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9·19 남북 군사합의의 복원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한반도 안보 정책이 중대한 분기점에 섰다. “북한은 적이자 동포”라는 발언과 함께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안 후보자는, 즉각적 원상 복귀가 아닌 ‘단계적 최적화’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구상은 전통적 군사 중심의 억지 전략과는 결이 다르다. 문화·예술을 통한 민간 교류 선행이라는 ‘소프트 파워 우선론’에 가깝다는 평가다. 군 출신이 아닌 민간 출신으로 64년 만에 국방장관 후보로 지명된 그의 이력 또한 이 같은 접근을 가능케 하는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29일 스카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체결한 군사 분야 부속합의서다.
이 합의는 △DMZ 내 GP 철수 △군사분계선 인근 대규모 훈련 중지 △서해 평화 수역 조성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북 간 충돌 완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해안포 사격(2019)·GP 총격(2020)·무인기 침투(2022)·해안포 포문 개방(2023년 3,400여 회) 등 잇단 위반 행위를 벌였다.
한국 정부는 2023년 11월 일부 효력 정지를 선언했다. 북한은 즉각 ‘전면 파기’로 맞섰으며, 올해 6월 한국도 ‘전면 효력 정지’로 입장을 정리했다.
당시 국방부는 “9.19 합의가 군 ISR(정보·감시·정찰) 능력을 제약하고, 훈련과 기동성을 제한해 안보에 족쇄가 됐다”고 설명했다. 일선 해병대 훈련 불편, 최전방 방어 공백 우려, 감시 능력 저하 등 실질적 불이익도 제기됐다. 특히 비행금지 구역 설정은 드론 및 항공 정찰 활동을 제한해, 북한의 도발 조짐을 조기에 포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우려에도 안 후보자는 “단순 복원이 아니라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7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집무실로 첫 출근 길에 안 후보자는 “복원이 곧 원상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남북 간 상호 신뢰 조성을 위한 민간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속해서 안 후보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문화 예술 교류가 군사 문제 해결의 마중물이 됐듯, 지금도 그런 순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통적인 ‘군사 우위-안보 우선’ 접근과는 다소 다른 시각이며, 비군인 출신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정치적 정체성이 반영된 접근으로 풀이된다.
안 후보자는 북한에 대해 “우리의 적이자 동시에 동포”라는 이중적 인식을 드러냈다. 이는 군사적 억지와 외교적 해법을 병행해야 한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함축한다.
그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문제에 대한 척결 없이 소독약만 뿌리고 가면 곪는다”며, “신상필벌 원칙에 따라 단죄할 건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군 기강 회복과 정치·군 간 투명한 경계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9·19 합의 복원을 둘러싼 국내 여론과 안보 현실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2025년 현재 남북 관계는 극도로 경색돼 있다. △북한은 오물 풍선 살포 △GPS 전파 교란 △연쇄적 미사일 도발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올해 4월 실시된 대북 인식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4월 4일부터 7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대북인식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북한은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북한은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북한은 우리에게 적이다”라는 항목에 대해 58%가 ‘그렇다’고 답변, 2023년(48%)보다 10%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협력의 대상”이라는 응답은 22%에 그쳤고, “경계 대상”이라는 중립적 응답은 18%에 머물렀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북한의 연이은 군사 도발과 확산세를 보이는 북·러 군사 협력, 오물풍선 살포나 GPS 교란 등 비대칭 도발이 누적되면서 대북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에도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여권 내부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이해하더라도, 국내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추진은 어렵다”는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국제정세도 복원을 어렵게 만든다. 미중 전략 경쟁 심화, 북러 군사협력 강화 등 복잡한 역내 안보 구도는 한국의 대북 접근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2023년 한국 정부가 9·19 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할 당시 미국과의 사전 조율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어, 향후 복원 추진 시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와 이해 조율이 필수적이다.
외교안보가에서는 단순 복원이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닌 ‘스마트한 복원’이 돼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는 △합의 이행에 대한 검증 가능성 △명확한 위반 대응 절차 △안보를 침해하지 않는 실용적 조정 △신뢰 회복 기반의 단계적 접근 등을 포함하는 구조적 재설계를 의미한다. 기존 9.19 합의가 ‘선의에 기댄 합의’였던 반면, 앞으로의 합의는 실질성과 신뢰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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