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2위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이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직접 개발해 생산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배터리업계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간 국내 전기차 배터리업계가 폭스바겐에 납품했던 배터리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K-배터리에 직격타로 작용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15일 폭스바겐은 전기차 배터리 전략을 소개하는 ‘파워 데이(Power Day)’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폭스바겐은 2023년부터 비용과 성능을 개선한 신규 각형 배터리를 출시하고 2030년까지 전기차의 80%에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토마스 슈몰 폭스바겐 이사는 “통일된 각형 배터리 셀 디자인을 적용해 배터리 제조 비용을 보급형 차종 부문에서 최대 50%까지, 대표 차종 부문에서 최대 30%까지 낮출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에 폭스바겐은 유럽에 총 6개의 이차전지 공장을 세우는 등 총 240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연간 생산 능력 120GWh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투자 예정 국가로는 스웨덴, 독일,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등이 고려되고 있다. 특히 합작 벤처를 운영 중인 스웨덴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스볼트의 주력 배터리도 각형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새 각형 배터리 셀 디자인이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폭스바겐은 미국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에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전기차 배터리 수요 폭증과 가격 상승 가능성 때문이다. 업계는 2023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해 공급량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토요타와 BMW, GM 등이 배터리 합작사를 세워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생산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에 판매되는 차량 중 순수 전기차(BEV) 비중을 6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하는 등 전기차 공급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폭스바겐이 전기차에 탑재할 각형 배터리의 비중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은 엄청난 수요처를 잃게 됐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에 이차전지를 공급하는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중국의 CATL 등으로 알려졌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중국 CATL의 주력 제품은 각형 배터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탑재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유형별 점유율 중 파우치형 배터리의 점유율은 2019년 대비 11.8% 증가한 27.8%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의 선전으로 파우치형 배터리의 점유율이 증가하긴 했으나 각형 배터리에는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각형 배터리의 점유율은 49.2%로 1위를 차지했다. 파우치형 배터리 점유율과 비교해 거의 두배에 달하는 수치다.
폭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비중이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메리츠 증권은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 기반의 전기차 판매 실적이 정점에 오르는 시점은 2026년으로 예상된다”며 “2026년까지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주로 탑재되나 그 이후부터는 각형 배터리가 중심이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집중 전략으로 노스볼트와 CATL 등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대신 파우치형 배터리에 주력한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파우치형·원통형 배터리 모두 생산할 수 있는 LG에너지솔루션 보다 파우치형만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주요 고객사는 폭스바겐이기는 하지만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도 파우치형 배터리가 납품되고 있다. 또 원통형 배터리는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스타트업에 공급되고 있다. 이렇듯 LG에너지솔루션은 상대적으로 공급처가 다변화돼 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 상당량은 폭스바겐에 주로 납품해 왔다.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로의 전환 계획으로 SK이노베이션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발주처인 폭스바겐이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도입키로 하면서 중국 CATL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K-배터리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부정적인 소식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당장 2025년부터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폭스바겐 내 점유율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