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6시를 조금 넘은 시간,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은 모 대기업 홍보실의 A 부장이었다. 이 이른 아침에 걸려 온 전화는 결코 좋은 징조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국장님, 아침 일찍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 써주신 기사는 우리 회사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하고 긍정적인 내용입니다만, 중간에 들어간 관계자 멘트 중 일부 구절을 제발 좀 빼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부탁이다.
기사를 작성할 당시,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나눈 대화 일부가 행간을 설명하기 위해 기사에 녹아들어간 게 문제였다. 회사의 공식입장이 아닌 내용이 포함됐으니 경영진이 기사를 보기 전 수정해달라는 요청이다.
긍정적인 기사에도 맘을 졸여야 하는 게 홍보실의 입장이다.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해당 부분을 삭제한 뒤 기사를 재발행했다. 수정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즉각 감사의 답장이 왔다.
언론인과 홍보인들이 매일 아침 맞이하는 소리 없는 전장의 첫 장막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준비하는 평범한 새벽이지만, 기업의 평판을 최전선에서 방어하는 이들에게는 단 한 줄의 문장, 단 한 글자의 토씨 때문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피가 마르는 칼날 위의 시간이다.
#2. ‘연락되지 않을 권리’는 사치… 24시간 대기조의 영혼들
최근 호주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과 글로벌 노동계에서는 퇴근 후 업무적인 연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이른바 ‘연락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제도화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네트워크가 인간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과 휴식 시간까지 침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취지다. 국내에서도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올해 3월 발의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은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심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지난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여러차례 발의됐으나 입법화되지는 못했다. 현재는 부산 동래구와 경기도 용인시 등이 조례를 제정한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홍보인들에게 이 ‘연락되지 않을 권리’는 그저 먼 나라의 사치스럽고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세상을 잇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시한폭탄처럼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새벽 6시, 세상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홍보인의 손가락은 이미 포털 뉴스를 바쁘게 뒤적이고 있다.
전날 밤이나 새벽 사이에 회사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기사 본문이나 제목에 오류가 없는지 다른 수치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지 매서운 눈으로 살피고, 수정 요청할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매일 새벽 검색하면서 하는 걱정은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터진 부정적인 이슈가 올라온 것은 없을까’하는 우려다. 마우스를 스크롤하는 손길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누렸던 간밤의 짧은 평화는 단 한 줄의 폭로나 단 하나의 악의적인 기사로도 언제든 신기루처럼 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옷을 입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전장으로 이미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셈이다.
#3. 칭찬은 남의 공, 실수는 홍보실의 무능이 되는 잔인한 굴레.
홍보인들의 삶을 가장 깊게 짓누르는 고충은, 조직 내에서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성격이 철저하게 ‘그림자’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에 대한 좋은 소식과 미담이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지는 것은 조직 내에서 당연한 본분이자 현업 부서의 공으로 여겨진다.
반면, 예상치 못한 대외적 리스크나 악재, 부정적인 보도가 터지는 순간 그 화살은 오롯이 홍보실의 무능과 대처 미흡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수많은 날을 밤새우며 공들여 작성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은 보도자료는 기사 가치가 없다는 언론사의 냉담한 외면 속에 단 한 줄도 쓰이지 못한 채 휴지통으로 직행하기 일쑤다.
반면, 홍보실이 인지하기도 전에 발생한 돌발 악재나 단 한 줄의 추측성 오보는 온 임원진의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홍보인의 가슴에 사정없이 박힌다. "기자님, 그 기사 제목 표현이 우리 기업에 너무 가혹합니다. 조금만 수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자의 차가운 목소리와 거절 앞에서도 홍보인의 목소리는 언제나 '솔톤'을 유지해야 하며, 입가에는 비즈니스 미소를 기본으로 장착해야 한다.
자존심은 이미 회사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둔 지 오래다. 기사 한 줄에 온 세상이 밝아 보이다가도, 단 한 글자의 단어 때문에 피가 마르고 수명이 단축되는 삶, 그것이 홍보인의 숙명이다. 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면 이들은 기업의 최전방에서 완벽한 그림자가 된다.
최고경영자(CEO)의 뒤편에서, 혹은 브랜드라는 거대한 성벽의 소리 없는 방패가 되어 대중과 미디어가 던지는 격렬한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하지만 위기가 무사히 수습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들은 결코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공을 생색내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행사장 뒷정리를 하거나 차가운 도시락을 먹으며 다음 위기를 대비할 뿐이다.
#4. 퇴근 없는 영혼, 그럼에도 수화기를 드는 이유
이러한 긴장의 연속은 일상마저 마비시킨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주머니 속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공포를 경험한다.
주말의 달콤한 단잠 속에서도 익숙한 벨소리가 울리면 온 가족보다 먼저 눈이 번쩍 떠지는 지독한 직업병을 평생의 훈장처럼 앓고 산다. 외부의 누군가는 이들을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소통의 전문가, 혹은 기업의 입을 대변하는 화려한 스포크스맨이라 부르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직업의 본질을 아는 이들은 안다. 이들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불을 밝히고, 가장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닻을 내리는 외로운 조율사이자 소리 없는 방패라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홍보인들은 늘어나는 흰머리와 타들어 가는 속을 미지근해진 커피 한 잔으로 달래며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다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기를 들고, 언제 울었냐는 듯 가장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한 목소리로 외친다. "네, 홍보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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