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장사들이 물적분할 방침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핵심 사업부를 자(子)회사로 편입한 뒤 증시에 신규 상장하는 방식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쪼개기 상장’ 후 모(母)회사의 기업가치가 떨어져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적분할을 결정한 기업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신설 자회사의 지분도 전혀 받지 못해 핵심 사업부를 보고 투자한 기존 주주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은 물적분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배터리 등 신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기 위해선 재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기업들이 대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금 확보 수단으로 ‘쪼개기 상장’을 택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논란이 지속되자 정치권에서는 우선배정 등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LG화학, 물적분할 후 1년 만에 10% 하락… ETF 변경 시 추가 하락 우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들은 총 50건의 기업분할(인적·물적)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물적분할은 47건(94%)에 달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19년(39건)과 비교하면 8건이 늘어났다. 물적분할은 기업을 분할할 때 기존 회사(모회사)가 신설 회사(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 인적분할과 상반된 개념이다.
물적분할 자체만으로 기업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지배구조만 바뀔 뿐이다. 기존 주주들은 자회사를 간접적으로만 지배할 수 있다. 문제는 이중 상장이다. 모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할 때는 자회사의 가치를 온전히 주가에 반영하지만 자회사가 추가로 상장하면 중복 가치 계상, 이른바 ‘더블 카운팅’ 문제로 모회사의 주가는 떨어진다. 대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소액주주의 주주가치는 희석된다.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설립한 자회사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배터리사업 부문을 분사한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LG화학은 2020년 12월 1일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다. 분할 전 80만원이던 LG화학 주가는 이달 7일 기준 71만9000원으로 약 1년 만에 10.1% 하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27일 상장을 앞두고 있어 하락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2차전지 상장지수펀드(ETF)가 LG화학을 제외하고 LG에너지솔루션을 담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앞서 지난해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를 상장한 SK케미칼도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자회사 상장 전 31만8000원이던 주가는 7일 현재 14만5500원으로 54.2% 급락해 반토막났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상장한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상장 전과 비교해 11.5% 떨어졌다. 심지어 SK이노베이션은 작년 10월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설립했다. 최근 3조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에 나선 상태라 상장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물적분할을 발표한 상장사들의 주가도 내리막이다. NHN은 지난달 24일 클라우드사업 부문을 분할해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발표 전날 9만4300원이던 주가는 7일 기준 4만450원으로 57.1%나 폭락했다. 지난해 11월19일 콘텐트사업 부문 물적분할을 예고한 CJ ENM도 발표 전날과 비교해 20.7% 떨어진 상태다. 작년 6월9일 자율주행사업 부문을 분할한다고 전한 만도도 발표 전날 대비 8.8% 감소했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작년 9월15일 첨단소재 부문을 물적분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공시한 뒤 7일까지 14.3% 하락했다.
이러한 자회사의 분할과 재상장 방식은 해외에서선 찾기 힘들다. 금융기관의 허가를 받기 힘들고 모회사 주주들에게 집단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기업들은 기업분할을 진행할 때 분할 취지, 효과, 위험 등을 주주들에게 공시한다. 기업분할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인적분할 방식이다. 지난달 10일 독일 기업 다임러는 트럭사업부 다임러트럭을 분할한 뒤 주주들에게 다임러트럭 신주 65%를 모회사 지분율에 따라 지급한 바 있다.
기업들은 배터리(2차전지), 바이오 등 신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물적분할 후 기업공개(IPO)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유상증자, 채권 발행 등으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대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물적분할을 선호한다.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고, 채권을 발행할 경우엔 이자 지급에 따른 부채 증가로 재무상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물적분할 그 자체로는 주주가치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서도 “한국에서 물적분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물적분할 목적이 오로지 IPO를 통한 신규 사업 자금조달에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물적분할과 IPO를 통해서 자회사가 막대한 현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구주 매출보다는 신주 모집 형태로 IPO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모회사에 투자한 주주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은 크지 않다”면서 “결국 IPO를 통해 이익을 얻는 주체는 우리사주조합, IPO를 통해 신주를 배정 받은 투자자로 한정된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의 권리는 철저하게 소외된다”고 꼬집었다.
주식매수청구권 등 대안 제시… 거래소 “상장심사에 주주 소통 반영”
기업들이 물적분할 후 IPO를 추진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개인투자자를 대변하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대기업 상장사들의 무분별한 물적분할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지배주주가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소액주주에게 전가하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교묘한 논리로 허술한 법망을 피해 소액주주 권리를 짓밟는 전근대적 행태임에도 금융당국 및 국회가 구경만 하면서 방치하고 있어 큰 문제다”면서 “물적분할을 인적분할로 돌리거나 일반주주들의 의사에 반할 경우 회사가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주는 주식매수청구권 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정치권도 이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6일 열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기업이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주 보호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의 물적분할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물적분할과 상장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주주의 비례적이익 보호의무(SIS)와 이해상충 해소의무를 도입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경영진의 이해 상충·주주가치 훼손 금지는 주식회사의 기본 원칙상 당연한 것”이라며 “기업의 주주가치 훼손·편취를 금지하는 SIS 선언 등이 직접적인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물적분할 제한요건 설정 △기관투자자의 부당한 물적분할 찬성 제한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신설 등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일반주주에게 상장차익 회수권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으나 기존 주주에 전면 신주 배정을 의무화하면 인적 분할과 같아져 사실상 물적분할 금지법화가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관휘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모자회사 동시상장은 기업지배구조의 이슈이고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배분 이슈인 ‘터널링(대주주 전횡)’이 핵심이라며 일반주주의 주주권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업에 자금이 필요한 유망한 핵심 부서가 있어서 유상증자하려 한다면 모회사가 증자하면 되지만 이 경우 지배권이 위협을 받게 된다”며 “지배주주들한테는 지배권이 위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자회사 분할 상장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 후보들이 분할 전 모기업 주주 대상 신주인수권 부여 혹은 주식 우선 배정 공약 등을 제시한 데 대해선 “공약이 나온 건 바람직한 일이다”면서도 “애초 주주들한테 피해가 갈 것을 알았다면 이사회에서 통과가 안 됐어야 하지만 지금은 통과가 돼도 불법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일반주주의 주주권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선진시장에서 모두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시장에서만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물적분할 및 자회사 상장 등 의사 결정 및 추진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이 보호되도록 법적·실질적 개선방안을 검토·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상무는 “주식매수청구권이나 신주인수권 등의 경우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주식매수청구권, 신주인수권 등이 기업 구조개편 등 경영활동과 미래 성장력 확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며 “주식매수청구권 및 신주인수권 도입 필요성, 해외사례 등을 감안해 도입 여부를 심도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적분할 후 모회사 주가가 단기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주주와 소통 노력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거래소는 향후 ESG() 모범규준 등에 주주와의 소통 노력이 더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원 등과 협의하고 상장심사 과정에서도 ESG 관련 심사항목으로 주주와의 소통 노력을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