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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의리파’ 박한 감독 프로 농구판에 근처에도 안간 이유는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20 09:50:26

 
▲박병헌 언론인·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술 실력은 기네스 북 오르고도 남아
아무리 과음해도 운동은 거르지 않아
농구 인연 60년 넘는 외길 인생 고집
49연승 고려대 농구부 전성기를 주도
한국 농구 강호되는 게 ‘노병’의 바람
 
22년간 고려대 농구부 감독을 지냈던 박한 전 감독에게는 술 얘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술 실력은 가히 기네스 북 감이다. 그렇지만 담배는 평생 입에도 대지를 않았다. ‘두주불사(斗酒不辭)’, ‘무량대주(無量大酒)’ ‘주성(酒聖)’ 등 술과 관련해 많은 별명이 따라 다닌다. 농구인들이 장이 길어 다른 운동 종목 선수에 비해 술을 많이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 전 감독의 술 실력은 평생 끊임없이 운동을 해온 덕분일 게다. 전날 밤 아무리 술을 마셨더라도 이튿날 운동을 거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강한 정신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술 관련한 전설적인 사연 수두룩
 
대학 3학년 때 친구 4명과 소주 99병을 비웠다거나, 고려대 감독이던 1980년대 만리포 하계훈련 때에는 선수 20명과 일대일로 술 대결을 벌여 모두 녹다운시켰다는 등 전설적인 사연들이 수두룩하다. 몇해 전 제자들이 마련해 준 고희연에서 150명이 넘는 제자들의 축하주를 모두 마신 뒤 막판에는 세숫 대야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원 샷에 들이키는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제자들의 우레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음을 물론이다. 그렇지만 박 전 감독은 자신의 술실력에 대해서 결코 호언을 하지 않는다. 자신은 술이 센 게 아니라 음주 후에도 자세가 단지 흐트러지지 않을 뿐 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술을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해방둥이로 태어난 박 전 감독의 독특한 이름은 대한민국의 ‘한(韓)’자를 붙여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농구 하나로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는 ‘영원한 농구인’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농구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60년을 넘는다.
 
서울 인창고에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당시 키가 186cm에 달해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농구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중학교 때 아이스하키를 한 덕분에 운동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고, 부모님의 반대도 없었다. 시작이 늦은 만큼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었다.
 
당시 2부에 속해 있던 인창고는 ‘거물 센터’의 활약을 앞세워 1년 만에 1부로 올라왔고, 박 전 감독은 1965년 고려대에 입학한 뒤 농구 실력이 만개할 수 있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선망의 대상인 태극 마크를 처음 달았다. 농구공을 만진 지 불과 3년 만이었다. 대표팀에서도 그의 포지션은 거친 골밑 싸움을 전담하는 센터였다. 키는 192cm까지 자랐다. 당시에는 거인에 해당하는 신장이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밤이면 모교인 인창고를 찾아 후배들과 땀을 쏟으며 농구 실력을 갈고 닦았다. 전력 사정이 워낙 나빴던 시절이라 전등불 하나 겨우 켜고 공을 던졌다.
 
1970년대 아시아 최강 견인한 주역
 
그는 1973년까지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센터 박한이 골밑을 든든히 지킨 한국은 1969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농구선수권(ABC) 정상에 오른 뒤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했다. 두 번 모두 한국 농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인건 전 태릉선수촌장, 신동파 전 농구협회 부회장 등이 주축을 이룬 한국 남자 농구의 전성기였다. 당시 대표팀은 김영기 한국농구연맹(KBL) 전 총재가 사령탑이었다.
 
박 전 감독은 실업팀 산업은행에서 6년간 선수로 활약한 뒤 은퇴했다. 당시에는 운동선수들이 3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게 대세였다. 안정된 직장인 산업은행에서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농구로 승부를 보기 위해 험난한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지도자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을 거다. ‘그래도 한 가지는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외길을 달려온 그가 자랑스럽다.
 
고려대 한곳에서만 22년간 지휘봉
 
선수로서 12년간 코트를 누빈 박 부회장은 1975년 11월 고려대 감독에 부임해 1997년까지 22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다. 박 부회장이 감독을 맡는 동안 1977년 가을부터 2년간 무려 49연승이라는 무적의 신화를 달성했고, 통산 500승 넘게 기록했다. 운동 환경이 열악한 대학팀이 모기업의 재정지원도 좋고 호화 멤버를 갖춘 실업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뒀기에 그 의미는 각별하다. 당시 고려대에는 걸출한 슈터인 황유하, 이충희 전 프로농구 원주동부 감독, 센터 임정명 전 고려대 감독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박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물도 못 먹게 하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그러기에 어려운 시절 함께 고생을 많이 했기에 지금도 만나면 정이 각별하다. 무뚝뚝해 보이는 그는 선수 시절 무릎이 좋지 않았던 제자가 몇해 전 무릎 수술을 받자 병문안을 다니는 등 자상함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인간 관계와 의리를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팬들과 미디어에 주목받는 공인인 만큼 예의로 코트에 설 때 늘 정장 차림을 한 그는 학생다운 패기와 강한 체력을 앞세운 농구를 중시했다. 한 팀에서 20년 넘게 지휘봉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 측의 믿음과 배려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학생 시절 열 살 위로 학생 때 지도교수로 인연을 맺은 고 김상겸 체육위원장이 늘 버팀목이 되곤했다.
 
원칙과 의리를 중시해 잡음 없어
 
1980년대 초반 슈터 이충희가 고려대를 졸업하고 실업팀 현대에 입단할 때의 일이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특명 속에 이충희 영입에 성공한 현대는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서울의 고급 아파트 한 채를 주려고 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돈 문제에는 철저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는 고려대 감독 재임 시절에도 거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실업팀 감독 제의를 수도 없이 받았지만 모두 사양했다. 원칙과 의리를 지켰던 그는 감독 시절 이렇다 할 잡음이 없었다. 그가 한 팀에서 20년 넘게 롱런한 이유다. 원로가 된 요즘에는 후배들을 존중해주되 잔소리를 하지 않고 지갑을 여는 ‘폐구개갑’한다고 했다.
 
2013년 98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엄청난 효자로 알려진 박 전 감독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는 가정사에 대해선 입을 열지는 않는다.
 
평생 농구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는 출범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프로 농구판에는 단 한 번도 기웃거리지 않았고, 발도 아예 들여놓지도 않았다. 많은 프로팀에서 제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팬들에게 너무 강하게 각인된 고려대의 ‘호랑이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퇴색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로서 그의 커리어와 능력으로 봐서는 프로감독에 오르고도 남았다.
 
농구 행정가로서도 20년 세월
 
고려대 농구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에는 농구 행정가로 변신했다. 농구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오랜 실전 경험을 갖춘 그는 2001년부터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무려 20년의 세월이다. 대학농구연맹회장도 3년간 맡았다.
 
한국 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그가 선뜻 농구 코트를 선뜻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노병’ 박 전 감독의 유일한 꿈은 대한민국 농구가 올림픽이나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것 뿐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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