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먼저 챙겨야 그분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고 종래에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소외계층을 돕는 건 어떤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어려우신 분들과 소소한 기쁨을 나누며 그분들에게 웃음꽃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근래 남북 간에 때 아닌 ‘전단(삐라) 전쟁’이 벌어지면서 탈북단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재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대남전단 살포 이유로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을 꼽았기 때문이다.
거의 매해, 때마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전단 살포, 시위, 집회 등의 영향으로 일부 국민은 탈북단체 전체를 정치집단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극성을 추구하는 미디어 뒤에 가려져 묵묵히 봉사활동에 매진하는 탈북단체도 다수다. 이러한 단체들은 소위 ‘조회수’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언론에 거의 다뤄지지 않을 뿐이다.
‘겨레얼통일연대’도 그러한 단체 중 하나다. 북한정권 수립일인 9·9절에 맞춰 2010년 9월 9일 회원 200명, 협력회원 300명에 의해 창립된 겨레얼통일연대는 창립일이 갖는 상징성, 단체명에 포함된 ‘통일’ 등 정치적 구호 때문에 정치단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곤 한다.
여기에는 미림군사대학 출신으로 북한군 장교를 지낸 장세율 대표(51)의 이력도 원인으로 한 몫 한다. 장 대표와 겨레얼통일연대가 2011년 2월 국방부 정보본부 ‘북한군 체제변화 가능성’ 연구용역을 수주받은 것과 그해 7월과 8월 서울에서 북한정권 규탄 피켓시위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장 대표의 주름진 얼굴 이면에는 탈북어르신 봉사와 같은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인터뷰에 기꺼이 응한 김소연 총무(41·가명)와 회원 박혜진 씨(48·가명)의 부드러운 인상도 대립과 반목이 난무하는 시위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보다 이웃에 온정을 배달한 적이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스카이데일리가 21일 찾은 겨레얼통일연대 사무실은 청와대·국회와 가까운 서울 도심이 아닌 6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아 길가에 피어난 꽃잎처럼 고즈넉한 인천 강화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인터뷰는 이날 만나기로 약속한 장 대표가 업무상 이유로 외출하면서 21일 겨레얼통일연대 사무실, 23일 서울 종로 두 곳에서 이뤄졌다.
“탈북민 품어준 대한민국에 은혜 갚을 기회 오길 바랄 뿐이죠”
“탈북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설, 추석, 성탄절에 탈북어르신 봉사 행사를 개최한 것이나 소외된 탈북민들을 모시고 송년회를 한 것 등이죠. 그분들께서 웃으실 때가 가장 행복해요.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날 때도 종종 있죠. 가끔씩 가족이 보고 싶어 슬프기도 하지만 타인을 돕는다는 점에서 즐거울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2014년 무렵 장 대표의 소개로 겨레얼통일연대에 몸담았다는 김소연 총무는 단체활동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말에 망설임 없이 ‘봉사’를 꼽았다. 칭얼대는 어린 아들을 돌보면서도 인터뷰에 응한 그는 활동내역을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이끌었다.
김 총무가 보여준 2018년 2월 23일 ‘탈북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2018 설 명절’ 행사 사진에는 어림잡아도 수십 명의 탈북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김 총무는 지금은 여러 영향으로 단체활동이 다소 위축됐지만 1, 2년 전만 해도 활발했다고 설명했다.
비영리단체의 특성상 재정에 한계가 있지만 경제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게 김 총무 설명이었다. 단체는 봉사 외에 탈북과정에서 여러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탈북민들을 위한 심리치료교실, 재활센터 운영, 영농체험, 김장나눔 등 다양한 활동도 했다고 한다. 근래 후원금 유용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모 단체와의 비교가 절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가장 어려워요. 민감한 얘기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지금처럼 단체 활동이 위축됐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북한 인권, 탈북자 인권을 위해서는 탈북단체들이 우선 힘을 얻어야 하는데 도리어 힘이 빠지는 것 같으니 정말 안타까워요.”
다년간 겨레얼통일연대에서 봉사했다는 회원 박혜진 씨는 단체 운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묻는 말에 다름 아닌 ‘지금 현재’라고 답했다. 얼굴 가득 드리운 수심은 현재 단체가 처한 고난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그 많은 어려움을 헤쳐내고 대한민국까지 온 우리가 남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그저 바랄 뿐이에요. 이러한 바람이 정치적인 이유로 외면당하는 사실이 서글프기만 해요. 어렵긴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웃을 날이 오겠죠.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힘을 얻곤 해요.”
“진실을 알리는 것, 그것이 평화 정착의 길이죠”
폭염이 다소 가라앉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장세율 대표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 날도 많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약속시간에 약간 늦고 말았다. 과거에 비해 많이 살이 빠진 모습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장 대표의 얼굴을 보면서 어느덧 지천명(知天命·50세)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면서 탈북민 인권, 북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겨레얼통일연대는 2010년 설립돼 2011년 12월 통일부 북한인권과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됐어요. 탈북민으로 구성된 회원이 2400명이고 설립목적은 민간 차원의 통일 지원, 북한인권 개선과 민주화, 취약계층 탈북민 정착지원 등이죠. 세부적으로 하는 사업은 북한으로의 민주화 정보 유입 등이에요. 북한 정보를 수집해 우리 국민에게 전파하는 것도 업무예요. 북한에서 희생된 자유민주 투사들에 대한 추모 사업, 탈북어르신들 정착지원 사업, 물품나눔 사업, 심리치료 등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어요.”
장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겨레얼통일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체의 활동범위는 생각보다 넓었다. 회원 수가 2400명에 달한다는 점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북한 정보 유입 및 정보 수집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기에 자칫 겨레얼통일연대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감안해 지면에는 싣지 않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탈북민들로 (회원이) 구성됐기에 북한에 필요한 게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북한 내부에는 정보네트워크도 있죠. 북한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회원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 대표는 겨레얼통일연대가 국방부 연구용역 수주 등 명실상부한 핵심 탈북단체로 성장한 원동력으로 망설임 없이 회원들의 노고를 꼽았다. 회원 중에는 정치, 사회, 경제 등 북한의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자연히 이들은 북한 정권의 ‘타깃’이 될 위험도 다분했다. 실제로 23일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주요 탈북인사들에 대해 “깨끗이 소각해 치워야 한다”며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염려되는 마음에 신변안전상 대외활동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넌지시 물었지만 장 대표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도 북한에 진실을 전달하는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북한 내부에서 독재와 싸우다 희생된 자유투사들의 (사후) 영생을 기리는 사업도 할 것이고요. 북한 주민들과의 정서적 융합을 기반으로 한 평화통일에 매진할 계획이에요.”
장 대표는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꼭 하고픈 말도 있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진실을 알 때 (대남) 적개심을 버리고 남북은 평화공존 체제로 갈 수 있어요.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게 평화 정착의 길이죠. 북한 정보 유입은 북한 주민을 세뇌에서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이에요. 세계 모든 국가와 우리 국민이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줄곧 진지한 표정으로 ‘인권투사’의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한 장 대표는 기자가 펜을 내려놓자 비로소 평소의 그 모습, 소외계층을 먼저 챙기고 어르신들을 먼저 챙기는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돌아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을 나와 장 대표와 함께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치 지금의 엄중한 한반도 상황을 반영하듯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걷어내 언젠가는 맑게 갠 푸른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음은 자명했다. 구름이 지나가고 햇살이 비추듯 겨레얼통일연대라는 바람이 언젠가는 한반도의 어둠을 씻어내고 광명을 찾아오지 않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장 대표의 발걸음에는 어느덧 힘이 실려 있었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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