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가짜뉴스’ 논쟁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여당의 입법독주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가짜뉴스’를 쟁점화 시켜 이를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자칫 언론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부각되는 권력 견제와 국민 알권리 충족, 표현의 자유 등이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론 안팎에선 단지 정부·여당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한 기사조차 가짜뉴스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는 나온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일종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홍콩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취한 조치와 흡사해 제2의 홍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도청·감시·미행·압수수색 등 中 공산당에 의해 ‘표현의 자유’ 사라진 홍콩
7월 1일 홍콩에서는 보안법이 전격 시행됐다. 같은 날 ‘홍콩독립’이 적힌 깃발을 든 15세 소년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적힌 깃발을 오토바이에 꽂은 사람이 처음으로 기소되고 조슈아웡 등 우산혁명 리더들이 구속되는 등 홍콩에서 표현의 자유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래 일국양제(一國两制) 기치 하에 유지되던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 공산당 압박에 서서히 소멸되고 있다는 외신의 비판이 쏟아졌다.
홍콩보안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진 내용은 ‘언론통제’다. 영장 없는 압수수색, 언론 등 인터넷기업에 대한 게시물 삭제 명령 등 막강한 권한을 홍콩 경찰에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행정장관 승인을 받으면 피의자에 대한 도청, 감시, 미행, 여권 압류, 재산 동결·몰수 등도 가능토록 했다. 주변에서 보안법 위반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7월 중국공산당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홍콩 대표인 찰스 호 싱타오뉴스 대표는 “홍콩은 여전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만 가짜뉴스를 보도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홍콩 언론에 대한 일종의 경고 의미로 해석됐다.
해당 법 시행 이후 홍콩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프란시스 퐁 홍콩 정보기술협회 명예회장은 “이제 홍콩 경찰은 홍콩 내에 있는 모든 기업에서 정보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앤슨 웡 변호사는 “사법부가 행사하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해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규탄했다.
중국 공산당의 노골적인 언론탄압은 앞서 본토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7년 ‘혀 위의 가짜뉴스’라는 신조어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에서 등장한 후 가짜뉴스 방지라는 명목하에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후 작년 4월 중국의 대표적 IT기업 알리바바는 ‘가짜 온라인 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인공지능(AI) 어플리케이션을 공개했다.
‘루머 슈레더(Rumor Shredder)’라는 이름의 이 앱은 원본 게시자가 누구인지 추적한 뒤 게시자가 이전에 유포한 게시물은 어떤 것인지, 게시자가 중국공산당에 불리한 뉴스를 확산한 전력이 있는지 등 여부를 낱낱이 분석한다. 게시자가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로 확인되면 ‘신뢰할 수 있는 소스’로 간주한다.
알리바바 측은 이 앱이 ‘SNS 감시관’ 업무량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호주로 망명한 리윤화 전 중국 수도사범대학 역사학과 조교수는 “어떠한 순수과학 연구도 중국 정부 손에 들어가면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형되고 결국 악의적 목적이 이용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독립 평론가인 구허도 “소위 루머 확산자 억압에 일조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루머 확산자’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을 일컫는 용어다.
‘언론 탓’ 이어 가짜뉴스 낙인까지…노골적 언론탄압 행보에 자유민주주의 가치 흔들
작년 7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중국 공산당 간부 양성학교인 중앙당교와 교류협력 협약을 전격 체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 개편을 골자로 하는 중국몽(中國夢) 동참을 선언한지 약 2년 만에 이뤄진 협약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협약 이후 여권은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수를 늘리며 근절 의지를 공고히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올해 3월 ‘차이나게이트’ 등과 관련된 의혹 게시물 183건을 경찰에 고발했다. 박광온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 위원장은 “악의적 선동에 무관용 원칙의 법적조치로 강력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차이나게이트는 국내 온라인상의 친여(親與) 게시물·댓글 상당수가 중국공산당 여론조작 조직인 우마오당(五毛黨)에 의해 작성됐을 것이라는 의혹이었다.
8월에는 정부도 합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담화문에서 “당국 방역활동을 방해하고 국가 방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코로나 관련 가짜뉴스에 대해 추적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신속하게 차단해 뿌리 뽑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여론 안팎에선 코로나 2차 유행을 두고 정부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었다.
급기야 이달 10일에는 정부·여당이 ‘가짜뉴스’라 규정짓는 게시물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도록 하는 일명 ‘가짜뉴스 방지법(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방식 등으로 타인 명예를 훼손해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5배 이내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의원은 “지금의 현실에서 생산되는 정보는 쉽고 빠르게 전파되고 최초 노출 후 회수하거나 삭제하기 매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며 “허위사실에 의한 피해의 크기가 과거보다 상당할 것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은 아예 직접적으로 언론을 겨냥한 ‘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언론 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를 발의하기도 했다. 법무부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여당의 행보를 두고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은 10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긴급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언론사 등에 대한 징벌적 손배 제도를 도입하는 건 언론 위축 효과를 가져 올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며 “헌법상 표현의 자유, 기본권 침해가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선의의 오보인 중과실까지 처벌토록 규정한 것도 문제다”며 “사회적 약자의 호소도 외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출신인 양홍석 변호사는 “중과실과 (고의적) 허위를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권력에 반대되는 세력은 규정력에서 현저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정 의원 발의안 관련 검토 보고서에서 △명예훼손으로 인한 형사처벌 외의 이중처벌 소지 △언론사의 자기검열로 인한 언론자유 위축 △‘악의적 보도’에 대한 모호한 기준 등을 이유로 들어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법무부 발의 상법 개정안을 두고도 언론 취재‧보도를 상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외신들도 정부·여당의 행보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짜뉴스방지법 시행 시 한국이 홍콩처럼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8월 영국의 대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진보 통치자들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발산한다’ 제하 기사에서 “우파 유튜버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소문을 퍼뜨렸다가 감옥에 갔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작년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거의 5분의 1이 정부 고위관계자들과 관련된 것이다”며 “박근혜정부 시절보다 많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 프레임을 앞세운 언론 탄압은 부당하다며 언론의 순기능 및 국민 알권리 보호 등을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공직자 공적 사안이나 대기업 보도 등은 예외로 두는 논의가 없으면 (권력의 언론 통제 가능성 등에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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