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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16> 독일에 포섭된 미인계 공작의 전설 ‘마타 하리’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3 06:31:3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2017년 10월13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세계 첩보사에서 미인계의 전설로 불리는 마타 하리(Mata Hari) 사망 100주기를 맞아 ‘100년 후에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마타 하리의 실화’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그녀를 둘러싼 각종 과장된 소문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녀를 비극으로 몰고간 스파이로서의 악명을 재조명하려는 시도였다.
 
마타 하리는 1876년 네덜란드에서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마르가레타 게르트루이다 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내고 이후 친적 집에서 살며 라이덴(Leiden)에 있는 교육대학에 다녔다. 19세 때 네덜란드 장교(대위)와 결혼하여 남편의 근무지인 자바섬으로 떠났다. 거기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의 잦은 폭력과 외도로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그러다 아들의 사망을 계기로 결혼생활은 7년 만에 파탄났다. 이혼 후 그녀는 네덜란드로 돌아왔다가 1904년 파리로 갔다.
 
여기서 생계를 위해 ‘물랑루즈’라는 클럽의 무용수로 취직한다. 이때 ‘마타 하리’(인도네시아어 ‘새벽의 눈’이란 의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자신을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소개하며 미모와 유창한 외국어를 앞세워 사교계를 장악해 나갔다. 이후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다니며 숱한 염문을 뿌렸다. 그녀의 일상과 사진은 유럽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악할 정도였다. 수많은 정·관계 고위층 인사 및 군 장교들이 그녀와 사귀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 마타 하리는 세계 첩보사에서 ‘스파이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미인계 공작의 전설로 남아 있다. 필자 제공
 
독일의 정보부는 마타 하리의 다채로운 일상에 주목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기 독일 베를린에 있던 그녀는 1916년 독일 정보기관에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프랑스로 건너가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러시아의 비행기 조종사인 20세 연하의 마슬로프를 비롯해 수많은 프랑스 및 연합군의 군장교를 비롯해 정치인 등 고위층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스파이 활동을 했다.  또한 마타 하리는 독일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정보당국의 스파이로도 활동하는 등 이중간첩 생활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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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하리의 대표적 미인계 공작으로 알려진 사례는 프랑스 최고사령관 모건 장군을 포섭한 건이다. 독일은 영국의 탱크 설계도가 프랑스군 사령부 모건 장군 자택의 비밀금고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타 하리에게 이 설계도를 입수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녀는 자기 집에서 댄스파티를 열고 모건 장군을 초대해 그에게 접근했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해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는 탱크 설계도가 들어 있는 비밀금고를 천신만고 끝에 열었고, 설계도를 독일에 넘기는 데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녀는 1916년 프랑스를 위해 스파이 임무를 수락했다. 그녀의 연인이기도 한 육군 대장 조르주 라두에게 고용되어 수집한 군사 정보를 프랑스 정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명백한 이중간첩 행위였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외교통신을 해독해 그녀가 독일 스파이임을 특정했다. 1917년 2월13일 마타 하리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엘리제 호텔 방에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독일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최소 5만 명의 군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협의로 비공개 재판을 받았다. 그녀가 독일에 프랑스군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결정적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또한 1917년에 독일군 정보를 빼내 프랑스에 제공한 사실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녀는 군사법정에서 검사의 심문에 대해 수많은 군장교들과의 잠자리는 인정했지만
“저는 절대 스파이는 아닙니다! 나는 항상 사랑과 즐거움을 위해 살았습니다”고 말했다. 1917년 7월25일 프랑스 군사법원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관은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채 “마타 하리가 빼낸 군사기밀은 연합군 병사 5만 명 목숨의 가치가 있다”고 판시하며 유죄 사유를 밝혔다.
 
당시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지속적 공세로 3년간의 전쟁에 지쳐 있었다. 사기가 저하되었고 희생양을 찾고 있던 참에 전쟁 중 군장교 등을 파렴치하게 유혹했던 부도덕한 외국인 즉 마타 하리가 그 대상이 된 것이었다. 일부 간첩행위로 몇 년간의 징역형은 몰라도 사형선고는 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1917년 10월15일 새벽 파리 외곽 뱅센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그녀의 나이 41세 때였다.
 
그녀가 죽은 뒤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 정부는 1930년에 공개적으로 그녀의 무죄를 선고했다. 1996년 네덜란드 정부는 마타 하리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그녀를 위한 기념관을 건립해 주었다. 1999년 비밀이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문서에는 마타 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결정적 증거가 수록돼 있지 않았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마타 하리 사망 100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관련 문서를 공개해 그녀의 결백함을 뒷받침해 주었다. 결국 상당수 유럽인들은 그녀가 전쟁 패배의 희생양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서구사회 일각에서는 마타 하리를 고급 창녀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그녀는 세계 첩보사에서 ‘스파이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미인계 공작의 전설로 남아 있다. 그녀를 소재로 한 소설·영화·음악 공연·음반 제작 등이 줄을 잇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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