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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사장 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KBS의 민낯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17 06:31:2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해임된 김의철 사장 후임으로 박민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됐다. 그동안 후보들 간 경쟁으로 선출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국민의 눈에는 이전에 반복되어 왔던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정치적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이 정치적 후견 체제로 견고하게 묶여 있는 구조에서 그런 시선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KBS 사장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은 이전 경우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유착되어 형성된 KBS의 폐쇄적 조직 이기주의와 이를 타파하려는 정치권력 간의 힘겨루기이기 때문이다. KBS의 일부 구성원이 공영방송 독립을 표방하며 낙하산 사장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고질병이 되어 버린 내부 계파 혹은 특정 인맥 카르텔의 기득권 유지의 성격이 더 강하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그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내부 인사가 조직의 수장에 오르는 것은 그런 자부심의 상징일 수도 있다. KBS 구성원들이 내부 출신 사장을 원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인지상정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지난 15년간 자사 출신 사장이 이어져 온 것이 공영방송 KBS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온 부분도 있다.
 
실제로 2009년 이후 재직했던 여섯 명의 사장이 모두 KBS 출신이었다. 그렇지만 이들 내부 출신 사장들이 재임했던 기간에 KBS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제고, 아니 그나마 유지되었는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 같은 정치적 지형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몇몇 사장이 ‘정치적 독립성’이나 ‘불공정 보도’ 같은 이유로 임기 중에 해임된 것이 그 방증이다. 임기를 다 채운 사장들 또한 재임 기간 내내 같은 비판에 시달렸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그 기간 동안 KBS의 정치권력 감시 기능은 도리어 크게 훼손되었고, 독립은 고사하고 정권에 자발적으로 종속되었다는 평가가 훨씬 많다. 그러면서 방만한 경영 같은 조직 이기주의가 더 악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섯 차례나 있었던 감사원 감사 결과는 KBS의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여전히 그대로 방치되고 있거나 이런저런 편법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 정권은 KBS 스스로 정치적 독립성을 회복하거나 경영합리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이어 허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2TV에 대해 개편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KBS 구성원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기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외부인사가 KBS 사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보인다.
 
언론과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한다. 두 권력 기구가 지나치게 밀접히 결탁하면 권력 독점이 우려되고, 너무 멀게 되면 갈등 때문에 두 영역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방송을 포함한 언론 영역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자율성이 존중되지만 자율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외부 통제가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자율성이나 자정 능력이 크게 붕괴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특히 독립성을 명분으로 유지되어 왔던 내부 출신 사장 체제가 나름 긍정적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 결과가 훨씬 많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내부 인사들이 연이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른바 ‘특정 인맥에 의한 카르텔’이 형성된 것은 가장 큰 폐해라 할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그 내부에 인적 네트워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와 자정 능력을 위협하게 되면 곤란하다. 이번 사장 선출을 ‘내부 출신 대 외부 인사’라는 선악 프레임으로 규정한 이분법적 사고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 주장의 기저에 KBS 안에 형성된 계파적 인적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사장의 전문성이나 경영 능력이 중요한 요건인 것은 맞다. 그런 면에서 외부 출신 KBS 사장의 핸디캡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KBS 내의 고질적 조직 이기주의와 계파주의를 타파하고 신뢰받는 공영방송으로서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그런 핸디캡은 역설적으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우려와 그보다 더 큰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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