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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가족·민족·인류에 얽힌 돈의 공공성 ‘초국 디딤돌’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54>]-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 초국의 실수(2)
가짜 천륜 몰염치 이념의 구태···1인 같은 슈퍼인터넷에 퇴장 예고
가족 무한책임·무한사랑 깃든 민족···배타성 속 잠재된 무경계 선덕
알앤알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4-09 00:02:35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Q. 초국에 잠재된 위험한 배타성을 궁극적으로 제어할 방법은 없는가
 
A. 경쟁은 배타성이다. 경쟁을 모태로 하는 경제 또한 배타적 에너지를 갖는다. 하지만 그 배타성 속에 경제적 도덕률이 존재하는 선의(善意)가 의미심장하다. 상호 이익을 도모해 서로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부가가치 시너지가 반드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경제적 도덕률은 자유시장의 배타성에 기반한 책임의 확산이다. 초국에 잠재된 위험한 배타성은 실제 위험하지 않게 얼마든지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잠재적 위험을 지나치게 제어하면 초국의 근본 질서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인류가 초국을 만들어 가는 태도가 그래서 중요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른 가족과의 배타성이 아닌 이타성의 눈으로 보는 태도다. 실제로 가족은 가장 애틋한 이타성을 상징한다. 설사 가족을 위해 다른 가족과 경계하거나 경쟁한다고 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행복이 삶의 전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국의 질서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 같다. (262쪽 : 경제적 삶의 조건을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가족의 끈에 바로 돈이 무한책임과 무한사랑으로 기능하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경쟁적 배타성이 가족에 대한 무제한 이타성에서 나온다. 가족에 대한 무한책임·무한사랑은 궁극적으로 이타적 얽힘의 근간이 된다. 민족국가를 가족으로 본다면 초국의 질서가 함께 유추된다. 책임·사랑의 의식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의지에 천륜으로 얽힌 가족 내지 민족이 자리한다. 배타적 사랑이 아닌 이타적 사랑의 본질이 배타성 속에 내재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초국의 질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Q. 이타적 얽힘에 가족과 경제(돈) 요인이 작동하는 원리는
 
A. 에너지의 운동성으로 볼 때 무한성은 찰나의 순간조차 멈춤이 없는 진행형이다. 수학적으로는 실수의 범주에서 값이 정해지는 극한도 마찬가지다. 무한소는 0을 향해 갈 뿐 실수 범주가 될 수 없어 특정한 값이 정해지지 않지만 무한성의 극한은 값이 정해진다. 인류 문명에 위대하게 기여하고 있는 미분의 정리는 극한값이 정해지는 이른바 ‘엡실론 델타’ 논법에 의해 증명됐다. 1인이 미치는 다극화의 무한성이 초국의 질서에 미치는 값도 정해진다. 마치 인터넷망을 통해 특정 서버의 정보가 글로벌 네트워크로 동시에 확산돼 있는 것과 유사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거꾸로 초국의 정보체계인 슈퍼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갖고 있는 가치를 극대화 시킨다. 인공지능이 결부된 슈퍼인터넷은 거대한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가 마치 하나의 커뮤니티 내지 1인의 두뇌처럼 활용되는 시스템이다. 1인의 다극화 또한 슈퍼인터넷 망과 같이 무한성을 띨 때 1인의 의지는 곧 초국의 의지로 가늠된다. 그 근간에 가족과 경제(돈)가 자리한다. (428쪽 : 돈은 사랑할 때도 그리고 욕망할 때도 등장하면서 에너지 흐름을 탄다) 가족이란 혈연은 누구나 ‘나’라는 1인칭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를 기반으로 한 혈연의 확장성은 강자의 논리인 책임·사랑을 유인한다. 민족국가는 책임·사랑의 에너지가 가장 강한 이 같은 천륜의 확장개념이라고 했다. 민족국가가 배타적 이타성을 갖고 상호 이익과 상호 안전 네트워크로 얽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족의 소중함이 단단한 접착제 역할을 해야 한다.
 
Q. 돈의 긍정적 에너지가 1인과 초국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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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돈 에너지는 일 가치다. 일은 이타적 얽힘의 근간이라고 했다. 돈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미학을 따른다. (428쪽 : 생명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돈의 미학은 완성을 향한 불완전의 미학이다) 돈은 가족이란 생명공동체에 필수 에너지다. 돈이 없는 가족은 파산을 맞거나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가족에게 돈의 소중함은 사랑의 찬가이자 생명의 찬미다. 그 소중함은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원천이라고 했다. 가족에게 풍요가 따르지 않으면 혈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은 허상일 뿐이다. 풍요는 부가가치 효율을 항상 극대화 하려는 돈이 그 역할을 맡고 있음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돈은 미학의 완성을 추구하지 않고 완성하지도 못하는 순환의 진행성 파도만 탈 뿐이다. 완성이 아닌 미학의 진화는 인간의 몫이다. (263쪽 : 자본주의에서 돈을 버는 것은 화폐를 벌고자 함에서 출발하면 벌지 못하고 돈을 벌고자 하면 화폐가 선덕의 얼굴로 오는 형식을 따른다) 돈은 화폐라는 수단을 통해 순환한다. 화폐는 책임·사랑을 완성하기보다 불완전한 책임·사랑을 촉발시켜 왔다. 돈 에너지의 순수성에 화폐 에너지의 혼탁성이 혼재된 모습이다. 그래서 돈을 화폐로 보지 말고 인류가 공동으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로 간주하라고 했다. 돈의 진화는 공공적 쓰임새의 확장이자 안착이라는 것이다. 공공성을 강력히 떠받치는 돈이 가족을 넘어 민족국가의 풍요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돈의 미학을 진화시키는 인간의 역할이다. 1인의 거버넌스와 초국의 거버넌스는 돈 에너지를 매개로 상통한다. 매 순간 극한의 네트워크에서 가치(값)가 정해지는 돈의 역할은 1인과 초국을 연결하는 거버넌스에서 신비스러운 존재가 된다.
 
Q. 가족의 소중함은 이해되지만 돈은 여전히 부정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A. 돈을 부정적 측면으로 간주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이해한다고 하면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는 허풍꾼의 위선이다. 돈은 가족의 소중함을 떠받치는 소중한 에너지라고 했다. 가족이 소중하다면 돈 또한 소중한 것은 당연하다. 돈이 주는 부정적 측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돈의 선의에 인간의 악의를 입힌데 기인한다. 돈의 부정성은 곧 인간 자신의 부정성이다. (289쪽 : 돈 에너지 자체를 수렴할 때 진리의 모습으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인식을 돈에 입히면 돈은 마치 거울처럼 그 인식을 다시 비춰준다. 돈은 수없이 다양한 자유시장 군상들의 모습을 담고 비춰주면서 인간과 소통하고 있다. 돈을 소홀히 하거나 미워하고 증오하면 영적 병증에 걸렸다는 것을 자인해야 한다. 돈에 집착하는 욕심이 그 병증이다. 돈이 갖고 있는 냉혹함을 관조하거나 따듯하게 받아들일 때 돈 에너지가 주는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된다. 가족은 생명의 의미를 아는 차원을 넘어 실천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하늘이다. 가족을 소홀히 할 때 필연적으로 빈곤의 나락에 빠진다. 돈이 갖고 있는 본질은 책임·사랑의 이타성이다. 가족을 이루고 가족을 소중히 할 때 반드시 소중한 돈이 따른다. 강자논리인 책임·사랑이 이처럼 돈과 하나로 얽혀 인류의 모든 사건과 인과율을 관통하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과 지난하게 얽힌 돈은 민족국가 연합이라는 초국의 질서를 놓는 강력한 주춧돌이다.
 
Q. 돈을 버는 것과 쓰는 행위 중 무엇이 더 초국의 질서에 부합하는가
 
A. 자유시장의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을 더 소중히 한다. 이 경제 행위는 기본적으로 배타성을 띤 이타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돈 자체만을 소중히 하는 것은 버는 행위가 아니다. 자유시장에서는 타자를 책임지기 위한 행위가 돈을 버는 행위로 간주된다. 그만큼 돈이 갖고 있는 냉혹함과 따듯함을 모두 포용할 때 돈이 벌린다. 돈은 타자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경쟁하면서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돈이 특정인만을 위해 벌린다면 사기나 강도에 다름 아닌 삶의 방식을 타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초국의 질서에서 돈은 모두의 지혜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313쪽 : 자신의 힘과 지혜만으로 효율성 경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타자와의 협력과 공유 또는 공생을 위한 과정이 돈을 버는 과정에 깃들어 있다. 반면 이념주의자들은 선의라는 이름을 거창하게 내걸고 돈을 벌기보다 돈을 쓰는 행위에 집중한다. 분배·평등만으로 나부끼는 정의는 이념가들에게 약방의 감초로 이용되는 허위의 깃발이다. 돈은 버는 과정이 생략될 때 절대 분배·평등의 정의를 이루지 못한다. 돈이 갖고 있는 책임·사랑의 에너지는 쓰는 과정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돈을 버는 과정에 깃든 냉혹함이 분배의 따듯함으로 전해지려면 냉혹함 속에서 커지는 책임·사랑의 에너지를 우선해야 한다. (313쪽 : 돈은 자신만을 위한 효율성의 결과만을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네트워크, 집단 등을 향할 때 강한 지렛대 역할을 해준다) 특정한 망에서 상대보다 더 큰 지렛대를 소유하는 것이 자유시장 내 무한의 효율 경쟁이다. 망은 경쟁 대상이면서 효율을 높여주는 밭이다. 반드시 그 밭에 씨를 뿌려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씨앗을 틔워 폭풍우와 병충해를 막고 거름과 물을 주면서 소중한 돈을 길러내야 한다. 초국의 질서에 기여하는 돈은 혈연의 천륜과도 같은 가족의 범주다. 돈을 허위로 치장한 채 쓰는 이념주의자들은 천륜을 거부한 채 천륜을 행한다고 착각하는 몰염치조차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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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돈을 버는 자유시장이 인류의 미래에 여전히 유일한 희망일 수 있을까
 
A. 인류의 희망인 초국의 질서조차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초국의 질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유시장 또한 당연히 완벽한 인류의 영원한 희망은 아니다. 초국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이념가들이 이 원리를 간과하거나 무시해 큰 실수를 범한다. 초국이 마치 초월적 힘을 갖는 것인 양 오인하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념가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며 선전·선동하기를 예사롭게 한다. 이들은 누구나 평등한 지위를 누리며 행복만 가득한 이상사회가 가능하다고 예사롭게 거짓말을 일삼는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일부도 초국의 이상을 꿈꾼다. 이 때 인류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기생충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초국의 질서는 상호주의에 기반한다고 했다. 이와 상반된 희망이 기생충의 삶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념가들이 추구하는 초국의 이상은 인류 전체에게 끔찍한 사태를 몰고 온다. 이를 막지 못하면 초국의 질서조차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지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마치 슈퍼맨 같은 외적 초월자가 초국의 이상을 실현할 것 같은 환상에 순식간 빠지는 일이 실제로 이미 일어나고 있다. 자유의지가 내적인 에너지를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임에도 이념가들은 외적 질서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오인하기까지 한다. 자유의지가 통제되는 방식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내면의 질서를 끝없이 가꾸어 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다. 내면의 초월적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이다. (339쪽 : 자유의지는 예술처럼 자유의 미학을 옹립해 인간이 왜 살아야 하고 살아 가야 할 이유를 이야기 해준다) 책임·사랑을 중시하는 자유의지가 고양될 때 내적인 초월적 자아를 느끼게 된다. (339쪽 : 내적 자유의지는 자신과 만인의 스승이다) 책임·사랑을 고양하는 의식이 돈에 담길 때 초국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념가들은 선의를 빙자한 고의로 이를 방해한다.
 
Q. 초국의 질서는 결국 부국부민(富國富民)의 질서인지
 
A. 가족·국가·인류는 모양과 형태만 다를 뿐 혈연성을 근간으로 한 프랙탈 구조의 네트워크다. 부국부민은 네트워크 내 부가가치가 항상 넘실대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국가는 물론 그 개인·국가가 만들어 낸 초국의 질서까지 부의 기운이 흘러넘칠 때 인류의 희망적 질서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돈의 선한 긍정성이 신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77쪽 : 시공간의 굴곡이 현실의 수많은 의지들의 표상을 만들어 내면서 자유의지가 갖는 강력한 현실이 만들어 진다. 부는 그 결과물이다) 돈 에너지는 실시간으로 시공간을 변형시키는 힘을 가졌다. 이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자유의지에 내재됐다. 1인 중심의 다극화가 진행형이라는 것은 공공성을 실현해 가는 망의 부단한 노력이다. 뇌가 치밀한 망을 동원해 뇌의 기능을 실현하는 것은 생명의 위대한 공공성이다. 초국의 질서라는 망의 부단한 노력은 결국 자발적 에너지다. 인위성이 가미될 수 없는 질서는 모순인듯 하지만 자연계의 수많은 원리가 작위성 없이 작동한다. 인간의 몸이 초국의 질서와 유사한 체계라는 것이 신비롭다. 뇌가 지배하는 질서와 뇌의 지배와는 무관한 질서가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 이 질서가 흔들린다고 해서 스테로이드제를 투입하면 생명의 질서 근본이 망가진다. 인위성이 필요하다고 해도 근본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초국의 질서가 범하는 실수는 인위성·작위성 유혹이다. 이념가들은 이를 파고들어 인류에게 불행과 불운을 선사해 오고 있다. 수없이 빈곤의 대가를 치름에도 이념가들은 헤어 나올 줄 모른다. 초국의 질서는 돈의 긍정 에너지를 자양분 삼는 부국부민(富國富民)을 절대가치로 삼는다.
 
Q. 민족국가가 존재하되 존재감이 없으면 무국의 느낌이 드는데
 
A. 민족국가는 강렬히 존재하되 존재하는 이유가 과거의 제국주의 배타성과는 전혀 다른데 있다. 민족주의는 숱한 제국논리를 취해 왔다. 하지만 패권형 제국주의는 더 이상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을 개념으로 무르익었다. 민족국가는 조화를 위한 거울 역할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할 뿐이다. 거울은 스스로 존재감을 자랑하기보다 타자를 비추면서 존재하는 강력한 타자지향성 존재감이 있다. 이타적 얽힘의 확산을 위해 민족국가는 다른 민족국가를 비추면서 존재감을 확산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감이 강열하면서 없는 개념이 성립한다. 상호 거울이 되는 상호주의는 상대의 존재 때문에 존재를 확인한다. 거울 같은 민족국가의 존재는 이념가나 이념주의가 득세하는데 따른 초국의 실수를 미연에 막는다. 민족 간 거울은 국가의 존립 이유를 상호 제공받는다. 1인이 가족을 통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듯이 민족국가도 민족이란 광의의 가족을 통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448쪽 : 인간이 살아가야 할 핵심 이유에 일하는 에너지를 의식하고 수렴하며 느끼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일 가치는 일 하는 에너지가 지향하는 결실의 의미다. 결실의 혜택을 보는 최우선 대상이 가족과 또 다른 가족인 민족이다. 나아가 무국의 질서에서는 인류 또한 가족의 범주로 엮인다. (448쪽 : 일하는 에너지를 의식한다는 것은 다자들의 시공간을 실시간으로 하나처럼 엮어가는 항상성이다) 부국부민은 1인의 풍요가 초국의 질서로, 초국의 풍요가 1인의 질서로 호환되는 질서 속에 만들어지는 공동의 풍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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