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그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은 짧았다.
“이미 인쇄 넘어갔습니다.”
기사는 다음 날 지면에 실릴 예정이었다. 기사에서 문제 삼은 대목은 기부금 집행과 세금 납부 내역이었다. 숫자는 일부만 떼어놓으면 충분히 의심스러워 보였고, 언론사는 회사의 해명을 전형적인 반박 논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장님은 임원과 홍보실을 대동하고 언론사까지 찾아가 기사를 당장 엎으라며 데스크에게 소리치고, 언론사는 기업의 해명을 그저 '전형적인 변명'으로 치부해 버리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러나 홍보인은 알고 있었다. 마감이 끝난 기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상황을 바꾸기보다 관계를 더 닫히게 만들 수 있었다. 그에게 남은 길은 하나였다. 주장 대신 자료를 내놓는 일이었다.
“초판을 되돌릴 수 없다면, 온라인판과 후속 보도에서라도 전체 맥락을 봐주십시오. 원자료와 산식을 모두 공개하겠습니다.”
그 말은 항의가 아니었다. 판단을 다시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와 내부 자료를 다시 열었다. 기부금 집행 내역, 세금 납부 자료, 회계 기준, 비교 기간, 집계 방식이 화면 위에 차례로 펼쳐졌다. 기사 초안의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떤 기준이 빠졌는지, 어느 항목이 같은 성격의 비용으로 묶이면 안 되는지를 하나씩 대조했다.
단순 합계로 보였던 숫자 뒤에는 기간 차이가 있었고, 누락된 항목이 있었으며, 비교 대상이 달라진 지점도 있었다. 그는 표를 다시 만들고, 산식을 붙이고, 원자료와 요약표를 나란히 정리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근거들이 쌓이며 “문제없다”는 주장보다 “전체 집행 내역을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자료가 정리된 것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그는 기자와 데스크에게 파일을 보냈다. 원자료, 요약표, 산식, 항목별 설명을 함께 붙였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사를 막아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 숫자는 전체 맥락 없이 보면 다른 의미가 됩니다. 자료를 보고 판단해 주십시오.”
초판 지면은 이미 인쇄를 마쳤지만 언론사는 전달받은 자료를 검토했고, 온라인 기사와 후속 보도에서 회사 측 설명을 반영했다. 일부 표현은 조정됐고, 핵심 숫자의 해석도 보완됐다.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된 전제가 그대로 확산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는 어지럽게 놓인 모니터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동료가 다가와 한마디 건네며 지나친다. “덕분에 더 커지는 건 막았습니다.”
홍보의 현장은 때로 감정의 싸움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자료의 정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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