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45주년 추모의 날. 세월이 흐를수록 당신의 영웅적인 영성은 사라지지 않고 사무치게 부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무질서했던 대한민국을 부국·강국으로 만든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고, 후손들도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비적인 공적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을 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칭송한 사실부터 밝힌다. 그들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 수준의 차이가 벌어진 것은 제도와 지도자의 차이로 설명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주도형 산업 발전과 포용적 경제 제도, 공평한 법체제와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 시스템이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동력이었음을 증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초년은 신비했고 중년은 신박했으며 결국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1937년 약관 20세에 문경공립보통소학교 교사를 했고, 1942년 만주사관학교 수석 졸업, 1944년 일본 사관학교 3등 졸업, 강한 의지와 애국심으로 한국군 장교에서 장군을 거쳐 5.16혁명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역임 후 1963년 선거를 통해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창조적 국정 운영으로 세계적인 경제 석학도 대한민국을 연구하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세계 위인을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삶의 고비를 극복한 영웅, 박정희
소령 시절엔 사형 위기를 넘겼고 목숨을 건 5.16혁명 이후에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고 지켜서 혁명을 완성했다. 1974년 8·15 경축 행사 중 국립극장에서 국모로 추앙받던 육영수 여사를 잃고도 조국 근대화의 바탕을 닦았다. 사욕과 공명심에 젖은 양김(김영삼·김대중) 등 정치인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국가 성장을 방해했지만 탁월한 실력과 국익 실적으로 제압했다. 몸소 안보와 외교를 챙기고 위민 활동으로 국민에게 위대한 거인의 모습을 남겼다. 그는 창의적 생각과 솔선수범 통치로 국가를 발전시켰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대규모 중화학공업 육성과 공장 건설·민둥산의 기적인 산림녹화 사업·식량 자급자족 실현·자주국방과 군대 현대화 사업 등 국가를 강하고 부유하게 했지만 상처뿐인 영광만 남았다. 지금도 현충원 묘지에 박힌 쇠침은 영육을 괴롭히고 있다.
기록물과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대통령, 박정희
박정희는 다부진 카리스마와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군인 모습, 1964년 12월10일 파독 광원와 간호원 앞에서 눈물의 연설을 하던 모습의 지도자, 논에 직접 들어가 볏짚 모자를 쓰고 모내기도 하고 고속도로 건설 반대를 무릅쓰고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던 지도자였다. 새마을운동의 주창자이자 국민교육헌장을 반포(頒布)한 교육 통치자였다. 현재의 국정 뼈대와 산림·산업 현장과 방산 연구기관·도로 등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이 박정희 박물관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인류 민주 정치의 표상 정치인, 박정희
당신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건국 설계도를 이어서 합리적 민주 통치의 기초를 닦은 민주화의 표상이다. 좌파·좌익 진영은 집요하게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만 당신은 한 번도 국무 절차와 헌법을 위반한 일이 없다. 좌파 운동권 무리가 아직도 거짓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지만 박정희는 1961년부터 군정 단계의 민주주의·제3공화국의 민족적 민주주의·한국 실정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구현하였다. 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민주화가 경제성장의 기초가 되었다고 밝혔다.
박정희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망국적 야당에 의해 국정 운영의 고초를 겪었다. 얼마든지 철권 정치를 할 수 있었지만 서거하는 순간까지 자유민주 철학과 신념을 지켰다. 당신이 남긴 행정 기록물과 국무회의와 지방 순시에서 독재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적 지도자의 세계 고유명사가 되었다. 인류가 그동안 사용한 민주 언어로는 호칭할 수 없는 민주 성군(聖君)이다.
대한민국 근대화 기획자, 박정희
박정희는 시스템과 제도로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를 재건하고 정비했다. 최초의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친환경적인 그린벨트를 설치했으며, 1968년 서울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그 바탕에는 자유시장 경제를 생명처럼 여긴 시장주의 철학이 있었다.
박정희는 모든 국민에게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신바람을 주는 통치로 가난한 나라를 부유한 대한민국으로 변모시켰고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전 국토를 ‘하면 된다’는 긍정과 감사와 자신감의 ‘인간 학교’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일하면서 싸우는 애국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자주국방 기초 설계자, 박정희
박정희는 6·25전쟁을 겪고도 소총도 만들 수 없는 나라에서 율곡 계획을 세워 소총·미사일·전차 등을 국산화했다. 1978년 ‘백곰’ 미사일 시험에 성공한 후 환하게 웃던 서민적 모습은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올해 국군의날 현무5의 위용에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과 규제와 감시 속에서도 K방산의 효시가 되었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의 1.21 청와대 기습 사건을 계기로 그해 4월1일 예비군을 창설했다. 예비군이 대한민국을 지킨 물리적 향토 전력이었다면, 당신의 통찰과 선견지명이 만든 제1의 국시인 ‘반공 정신’은 공산화를 막은 중심 전력이 되었다. 당신이 만든 안보시스템과 멸공의 횃불로 키운 안보 역군들이 주사파 종북과 북충(蟲) 무리의 국가 파괴를 막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국강국 시행자
당신의 통찰과 지혜롭고 자애로운 통치는 국민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했고, 국민에게 당신의 온정과 위민 사랑을 부어 주어 5000만을 존엄한 국민으로 만들었다. 당신은 1979년 10월26일 배신을 당했지만, 당신에게 강군 철학과 군인 정신을 배운 후배 군인들이 김재규 일당의 패륜적 쿠데타를 12.12로 제압하고 공산화 위기를 극복했다.
박정희 당신이 되기 전에는 영웅 일대기를 정리하는 자체가 무리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강권 역사를 감내하고 극복한 철인(哲人), 동서양의 문명을 고루 익힌 선견과 통찰로 5000년 가난한 정토를 자유와 풍요의 빛으로 탈바꿈시킨 개혁의 영도자, 동양에서 유일하게 공산주의를 물리친 철권 지도자였다.
우리는 당신이 서거하신 이후에야 당신은 이순신 장군의 환생임을 알았고, 나라를 구하고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신인(神人)임을 알았다.
박정희의 국가 재건 지혜와 경제발전 뚝심과 적의 도발을 허용하지 않았던 용기와 결기를 윤석열 대통령이 계승하여 국면 전환과 자유통일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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