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다? 신문을 읽다가 무릎을 탁 쳤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분의 사례는 치료(정책)와 부작용의 관계를 보여 준다.
어느 고혈압 환자는 칼슘채널차단제(CCB) 처방을 받았다. 약의 특성상 고혈압엔 차도가 있었으나 다리가 부었다. 환자는 다리가 퉁퉁 붓는다고 말했고 의사는 이뇨제 처방을 내렸다. 환자는 이뇨제를 복용한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비뇨기과에서 요실금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요실금 치료제는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했고 치매 진단 끝에 치매 약까지 챙겼다. 그런데 치매약은 요실금을 악화시켰고 비뇨기과는 강력한 항콜린성 약을 처방했다. 졸음과 무기력증을 일으킨 약 때문에 넘어져 다리를 다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고혈압을 치료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해결하다 보니 낙상이란 예상밖 결과로 이어졌다.
경제와 정부의 관계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닮았다. 코로나19 사태는 2020년 한국 경제를 흔들었다. 격리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경기가 침체를 넘어서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의사가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CCB를 처방하는 것처럼 정부는 유효 수요를 늘리고자 확대 재정정책을 펼쳤다. 덩달아 한국은행도 0%대 저금리를 유지해 통화량을 늘렸다. 덕분에 경기침체를 막았다. 그러나 고혈압 약을 먹고 다리가 붓는 것처럼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물가상승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저금리로 가계대출이 급증하며 부동산 가격도 폭등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높였다. 0%대였던 기준금리가 3%대까지 치솟자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배로 늘어서 숨이 막힌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외식을 가지 않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았다던 영끌족은 이자 부담에 골머리를 앓았다. 서울 핵심 상권인 명동에 빈 가게가 보일 정도로 자영업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었는데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자영업자는 빚더미에 앉았다. 올해 들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경제 관련 처방은 백약이 무효가 됐다.
한국은행은 고민에 빠졌다. 서민과 자영업자를 위해 금리를 내린다? 금리를 내리면 물가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물가 안정이 통화정책 주목적인 까닭에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금리인하로 이자 부담이 줄면 부동산 가격도 들썩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까닭에 한국은행은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부동산 대책 효과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집값과 가계부채를 볼 때 오히려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부작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집값이 들썩이자 금융감독원이 나섰다. 이복현 원장은 7월초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에 편승한 대출 확대”를 언급했다.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금감원 수장의 말 한마디에 시중은행은 일제히 금리를 높여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했다. 대출 규제에 볼멘 소리가 터지자 이복현 원장은 8월 말 “대출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고 말했다. 돈을 빌리겠다는 고객에게 이자를 높이지 않으면 어떻게 대출을 억제하란 뜻일까. 급기야 신한은행 등은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여론이 나빠지자 이 원장은 4일 “실수요자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간에는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금융위원장 노릇을 대신한다.” “금감원장 탈을 쓴 검찰총장이다.” “용산 대통령실 의중을 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복현 원장은 마치 금감원장이 금융당국 수장인 것처럼 직설적인 화법으로 은행을 쥐락펴락했다. 이런 까닭에 금융계는 물론이고 정계에서도 “금융당국 수장이 누구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들린다.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엔 금융위원회에 금융감독 업무를 맡긴다고 명시돼 있으나 대통령 핵심 측근이자 실세를 수장으로 둔 금감원의 위세에 금융위 위상은 쪼그라들었다.
금감원 처지도 딱하다. 눈에 보이는 부작용을 막는 데 급급했던 한국 경제에 어떤 경제정책이 필요할까. 이복현 원장의 언행에 문제는 있으나 금감원장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랬다저랬다 하는 걸까. 한국 경제는 잔병에 시달려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하는 노인처럼 골병이 들었다. 어설픈 처방으로 눈앞의 증상을 가려 봤자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계에는 부적절 약물 지정이란 제도가 있다. 주치의가 꼭 필요한 약만 챙기고 약사가 불필요한 약을 정리한다. 이런 방식으로 부작용이 큰 약을 거르면 고혈압 환자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한 번에 고물가·고금리·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경제정책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 안목으로 한국 경제를 치료할 주치의와 약사를 곁에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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