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하지 않자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내 집에 와서 저녁 같이 먹을래? 이야기 좀 해.”
“옷 가지러 갔던 날 아닌가? 겨울 코트랑 패딩 점퍼 세탁물 왔다고 가져가랬잖아.”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날은 그날이 아니었다.
“연어스테이크 어때? 레몬 소스 곁들여서.”
여경도 그날이 그날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가지 않겠다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무마는 해야 할 상황이었다.
스포츠카 블랙박스에 찍혔다던 그날은 진욱이 여경의 집에 칫솔이랑 소지품을 가지러 갔던 날이었다.
파우더룸을 들어갔던 건 혼자였지만 조 비서도 동행했던 날이었다. 스포츠카는 명분일 뿐 조 비서를 통해 그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마무리는 해야 할 일이었다.
“어서 와. 와인도 당신이 좋아하는 블랙라벨만 매장에서 몇 병 가져왔어.”
여느 때와는 달리 아주 다정하게 진욱을 맞아 주었다. 호불호가 강한 여경은 자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여경이는 자기가 하려는 건 다 성취해 내는 강인함을 가졌지. 그런데 그것을 해 내는 방법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이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특별한 유여함이 백화점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의 장점이라고 우룡이 말했었다.
여경은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하면서도 다부진 남성스러운 멋스러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룡의 말대로 여경은 상대와의 대화에서 어떤 경우도 급하게 몰아세우거나 따지는 적은 없었다.
처음 우룡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경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는 여경에게 진욱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녀를 위해 프러포즈 반지를 준비해 놓았다고 했었다. 그런 진욱을 상대해 스스로 반지통을 열어 보이게 한 게 여경이었다.
여경은 상대 입장을 잘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런 여경이 멋있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잘 운영하는 사람 같았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다시 합치는 거 어때?”
술기운이 무르익을 때쯤 잔을 부딪치며 여경이 말했다.
“우리가 그러기엔 이미 늦었지.”
“바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야. 알잖아.”
여경이 일어나 진욱의 옆 자리로 와 앉았다.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게 아니라…. 너무 멀리 왔지.”
진욱의 어깨로 올라오던 여경의 손이 멈추었다.
“그럼 우린 이제 부부가 아닌 건가?”
“남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 알잖아. 그게 아니라는 거.”
그래? 그렇다고? 쓴웃음을 웃으며 여경이 진욱의 잔에 와인을 채웠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웃음이 지워진 여경의 얼굴이 진욱을 향해 다가왔다.
“그날 내 칫솔이랑 수건·빗… 왜 가져갔는지 어디에 썼는지 알고 싶어. 우리는 부부 사이가 아니니까.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어? 당신 법률가잖아.”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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