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제게 ‘행복’이자 삶의 원동력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순간 만큼은 어떤 다른 생각도 들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하며 행복을 느껴요.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받았던 행복한 기운들을 제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림이 좋아 화가의 길을 걷고 싶었던 어린 시절
사라(SARA) 이혜령(53) 화가는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자 프랑스 화가 쥘레 게시의 전용 ‘아트디렉터’다. 아트디렉터란 화가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작품의 전시와 판매를 담당하고 전시장 및 홍보·마케팅 등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직업이다.
“저는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지만 어머니는 교사가 되길 원하셨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권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문학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어머니의 조언대로 교사의 길을 선택한 그는 15년 정도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문학인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문학을 하며 가끔 시집을 내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 삭혀지지 않는 갈증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답답한 마음에 그림을 보러 다니고 취미로 조그만 그림을 샀어요. 그림을 가까이하다 보니 정서가 안정되는 느낌이 들어 적극적으로 미술관에 다니고 더 많은 그림을 보기 위해 외국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게 됐죠.”
“시간이 지나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그림의 매력에 빠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됐어요.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화가들을 알게 되고 화가들과 잦은 만남을 통해 조금씩 손발을 맞추게 되면서 저도 화가라는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 화가들과 친분이 쌓이다 보니 아트디렉터라는 업무를 맡게 됐어요. 그림이 좋아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이 좋았고 어느 순간 ‘쥘레 게시’라는 프랑스 화가를 알게 됐어요. SNS를 통해 그와 연락을 하며 운명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그분 밑에서 그림을 배우며 아트디렉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프랑스 화가 쥘레 게시를 통해 만난 화가의 인생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온 쥘레 게시라는 화가는 그림과 함께하는 미래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줬다. 그림을 통해 영감을 얻고 국내 화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화풍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던 그는 쥘레 게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는 슬픔을 느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화가의 길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분을 처음 본 순간 감전이 된 것처럼 온몸이 찌릿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분과 함께라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아트디렉터로서 그분을 대신해서 사무적인 일 등을 담당하는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분과 평생 계약을 맺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얻었고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화풍 등은 제 개인적인 발전에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분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느낌이었어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될 시기에 돌아가셔서 장례식에도 갈 수 없어서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안 좋은 일이 겹쳐서 심리적으로 회복이 좀 어려운 순간이 있었어요.”
“한동안 방황하던 저는 다시 그림 앞에 앉았고 붓을 잡는 순간 불안정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느꼈고 진심을 다해서 그린 그림이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던 것 같아요.”
그림 속 해바라기는 곧 ‘희망’
이혜령 화가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해바라기와 보석이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 커다란 해바라기가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노란색부터 빨간색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항상 해바라기의 중앙과 화면의 여백을 빛나는 보석으로 장식하는 이 화가만의 화풍이 인상 깊다.
“해바라기가 제 그림에서 의미하는 것은 희망이에요.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고 자라는데 저는 제가 바라보고 동경하던 태양이 진 순간 세상을 잃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해가 지더라도 다음 날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꿋꿋하게 자라는 해바라기를 통해 스스로가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것 같아요. 해바라기 그림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신 분 중 병원이 유독 많았는데 제 그림을 통해 환자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림 속의 보석은 전부 제가 직접 구매한 것들이에요. 원래 반짝이는 것을 좋아해서 취미로 모았는데 어느 순간 그런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석마다 제 추억과 의미가 깃들어 있는 만큼 사람들이 그런 보석을 사용한 그림을 보여 제 추억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보석을 사용하는 화가가 많이 없는데 제 화풍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시인 이혜령을 지나 화가 이혜령으로
이혜령 화가는 화가로 알려지기 전에 파격적인 누드시화집 ‘파란 나비의 꿈’을 통해 시인으로 세상에 먼저 알려졌다. 부모님의 권유로 교직 활동을 시작하며 전공했던 문학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됐다고 말한다.
“다양한 종류의 시를 쓰면서 보람도 느끼고 안정적인 삶이라 느꼈어요. 다양한 시 낭송 무대에서 시를 낭송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시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갔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표출하고 싶은 생각에 사람들 앞에 섰던 것 같아요. 시 낭송 대회 등에서 만났던 화가들 덕분에 그림을 다시 시작할 기회도 잡았어요.”
이혜령 화가는 시인으로서 활동할 때보다 화가로서 활동하며 만족도가 상승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화가 활동에 도움이 됐으며 시인으로서 본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화가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분위기로 시를 통해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느껴졌어요. 그런 부분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그림에서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 그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더군다나 화가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슬픈 일들이 있었기에 극복한 지금이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행복을 전하는 화가로서 기억됐으면
“제가 현재까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 60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1000점까지 완성하는 것이 제 첫 번째 목표예요.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하고 제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하려면 그림을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혜령 화가는 앞으로 전시회도 계획 중이라고 귀띔했다. 본인의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다양한 작품의 전시를 통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화가로서 현재 준비 중인 계획이라며 전시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작품이 최소 50~60개는 필요한데 지금 보유 중인 작품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요. 많은 분에게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과거의 시인 이혜령이 아닌 해바라기를 통해 행복을 전하는 화가 사라(SARA) 이혜령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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