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사무실에는 모니터 불빛만 남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쌓여 있었고,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와 식어버린 커피가 그의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눈을 감아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는 커피 한 잔으로 밀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늘 그런 밤을 지나왔다. 남들이 퇴근한 뒤에도 누군가의 사고를 확인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문장으로 정리하고, 누군가의 위기를 회사의 언어로 바꾸는 일을 해왔다. 그 사이 자신의 시간과 가족의 시간은 자주 뒤로 밀렸다.
이 이야기는 한 건설사 홍보인이 털어놓은 경험이다.
병실은 조용했다. 규칙적인 기계음이 침묵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 곁에 앉아 아내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기력이 거의 남지 않은 아내는 그를 바라보다가 어렵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늘 회사를 살렸어요. 자랑스러웠어요.”
그 말은 위로였지만, 그에게는 쉽게 받을 수 없는 위로였다. 그는 수많은 현장에서 회사를 지키고, 사건의 불길을 낮추고, 사람들의 분노 앞에서 말을 골라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지막 시간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병실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복도로 나왔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이가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아빠, 오늘도 안 와? 생일 케이크 냉장고에 넣어 놨어. 초는 엄마랑 먼저 불었어.”
그 문장은 짧았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늦는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곧 가겠다는 말도 이미 너무 여러 번 반복한 뒤였다. 그는 답장을 쓰지 못한 채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연락이었다. 사고 경위 파악, 임원 보고, 유족 대응, 언론 문의가 뒤따를 상황이었다. 전화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잡고 있던 손의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네, 사망사고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노트북을 켰다. 현장 보고를 받았고, 사고 개요를 정리했다. 언론사 전화를 받으며 회사의 입장을 설명했다. 말은 흔들리지 않아야 했고, 문장은 과하지 않아야 했다. 슬픔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책임입니다.”
그날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동시에 회사의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홍보인이었다. 어느 역할도 내려놓을 수 없었지만, 어느 역할도 온전히 지킬 수 없었다.
홍보인은 흔히 기업의 입을 맡는 사람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들은 입보다 먼저 방패가 된다. 경영진 앞에서는 여론을 설명하고, 현장 앞에서는 사실을 확인하며, 언론 앞에서는 책임의 언어를 고른다.
이 고백이 남기는 것은 단순한 헌신의 미담이 아니다. 누군가의 위기를 대신 감당하는 일이 한 사람의 삶에서 무엇을 빼앗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는 회사의 사고를 막아왔고, 브랜드의 상처를 줄여왔고, 타인의 질문에 답해왔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은 사라졌다.
아내가 남긴 “자랑스러웠다”는 말은 마지막 위로였다. 동시에 그가 오래 품고 살아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홍보의 일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보도자료 한 줄, 사과문 한 문장, 기자에게 건네는 한 통의 설명 뒤에는 누군가의 밤과 삶이 놓여 있다.
그날 그는 자신의 슬픔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죽음 앞에서 회사의 이름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홍보인의 현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기업의 위기를 먼저 말하고, 타인의 불안을 먼저 받아내며, 정작 자신의 슬픔은 가장 늦게 처리해야 했던 사람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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