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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지역 마지막 미개발지’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 사업이 12년째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헌인마을은 내곡동 374번지 일대 13만2379㎡(약 4만평) 규모로 1960년대 나환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세 가구공장과 무허가 판자촌 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다.
서울 강남지역과 성남·용인지역을 잇는 교통요지에 위치해 입지적 조건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으며 2000년대 초 본격적인 개발 추진 움직임이 생겨났다. 건설업체를 지원하는 15개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대주주단이 대출채권 통매각에 합의하고 주간사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나 개발을 희망하는 주민들과 반대파 주민들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강남 마지막 미개발지 헌인마을, 개발 사업 난항 기간 동안 땅값만 3배 상승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헌인마을 개발계획은 가구당 50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총면적 13만2379㎡ 중 10만6417㎡ 주거용지에 2만9698㎡면적의 단독주택 67가구와 7만6718㎡의 부지에 전용면적 165~297㎡ 규모의 7층짜리 대형 아파트 285가구 등 총 352가구를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헌인마을 개발 사업이 본격화 된 시기는 2003년 자연녹지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부터다. 2006년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우리강남PFV(이하·강남PFV)가 시행사로 설립되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강남PFV는 8000억원 규모의 사업비 조달을 위해 4270억원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았다. 시공을 맡은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 등이 각각 절반씩 프로젝트파이낸싱(이하·PF) 대출보증을 섰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던 사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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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시행사인 강남PFC는 분양시기가 늦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누적 손실로 인해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 2011년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순위 34·35위였던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도 PF 만기가 도래하면서 부도 사태에 이르렀고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토지 담보권은 대주주단 소유가 됐으며 강남PFV는 사업권만을 유지하는 처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2008년 서울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13만2379㎡에 고층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건립하기로 한 개발계획을 변경했다. 제1종전용주거지역은 2층 이하, 제2종전용주거지역은 3층 이하의 주택을 건설하는 등 개별환지 계획 범위 내에서 추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정안을 내놓았다.
자연녹지인 친환경 주거단지에 아파트를 지으면 주변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었다.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은 시행·시공사는 난색을 표했다. 막대한 사업비용과 한정된 가구 수를 고려하면 1가구당 30~50억원의 초고가로 분양해야 수지타산이 맞지만 수요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헌인마을 인근에서 20년째 부동산중개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헌인마을의 경우 북쪽에 도로가 위치해있고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남향으로 주택 건축 시 높은 산을 바라봐야 하는 조망이다”며 “주택 입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조망권을 갖춰야 하지만 헌인마을은 그 반대여서 가격이 너무 높으면 수요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 사업을 진행할 때만 해도 헌인마을을 포함한 내곡동 평균 땅값이 700만원이었는데 당시 분양가는 약 3500만원 가량으로 예상됐었다”며 “현재 내곡동 평균 땅값이 200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시행사는 5000만원 수준으로 분양을 진행할텐데 너무 비싼 가격이며 해당 용적률·층수 제한으로는 절대 수익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가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 봉착…멀고도 험한 헌인마을 개발 사업
헌인마을 개발 사업은 우리은행·예금보험공사(이하·예보)·SBI저축은행·외환은행 등 15개의 대주주단이 존재한다. 앞서 대주주단은 두 시공사의 법정관리 후 대출금 회수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선순위 채권자 12개사와 후순위 채권사 3개사의 이해관계가 달라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사업신탁계약에 따라 채권자 전원이 동의하면 토지를 매각할 수 있었지만 후순위 채권자는 매각해도 남는 게 없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었다.
하지만 최근 사업부지 매각을 놓고 대주주단이 대출채권 통매각 방식에 합의하면서 매각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주주단은 원금 손실이 발생하긴 하지만 12년 동안 정체된 이 사업의 정상화와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예보 PF 자산회수부 관계자는 “신탁을 하면 우선순위권이 발생하는데 다른 근저당처럼 채권비율별로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1순위에게 먼저 지급 돼고 2순위에게 지급되는 방식이라 이해관계가 달랐다”며 “10여년 동안 이자가 쌓여 1순위 채권사도 매각 금액을 못 받을 수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선순위 대주단이 결정을 내려줘 일괄매각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대주주단의 토지 일괄매각 이후에도 헌인마을 개발은 한동안 우여곡적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발을 원하는 주민(시행사)과 원하지 않는 주민의 대립이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지주들이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주민들의 불안감은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졌다.
당시 조합은 지주들에게 3.3㎡당(약 1평)당 700만원 가량의 보상가로 토지 매입을 추진지만 일부 지주들은 강남 지역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보상가가 터무니 없이 낮다며 개발을 반대했다. 12년 동안 판매를 중용하는 시행사와 개발 반대 입장을 밝힌 주민들 간 소송도 계속 돼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토지 매각을 반대했던 김모 씨(69·여)는 “헌인마을에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300여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 20여가구만 남았다”며 “처음에는 보상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지금은 감정의 골이 깊어져 문제 해결 자체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초구 도시관리팀 관계자는 “실시계획 인가가 난다고 해도 개발을 동의하지 않는 주민들이 많아 사업 진행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시행사와 주민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소송 등으로 인해 서로 감정이 많이 상해 합의를 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남승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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