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언택트) 수요가 급증했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생필품 구매, 은행 업무, 사무, 교육, 채용 등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언택트 기술이 활용되면서 기반 산업인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산업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일찌감치 IT강국을 표방한 우리나라 정부는 ICT산업 육성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련 정책을 실시해왔다. 문재인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 세계 ICT산업의 급격한 발전 속에 우리나라 ICT산업 경쟁력은 주요국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ICT산업 특성에 대한 낮은 이해에서 비롯된 규제 일변도 정책을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ICT산업 혁신 등을 표방한 ‘디지털 뉴딜’이 한국판 뉴딜 첫 꼭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제시한 계획안과 정부 주도 정책방식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ICT 산업 발전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문재인정부, ‘디지털 뉴딜’에 5년 간 혈세 44조8000억원 투입 예고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기본 인프라로 지목되는 5세대 이동통신(5G)을 최초로 상용화한 국가다. 향후 5년간 모바일 네트워크서 5G 비중은 6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5G 다운로드 속도는 4G 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가량 빠르다. 처리 용량은 100배 많다. 초고속 대용량 통신이라는 특성 덕분에 4차 산업혁명 주요 기술인 가상·증강현실(VR·AR),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이 구현가능하다.
OECD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인터넷 평균속도 28.6Mbps, 유선 광케이블 보급률 78.5% 등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ICT산업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정부 평가에서도 덴마크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문재인정부는 탄탄한 ICT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뉴딜을 한국판 뉴딜 추진전략 중 하나로 채택했다. ‘코로나19 계기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가속화’란 문구를 내건 디지털 뉴딜의 추진방향은 디지털 국가 및 비대면 유망산업 육성 등이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중 디지털 뉴딜 정책에만 2025년까지 총 58조2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중 44조8000억원은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한 국비로 마련된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통해 2025년까지 90만3000여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최근 정부는 ‘디지털 기반 산업 혁신성장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全) 산업의 디지털화를 통한 세계 4대 산업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3대 추진과제가 제시됐는데 △업계 수요에 기반한 적시·적절한 산업 데이터 활용 지원 △데이터·AI를 활용한 산업 밸류체인 고도화 △산업 디지털 혁신 인프라 구축 등이다.
“정부·공공이 주도하는 산업 발전은 헛된 상상…기업 자율성 극대화 시급”
정부가 전 산업의 디지털화, ICT산업 고도화 등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여럿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 ICT산업은 우수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기술력 수준 등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국내 ICT 기업들의 경쟁력도 해외 주요 기업에 밀리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26개 ICT 분야별 평균 기술수준을 평가했을 때 선진국 미국을 100%이라고 설정할 경우 우리나라 기술수준은 84.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술격차는 1.4년이다. 26개 ICT 기술분야 중엔 4차 산업혁명 핵심동력으로 지목되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야 등이 포함돼 있다.
국·내외 ICT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영향력 역시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일례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유튜브’ 이용자는 2805만명으로 집계된 데 반해 ‘웨이브’ 이용자는 315만명에 불과하다. 웨이브는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연합한 토종 OTT플랫폼이다.
자연스레 국내 ICT기업들의 규모는 해외 기업에 비해 열악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S&P capitalIQ 데이터 등을 분석해보면 지난해 기준 한국 ICT 분야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은 2710억원으로 집계됐다. 미국 ICT기업 평균인 3조3000억원의 12분의 1, 세계 평균인 7950억원의 3분의 1 등의 수준이다. 소프트웨어·서비스 산업으로 한정할 경우 국내 기업 한 곳당 평균 매출액은 1190억원으로 미국 기업 2조3000억원의 20분의 1, 세계 평균 5230억원의 4분의 1 등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내 ICT산업 고도화와 성장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정부의 무관심’을 지목하고 있다. 해외 주요기업들도 자체적인 디지털 혁신 등을 통해 경쟁력 제고를 이뤄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00년대 후반 애플, 구글 등에 뒤처지며 독보적 위치를 상실했지만 클라우드 사업 확장, 구독 서비스 제공 등 변혁을 바탕으로 다시 1위 자리를 다투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테슬라도 전통제조업으로 분류된 자동차산업에 디지털을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불필요한 규제 등으로 발 빠른 대처와 혁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플랫폼산업 혁신 사례로 꼽히던 ‘타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통과로 불법으로 분류돼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영향권에 놓일 전망이다. 시장지배력을 억제한다는 명목 아래 경쟁력을 잃을 우려가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도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의 손발은 묶어놓고 정부와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앞장서 산업개편에 나서는 행태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기업을 전면에 세우고 정부부처, 정부 관계자 등은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는 등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판 뉴딜 등 현재 우리나라 산업정책은 정부·공공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계획돼 있다”며 “각종 규제로 기업의 역할을 최소화하면서 공무원이 플레이어로 나서는 건 국가 경쟁력 발전 측면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업 관계자, 연구원 등과 공무원들의 역할과 전문성은 엄연히 구분돼 있다”며 “예외도 있겠지만 공무원 대부분은 ICT산업과 관련해 전문성이 떨어질 텐데 공무원들을 앞세워 산업 생태계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려면서 “첨단 산업의 선두에 있는 미국의 경우 기업이 산업혁신과 기술발전을 주도하고 공무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미국 공무원이 무능해서가 아니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ICT 산업은 트렌디한 성격의 산업이므로 관련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나 시대적 흐름에 맞춰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와 공공은 기업이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역할 등에 집중해야 효과적인 산업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강주현 기자/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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