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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한국의 자유주의와 시장논리의 관계

좌파 포퓰리즘은 시장을 더 ‘착취’하는 결과 만들어

이기적 욕망은 ‘시장’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

국민이 비로소 정치의 주인이 된 배경엔 시장 논리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1 09:53:46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지난 칼럼에서 내가 시장의 독점 자본 (그것도 친좌파 기업들은 빼고) 거대 기업들을 제한함으로써 사람들은 사회정의가 실현되리라 생각하지만 그 결과는 정확히 정반대가 된다고 주장하고 글을 마쳤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이번 칼럼에서 모두 설명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많은 자칭 자유주의자, 특히 좌파적 사고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논리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의 현실은 받아들이겠지만 독점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의 논리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인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언제나 다수를 차지하는 경제적 중하층에 대한 포퓰리즘적 접근을 하게 되는 좌파 정책들은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더욱 시장을 ‘착취’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에 전혜 관심 없는 내가 ‘시장 자유주의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도 사지 않고 텔레비전도 없고 주식도 하지 않으며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멤버쉽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싫어하는 내가 시장주의자로 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시장의 본질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논리를 언제나 대체하려고 벼르는 또 하나의 인간 세계의 논리가 있다. 바로 힘의 논리다. 정치권력의 논리인 것이다. 언제나 이는 다수의 의사를 본질로 하는 집단주의적 성격을 띤다. 정치는 인간 사회의 어느 곳에나, 미시적으로든 거시적으로든 존재한다. 
 
시장의 논리가 약한 공간, 약한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이 힘의 논리, 권력의 작동 방식이 그 주도권을 대신한다. 예외가 없다. 원래 원시 시절부터 인간은 (다른 영장류들과 마찬 가지로) 이 힘의 논리가 시장의 논리보다 몇백만년 동안 우위에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쉽다. 이것이 2차 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의 경험 때문에 민족주의적,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신생국들이 거의 모두 시장의 성숙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그래서 개인주의가 아직 발달하지 못하고 자유주의가 성립하지 못한 사회로 남겨지게 된 이유다.
 
인간은 모두 알다시피 탐욕스러운 동물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앞에서는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은 명함을 내밀 수도 없다. 왜 그런지에 대해 나는 나름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 
 
그래서 2013년에 출간했던 나의 책 ‘우리 안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서 이를 ‘종이 쪽지 위에 적힌 숫자’의 논리로 설명한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러한 인간의 욕망 중에서 소유욕은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소유욕 중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잔인한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 지배, 통제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비하면 자동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 집을 사고 싶은 욕망은 정말 도덕적으로 순수한 욕망에 가깝다. 이 경우 자신이 투자하는 비용보다 더 가치가 높은 결과를 얻으려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욕망(흔히 도둑놈 심보라고 부르는)은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시장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된다. 
 
가령 ‘계곡 살인’ 이은해의 이기적 욕망이 (시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보험회사의 사적 이익 추구 노력과 충돌을 하게 된 것이 모든 그녀의 범죄 행각이 밝혀지게 된 발단이었다.
 
시장의 논리에 의해 실현되거나 제어 당하는 욕망이 가령 더 멋진 자동차를 갖고 싶고 더 예쁜 옷을 사고 싶고 더 쾌적한 집을 사고 싶은 욕망들이라면, 시장의 논리를 대체하려고 노심초사 대기하고 있는 힘의 논리를 지배하는 욕망은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려는, ‘통제’하려는 욕망이다. 
 
한마디로 지배욕이다. 니체가 말한 인간의 가장 근원에 있는, 권력의 의지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 끝에는 늘 처단·숙청·학살 등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를 볼 것도 없이 조선 시대 정치사와 사회사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 사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위계서열에 의해 움직여 왔다. 긍정적으로 보면 질서를 잡아 주는 기능을 했던 것이 바로 위계 서열이다. 개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지정하고 이러한 사회적 서열을 신분으로 혹은 혼인 등의 사회적 장치들로 촘촘하게 유지해 나갔던 것이 동서를 막론하고 전통 사회의 본질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 시대 이후 시작된 상업혁명은 유럽에서 인류가 이전에 경험한 적 없었던 거대한 규모의 자본을 출현시켰고, 이러한 거대한 자본을 축적하는 새로운 개인들이 출현하게 만들었다. 
 
이 개인들은 더 이상 집단주의 공동체 사회의 (힘의 논리가 움직여온) 전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결과 18세기부터 ‘왕이 태양’이라는 절대왕정 사상에 맞서 사회는 개인들 간의 계약으로 성립된다는 계몽주의 정치사상을 받아들여 결국 절대 왕정을 타도하거나 영국처럼 허수아비 왕실로 만들어 버리는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 자본의 힘으로 이룩한 결과였다.
 
영국사를 기준으로 그러한 절대왕정 체제가 입헌주의 체제로 대치되는 18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사회적 특징이 바로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각종 신문과 언론 매체,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와 정치 집단이 개혁을 내세우며 사회를 가득 채운다. 
 
시장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예가 바로 영국의 의회, 특히 하원이었다. 정치 투쟁은 이제 정치 시장의 논리에 따라 보다 많은 의석 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 경쟁이 되었다. 보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정당들은 경쟁해야 했다.
 
경쟁은 고달프다. 하지만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힘의 논리가 아닌, 시장의 논리로 경쟁을 함으로써 국민은 이제 비로소 정치의 주인이 되었다. 시장이 사라지면, 아니 시장의 논리가 사라지면, 혹은 시장의 논리가 약해지면, 더 나은 유토피아가 도래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은 반대다. 당신도, 나도, 인간은 자체로 결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좌파들이 생각하듯) 천사같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계속 누리게 하면서도 우리 자신 안의 악마를 가둬 주는 가장 평화로운 수단이 바로 시장인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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