 같아 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작업 중 찾아온 공황, 돌파하기 위해 시작한 피규어 도색…영감에 도움
 
“본격적으로 작품에 임하려고 했는데 원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또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非)재현적인 방식으로 인물을 그려나가던 중 출구가 없는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던 중 접하게 된 것이 피규어 도색이에요.”
 
▲ 이예진 작가는 피규어 도색을 하며 더욱 정교한 채색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린 ‘장대비’ 등 작품은 내년 개인전을 통해 전시될 예정이다. ⓒ스카이데일리
  
“피규어 도색 작가들이 미디어 속 여러 모습을 취합한 다음, 자신이 본 인물의 모습을 작은 조형 안에 담는 것을 봤어요. 이것이라면 지금 느끼는 답답한 부분이 해소될 수 있겠다 싶어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시작했죠. 애초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평면이 아닌 조각 위에 1.0mm 이하의 세부적인 도색 기술을 필요로 하는 피규어 도색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어려웠던 만큼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개인 SNS에 사진을 게시했는데, 어느 순간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죠.”
  
피규어 시장이 커지면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실제 사람과 비슷한 ‘극사실주의’ 피규어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 작가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본 이들이 의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가는 이러한 의뢰를 하나둘씩 받게 됐고, 피규어 도색 작가로 업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명성을 얻은 이 작가는 개인 도색 의뢰를 비롯해 유명 피규어 제조 업체인 미시 커스텀(Mishi Custom) 등과 다수의 협업을 진행하는 등, 업계에서 실력이 출중한 도색 작가로 정평이 나기 시작했다.
  
“피규어 작가로 활동을 이어오며 인물 특성과 아주 작은 부분들의 정교함도 놓치지 않는 좋은 버릇이 생겨서 더 예리하고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최근엔 완성한 ‘장대비’는 비가 쏟아져 내릴 때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을 포착한 그림이에요. 관객의 관점에 따라 여러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죠.”
 
“‘찰칵’이라는 그림은 몰래카메라 범죄가 논쟁거리가 됐을 때 그렸던 작품인데 기본적으로 저를 둘러싼 현상들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크던 때였어요. 어긋난 면들과 다양한 색들이 모여 드러내는 어두운 상은 제가 느끼던 감정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이죠. 내년 개인전 때 이러한 인물화를 다수 선보일 예정이에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달려왔는데, 대중들이 알아봐 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피규어 도색 작가로 많은 작업을 이어오며 기술을 터득한 결과, 이제 이 작가는 원하는 이미지를 인물의 인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밝혔다. 그러한 만큼 이제는 그동안 자신이 바라보고 지향했던 것들을 캔버스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 작가는 내년 개인전을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며 자신의 작업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인물화와 피규어로 보여드리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요. 이러한 공감대는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힘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작가로서 책임감을 잃지 않을 거예요. 대중들에게 고찰하고 마음을 다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배태용 기자 / sky_tyb , tybae@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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