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지난 9월 서울시가 내놓은 코로나 방역을 위한 마스크 착용 홍보 포스터의 문구다. 8월 24일부터 시내 전역에 발령한 마스크 착용 행정명령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에는 보건용 마스크를 쓴 사람과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는 사람을 대비시키는 사진을 나란히 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 보건용 마스크를 쓴 사람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듯 여유가 느껴지는 반면, 오른쪽 사진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아마도 의식마저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두 사진의 상황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하게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제작됐다.
마스크 착용 홍보효과를 기준으로 보면 이 포스터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 포스터를 보고 불편함을 느꼈던 건 기자뿐일까. 아니 불편함을 넘어서 섬뜩한 공포심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포스터에는 ‘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라는 문구 아래 쓰인 ‘남이 씌워줄 땐 늦습니다’라는 글귀가 충격과 공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12월 말까지 ‘천만시민 긴급 멈춤 기간’으로 정하면서 연말연시 5대 행동수칙과 함께 내놓은 포스터도 마찬가지다. 이 포스터에도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환자가 누워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지금 혼자가 되지 않으면 영영 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큰 글씨로 적혀있다. 연말연시 행동수칙으로 △2시간마다 환기 △송년모임 자제 △밀폐장소 오래 있지않기 △의심되면 즉시 검사 △마스크착용&손소독 철저 등 5가지를 홍보하면서 특히 연말연시를 맞아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포스터의 홍보 문구와 사진 역시 보는 이에게 경각심과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기자는 이 포스터를 보는 순간 뭔가 짓누르는 듯 마음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심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재난정신건강 전문학회인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코로나 발생 후, 국민 정신건강실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하여 올해 3월과 5월에 이어 9월 보건복지부와 함께 3차 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했다.
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9월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코로나 발생으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 항목 지수가 평균 1.77로 나타났다. 이는 3월의 1.73과 5월의 1.59보다 높아진 수치다. 또 △불안 항목에서 9월조사 불안위험군(cut-off 10점 이상)은 18.9%로 5월조사 15%보다 높았으며, 3월조사 19.0%와는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특히 우려되는 항목은 △우울증이다. 학회 조사 결과 우울 및 자살사고는 걱정과 두려움, 불안과 달리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조사에서 우울위험군(cut-off 10점 이상)은 22.1%로 5월조사 18.6%, 3월조사 17.5%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이는 2018년에 실시한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3.79%)의 약 6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9월조사에서 13.8%로 5월조사 10.1%, 3월조사 9.7%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였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이와 같은 조사결과는 2018년 성인 자살생각률 4.7%에 비해 매우 높아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조사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국민은 너나할 것 없이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자영업자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을 것이고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불안, 학교에 못가고 있는 학생의 고립감과 학부모들의 염려, 함께 삶의 활기를 채워주던 동호회 활동도 차단되고 보고픈 가족이나 친지·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하는 등 우리들 대부분의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CNN은 일본의 자살 현황에 관해 보도했다. CNN이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일본의 자살자 수는 2153명으로 이는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통계는 특히 2015년 이후 일본의 자살자 수가 하향 추세에 있었으나 올해 들어서 급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CNN은 기사에서 일본의 사례를 통해 코로나가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다른 국가들도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포스터가 반드시 섬뜩한 공포심을 심어줘야 할 필요는 없다. 개·돼지를 길들이듯 공포심으로 통제하기엔 우리 시민의식은 훨씬 성숙해 있다. 오히려 공포심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심리적·정신적 피해의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걸 당국은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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