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cm 훤칠한 키에 꼬불꼬불 곱슬머리,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한현민(17·남) 군은 모델로 데뷔한지 갓 1년을 넘긴 신예다. 짧은 데뷔 기간에도 불구하고 최근 10~20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 군은 그야말로 ‘핫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 군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인종차별을 당하며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 살아온 아픈 경험을 지녔다. 하지만 모델로서 당당히 성공한 그는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당당함을 보였다.
이태원 길거리를 런웨이로…자신감 하나로 막연했던 ‘모델의 꿈’ 이뤄
한현민 군은 오남매 중 맏이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지만 스스로 중간에 포기했다. 야구는 구기 종목 중에서도 유독 돈이 많이 드는데 장남으로서 오남매를 키우는 부모님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옷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훌쩍 크면서 막연하게 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때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학교 선배가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 했죠”
검은 피부 때문에 줄곧 인종차별에 시달렸던 그는 이후 인터넷 쇼핑몰, 각종 의류 브랜드 등의 피팅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물론 시련도 많았다.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막연하게 뛰어든 목표에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소속사가 없는 탓에 섭외부터 연습, 스케줄 관리까지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피팅 모델로 일할 때 시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해외 오디션을 본 적도 있었는데 팬티 하나를 모델 다섯 명이서 돌려 입으면서 촬영해야 할 만큼 열악하고 처우가 안 좋은 곳도 있었죠. 현실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고 힘들어서 좌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다른 피부색으로 왕따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으면서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라 바꿀 수 없다면 주어진 대로 만족하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웃어넘길 만큼의 포용력과 두둑한 배짱은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한 번은 프로필 사진 촬영비만 내면 해외 오디션을 보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한 적도 있어요. 남은 건 프로필 사진 몇 장뿐이었죠. 그런데 오히려 사기당한 일이 저에겐 전화위복이 됐어요. 그 사진을 제 SNS에 올렸는데, 이를 보고 현재 소속사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죠. 그렇게 지난 3월 윤범 대표님을 만났어요. 유동인구가 많은 이태원 길 한가운데서 저를 걷게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물론 가족들도 모두 얼떨떨했죠”
지난해 3월 국내 모델 에이전시 SF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은 한 군은 불과 2주 뒤에 열린 한상혁 디자이너의 ‘2016 F/W 시즌 heich es heich 쇼’ 오프닝 무대에 섰다. 통상 오프닝·피날레 무대는 패션쇼의 메인으로 꼽히는데, 한 군의 경우 데뷔 하자마자 그 메인 무대 자리를 꿰차게 된 셈이다.
“패션디자이너 한상혁 선생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운 좋게 선생님의 2017 S/S, F/W 무대 오프닝 무대에도 제가 오르게 됐죠. 저는 아직도 런웨이에 서는 것 자체가 벅차요. 마음에 드는 새 옷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면 사람들이 제게 던지는 시선을 즐기게 되잖아요. 런웨이도 마찬가지에요. 저를 보면서 ‘예쁘다’, ‘멋있다’ 등을 외치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신기하고 재밌어요”
남들과 다른 피부색, 장점으로 승화…혼혈·다문화가정 위한 마중물 역할 포부
한 군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렸을 적 ‘흑형’, ‘모글리’ 등으로 불리며 심한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느 또래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단순히 피부색만 다를 뿐 순수 한국인이라고 자부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무런 이유 없이 저를 멀리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제가 모델을 한다고 했을 때 무시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네가 무슨 모델을 하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죠. 근데 막상 데뷔를 하니까 제가 접하는 세상도, 저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달라지더라고요”
한 군은 자신의 피부색을 둘러싼 편견과 선입견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를 극복해 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패션쇼랑 화보촬영 때문에 유럽과 미국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곳은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다 섞여 있잖아요. 제가 한국에서 걸어 다니면 튀어 보이지만 거기서는 자연스럽더라고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우리나라도 점점 외국인이 많아지고 다문화가정도 늘어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선입견과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 콤플렉스로 작용했던 검은 피부를 자신만의 특화된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한 군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지난달 21일 여성가족부의 제안으로 '다문화 홍보대사‘로 임명된 것이 계기가 됐다.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감정에 깊이 휘둘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죠. 제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혼혈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를 향해 박수 쳐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도 다른 인종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배수람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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