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손해보험사들이 적자 수렁에 빠졌다. 보험업계에서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2년 연속 이익을 내는 데 실패했다. 온라인이라는 한정된 판매 채널과 소액보험 등 저렴한 상품을 위주로 영업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모회사 자금에 의존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수익성을 높여 정착할 수 있도록 충당금 규제 완화 등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디지털 손보사 4곳(캐롯·카카오페이·하나·신한EZ) 모두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2006억 원으로 전년(-1685억 원)보다 크게 불어났다. 디지털 손보사란 보험상품을 직접 개발해 모바일 등에서 주로 판매하는 보험사를 뜻한다.
회사별로 캐롯손해보험은 지난해 –795억 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전년(-650억 원)보다 적자 규모가 22.4% 커졌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순이익이 –261억 원에서 —373억 원으로 42.8% 늘어났다. 하나손해보험은 –760억 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17.4% 증가했다. 신한EZ손해보험은 전년(-128억 원) 대비 순손실을 39.0% 감축했으나 규모는 –78억 원으로 여전히 상당하다.
이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보험업계와 대조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생명보험사 22개와 손보사 31개의 지난해 순이익은 총 13조3578억 원으로 전년(9조1795억 원) 대비 45.5% 증가했다. 손보사(8조2626억 원)만 떼어놓고 보면 증가율은 50.9%로 높은 수준이다.
디지털 손보사만 보험업계 실적 호황에 올라타지 못한 것은 보험 모집 시장에서 대면 채널 비중이 여전히 높은 영향으로 분석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GA·방카슈랑스 등 대면 방식으로 손해보험에 가입한 비중은 93.8%를 차지했다. 모바일·인터넷을 활용한 보험상품 가입 비중은 6.2%에 그쳤다. 은행업(74.7%)·금융투자업(83.6%)의 비대면 채널 비중이 높은 것과 상반된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손보사의 비대면 채널 비중은 높은 편이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과 캐롯손해보험의 사이버마케팅(CM) 판매 비중은 2022년 기준 90%가 넘는다. 하나손해보험도 텔레마케팅(TM) 57.1%, CM 16.2% 등 비대면 채널이 70%를 웃돈다.
상품의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점도 수익성에는 악재다. 하나손해보험은 스마트폰으로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가입하는 1일 단위의 자동차보험·레저보험과 실생활과 밀착된 간단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보험료는 자동차보험 9000원, 레저보험 880원, 귀가안심보험 700원 수준이다. 신한EZ손해보험도 아웃도어·자전거·골프 등으로 구성된 라이프케어 레저보험을 판매 중이다.
캐롯손해보험은 보험이 필요할 때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 ON 시리즈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 ‘스마트 ON 해외여행보험’은 월 5630원, ‘스마트 ON 레저상해보험’은 일 900원, ‘스마트 ON 펫산책보험’은 연 2000원+a 수준이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 보험료 일부분을 환급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이익을 내지 못하다 보니 모회사에 자금을 의존하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은 지난해 12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해 모회사 한화손해보험으로부터 1200억 원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작년 8월 모회사 카카오페이를 상대로 1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소규모이거나 위험 노출이 낮은 보험사가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나갈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럽 의회는 최근 우리나라 디지털 보험사와 비슷한 저위험 프로필 기업(low-risk profile undertakings)의 운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례성 원칙(Proportionality Principle)이 개선돼야 한다는 제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손보사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기존 손보사에서 제공하지 않은 소액·단기·간단 보험상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며 “대형 보험사와 같은 규제 하에서 사업하고 있는데 소규모이거나 위험 노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사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해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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