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한 주부가 올해 6살인 딸과 4살인 아들을 살해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 A(42·여)씨는 자신이 복용하던 우울증약을 자녀들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살해를 저질렀다. A씨는 살해 동기로 남편의 무관심과 생계 문제를 들었다. 14일 서울 서대문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B(44·여)씨가 자신의 11살짜리 딸과 7살 짜리 아들을 살해하고 자해를 시도한 것이다. B씨는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주부 우울증으로 인한 살해·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 주부 우울증에 대한 대처 방안은 미흡한 실정이다. 단순히 ‘병원 가서 상담 받아라’는 식의 조언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부 우울증 문제는 여성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사회 구조에서 파생된 결과인 만큼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주부 우울증 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주부 우울증 실태와 이에 대한 해결방안 등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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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부 우울증으로 인한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서울 서대문구 등 이달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발생했다. 어린 자녀들에 대한 살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전문의들은 우울증 증상이 의심되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대부분의 주부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병력(病歷)이 기록에 남는 것이 부담될뿐 만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부 우울증을 사회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목이 쏠리고 있다. 주부 우울증은 여성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사회 구조에서 파생된 문제인 만큼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치매를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처럼 주부 육아도 비슷한 수준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 우울증에 자살충동까지 ‘위기의 주부들’
울산에 사는 결혼 4년차 가정주부 김미영(31·가명) 씨는 오전 일찍 남편이 회사에 출근한 뒤 집에 아이와 단둘이 남아 육아를 도맡는다. 김 씨는 밥숟가락을 밀치는 아이에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억지로 밥을 먹이는 등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며 하루를 보낸다.
아이를 상대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육체적으로 지친 김 씨는 가끔 대화할 사람 없이 독방에 고립돼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는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가사와 육아에 지쳤던 일들을 털어 놓는다”며 “하지만 남편도 일하고 오느라 지친 상태여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주위에 털어놓지 않았다.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살은 애꿏은 4개월 짜리 아이에게 돌아갔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큰 소리를 치는 등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신경질 낸 후에는 후회감에 자살충동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등 기복이 심한 감정을 추스르기 어렵다.
결혼 5년차 이정미(가명) 씨는 과거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독박육아에 몸과 마음이 지쳐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은 아직 젖먹이를 떼지 못한 아이를 창밖으로 던지고 싶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이 씨는 출산 후 또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사회단절·육아·가사노동 3중고…우울증 걸릴 확률 ‘남성의 2배 이상’
주부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과 함께 모든 일에 흥미를 잃으면서 무기력한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질병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성들이 출산 후 사회활동이 단절되고 육아와 가사노동 부담이 겹치면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월경과 출산 전후, 갱년기 등 여성호르몬 변화가 일어날 때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 부족으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주부 우울증의 심각성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15년 20~40대 기혼여성 13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분만한 여성 10명 중 9명(90.5%)이 ‘산후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33.7%는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을 느꼈으며 2%는 자살 시도 경험을 갖고 있었다. 반면 응답자 중 산후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전문가를 찾거나 병원에 방문한다고 답한 이들은 2.1%에 불과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6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6.9%로 남성(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1년 유병률 역시 여성은 2%로 1.1%인 남성 보다 앞섰다.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여성은 9.8%로 10명 중 1명은 출산 이후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 등 정신장애를 겪는 성인의 2.9%는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들의 50.1%, 자살을 계획한 사람들의 68.7%, 실제로 자살한 시도한 이들의 75.1% 등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경험한 국민 가운데 의사에게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이들은 22.2%에 불과했다. 이는 캐나다(46.5%), 호주(34.9%)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연구 책임을 맡은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적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서비스 접근성 확보 등 정책적 노력이 계속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완 전남대학교 정신과전문의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를 편견 없이 쉽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잔혹한 사건 낳는 주부우울증…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예방 시스템 갖춰야
전문가들은 산후·주부 우울증 예방을 위해 대화와 대외활동을 적극 권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 예방·관리 수칙으로 △주변사람과 대화하기 △전문가와 상담하기 △즐거운 활동 실천하기 △규칙적인 운동하기 △불법약물 사용하지 않기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홀로 아이들을 돌보는 주부들에게 예방·관리 수칙을 실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갓 돌이 지난 아들 1명을 키우는 가정주부 결혼 2년차 백민정(28·여) 씨는 “최근 친구 결혼식에 아이를 데리고 가게 됐다”며 “결혼식이 저녁 시간에 진행돼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는데 친구들이 대화하고 즐길 때 결국 나는 아이 때문에 혼자 집에 올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오는 길에 서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현재 보건당국에서는 △‘아이사랑’ 웹사이트를 통한 전문가 상담 △희망자에 한해 보건소 산후우울증 검사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한 상담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육아에 매달리는 주부들 입장에서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주무관은 “지난해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산전·산후 우울증 검사를 받을 경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면서도 “하지만 현현재 (주부 우울증 환자를)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등 능동적으로 지원 정책을 이행할 여건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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