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가 내게 있어요. 봉투 소인을 보면 어느 우체국에서 보냈는지 지역과 날짜를 알 수 있어요. 물론 집 근처 우체국일 수도 있겠지만.”
정숙의 집에서 한 아름 근심거리를 짊어지고 나온 듯 어깨가 처져 있던 선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세한 사고 내역은 내가 좀 더 알아볼 게. 혹시 주변에 그날 상황이나 그즈음 어머니와 아버지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분 없을까?”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미경이었다. 진욱 역시 미경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선우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선우는 이제까지 한 번도 미경과 둘이서 소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진욱은 답 없는 선우 손을 잡았다. 과외 공부를 가르치며 선우 집을 드나들면서 자주 미경을 만났었다. 미경은 더없이 따뜻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진욱을 대해 줬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선우의 눈빛에 늘 공허함이 묻어 있었다.
선우 눈빛을 보고 짐작했었다. 그가 선우의 친엄마가 아닐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 적군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어.”
하지만 미경이 적은 아니었다. 그건 선우도 진욱도 아는 사실이었다.

선우는 미술관 개관 후 미경을 만나지 못했다. 개관식에서 수빈 추락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경이 노심초사 선우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따로 만날 여유가 없었다.
“분명히 아군인데 적일 수밖에 없는 내 절친이 있어. 한동원이라고. 다음에 같이 만나게 될 거야. 우리가 같이 풀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진욱은 미술관에 선우를 내려주었다. 휴일이었지만 미숙이 사무실에 있었다.
“대표님 차가 주차장에 있어서 뭘 가지러 왔다가 뵙고 가려고 있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미숙이 대표실로 커피를 가져와 앉으며 봉투 하나를 꺼내 놓았다.
“달라스호텔 피트니스 클럽?”
봉투에는 선우도 회원으로 있는 호텔 피트니스 회원카드가 들어 있었다. 병원재단과 상호 협력관계에 있는 호텔이라 명환이 살아 있을 때부터 그곳 회원으로 가끔 이용했지만 최근 들어 자주 이용하지는 못했다.
“돌려드려야 하는데 한참 뵙지를 못해서…. 또 개인적으로 연락 드릴 수도 없고 해서요.”
누가요? 물을 필요가 없었다. 미숙이 말하는 사람은 바로 상훈이었다.
“선물로 드린 것 같은데 이용하시죠, 실장님.”
상훈이 준 선물을 선우가 돌려받는다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직접 주셨으면 바로 사양했을 텐데 제 서랍에 두고 가셔서….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미숙은 민망한 상황을 피하겠다는 듯 바로 자리를 떴다. 봉투 안에는 작은 쪽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이모님. 은선우 대표 잘 부탁드립니다. 이모님만 믿겠습니다. 그리고 인경이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경이라면 큐레이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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