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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가처분신청과 분서갱유

‘제2의 진시황’을 노리나

기사입력 2022-01-23 22:52:40

▲ 오주한 정치사회부 팀장
고래(古來)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술수는 지속되어 왔다. 이들은 누구도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강변하면서 분서(焚書)를 행했다. 또 필요할 경우 관련자들을 죽여 영구히 입을 틀어막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단연 기원전 213~212년 진나라 시기에 벌어진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수많은 제자백가의 책이 불살라지고 수많은 유생들이 산 채로 땅 속에 파묻힌 이 끔찍한 사건의 발단은 213년 수도 함양에서 열린 한 연회였다. 전국의 부로(父老) 수십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린 잔치에서 주청신이라는 인물은 진시황 영정의 공덕을 칭송하면서 특히 군현제(郡縣制)를 극찬했다.
 
천하통일 이전의 행정구역 제도는 제후에게 각지 땅을 분봉한 뒤 국방‧외교 등을 제외한 자치와 작위 세습을 허용하는 봉건제가 주류였다. 반면 진나라 때부터 본격 시행된 군현제는 천하를 군‧현 단위로 나누고 태수‧현령 등 천자가 임명한 관리들을 파견해 다스리게 함으로써 전국을 황제 직할령으로 만드는 개념이었다.
 
봉건제는 각 가문이 각 지역을 사실상 영원히 다스리게 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가 벌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군현제는 적어도 이러한 리스크는 없었지만 단 한 사람의 결정이 만백성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문제점을 품고 있었다.
 
백성 입장에서 봉건제는 한 지역의 폭군을 피해 다른 지역의 성군을 찾아갈 수 있다는 최소한의 선택지를 준다. 그러나 군현제는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천자가 폭군일 경우 오로지 ‘죽음’만을 택할 수 있다. 실제로 영정은 장성‧황릉‧아방궁 축조 등 대규모 토목공사 등으로 인해 많은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원성을 사고 있었다. 후일 2세 황제에 즉위하는 호해는 각지 관리를 통해 무자비한 수탈을 일으켜 멸망을 자초하기도 한다.
 
더구나 많은 백성은 군현제라는 급진적인 제도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오면서 충성을 다한 왕실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리고 타지인을 ‘정복자의 대리인’으로 보내 다스리게 한다는 점에 크나큰 반감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훗날 진나라를 멸한 항우는 봉건제 부활을 공약해 민심을 도모했으며,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은 군현제와 봉건제를 합친 군국제(郡國制)를 시행하는 과도기를 두게 된다.
 
이렇듯 엄연한 ‘팩트’ 앞에 신하들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순우월은 주청신의 아첨에 흥겨워하는 영정 앞에 나서서 “옛 것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큰소리로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반대했다. 자연히 술자리 분위기는 싸늘해졌으며 승상 이사가 “옛 사상과 제도에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고 면박을 주는 등 격한 논쟁이 오갔다.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마땅히 각 정파 의견을 조율한 뒤 비판도 받아들이고 이성적으로 설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영정은 모조리 없애서 입을 막는다는 분서갱유를 일으켜 만백성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논리적 근거가 제자백가에 담겨있다고 판단하고 의약‧점술‧농업 등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사르도록 했다. 또 후생‧노생 등 신하들이 불로초(不老草) 탐색 등 괴력난신을 탐하는 자신을 꾸짖자 전국 유생 수백명을 생매장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파묻혀버린 듯한 진실 앞에 영정은 미소 지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진실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을지언정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남아 있었다. 생존한 유생들은 훈고학(訓詁學)을 통해 저마다의 지식을 짜깁기하고 백방으로 검증해 제자백가의 책을 복구하는 한편 분서갱유의 역사를 사서에 기록해 후세에 남겼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진실을 향한 갈증을 막지는 못했던 것이다.
 
대선주자 A씨의 행적을 담았다는 한 책에 전 국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쌍욕’과 ‘토건비리’ 등을 다룬 이 책은 A씨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가늠할 잣대로 일각에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 A씨 소속 정당은 ‘A씨 친형은 정신질환자였다’거나 ‘대선 전 책 출판은 당선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목적이기에 공직선거법 위반이다’고 주장하며 판매‧배포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공직자 도덕성 등은 항상 국민 비판대상이 돼야 한다”고 A씨 측 주장을 한마디로 일축하며 가처분신청을 단칼에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 등에 비춰볼 때 이 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거나 후보자에 대한 악의적 공격이라는 점은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감시와 비판 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상당성을 현저히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처분신청에 더해 A씨 논란을 둘러싼 인물들의 잇따른 의문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A씨 측이 ‘현대판 분서갱유’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약 2000년 전 무소불위 권력의 시대에서조차 실패했던 분서갱유가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성공하리라 만약 생각했다면 이는 큰 오판이다.
 

 [오주한 기자 / jhoh@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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