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존엄사법’ 개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존엄사’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품위 있게 맞이하는 죽음을 뜻한다. 존엄사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및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할 수 있는 법을 말한다.
그동안 존엄사 허용 여부를 두고 ‘존엄사를 현행 체제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와 ‘법을 개정해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 등으로 여론의 반응은 팽팽하게 갈렸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연명치료 자체가 환자의 인권 무시하는 행위라는 풍토가 생겨나고 해외 원정 안락사 사례까지 생겨나면서 법 개정을 통한 존엄사 허용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죽고 싶어도 죽기 힘든 말기 암 환자들…유명무실 존엄사법 개정 여론 솔솔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우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게시물이 게재됐다. 췌장암 말기 환자의 자녀가 올린 이 게시물은 ‘아버지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법안을 개선 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게시물을 본 많은 국민들이 자녀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글쓴이는 아버지가 현재 암세포가 장기를 비롯해 혈관까지 퍼져 대·소변을 못 가릴 뿐 아니라 말도 할 수 없고 통증 때문에 약을 투여해도 잠을 자기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이제는 고통 없이 죽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이하·존엄사법)에 의해 약물투여를 중단하거나 응급상황 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은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다해도 죽게 놔두지 않는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었다.
현행법상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명확히 없고, 치료해도 회복될 수 없는 상태가 증명돼야 한다. 급속도의 증상 악화도 예상돼야 한다. 사전에 환자의 결정이 있거나 환자가 의사 표명을 하지 못할 때는 2촌 이내 가족 전원이 동의해야 한다. 정학섭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까다로운 조건, 가족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존엄사법은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이 발표한 ‘2017년 65세 이상 사망자 중 시도별 요양병원·요양원 재원기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1인당 사망 전 요양병원·요양원에 평균 입원기간은 22개월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말기 암 등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중환자들의 연명치료 기간이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고려대학병원 임정희(29·여·가명) 간호사는 “오랜 시간 병원에서 근무를 해오면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어르신들을 봐왔다”며 “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르신들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약물장치 등에 의존한 채 있기 때문에 평균 1년 이상 많게는 2~3년 동안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간병인 14년차인 박영란 (60·여)씨는 “교통사고 환자·암환자·노인 환자 등을 봐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는데 그 중 편안하게 생을 마감 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며 “대부분 대·소변은 물론이고 갈증이 나도 물 한 모금 스스로 마실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김정숙 (45·여·가명) 씨는 가족 간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K 병원에서 연명치료 중인 아버지를 7개월 간 간호하고 있다. 김 씨는 “아버지가 폐렴으로 인해 오랜 시간 병원에서 치료를 해왔는데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며 “아버지도 장기간 병원에 있는 바람에 많이 지치시고 괴로워하시는 게 보여 혈액 투석 등을 그만하고 싶어 하지만 가족들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고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 애통하다”고 토로했다.
“고령사회 진입한 한국…고통 외면한 무조건적인 삶 대신 편안한 죽음도 인정해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미국 일부 지역 등에서는 말기 암 환자 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불치병으로 인해 아주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나 의식이 없는 환자의 삶을 단축시키기 위해 치사량의 약물, 독극물 등을 주사하는 것을 말한다.
벨기에의 경우 모든 연령대에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2014년 미성년자라도 자신의 현재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존엄사 대상에 나이 제한을 없앴다. 질 높은 죽음을 위해 벨기에를 방문하는 ‘존엄사 여행’이 갈수록 증가할 정도로 ‘적극적 안락사’는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얻고 있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존엄사와 관련해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의 경우 본인이 죽음을 원하는 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 인간이 신의 영역인 삶과 죽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 등이 반대의 이유로 꼽힌다
정학섭 교수는 “한국은 이미 2017년 전체 인구 중 노령인구가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인구예측에 의하면 2026년경 초고령 사회를 맞을 것이다”며 “이에 따라 병 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차원에서 삶과 죽음의 가치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존엄사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지영 한림대학교 고령사회연구소 전임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문화적으로 아직 ‘적극적 안락사’를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고 종교적·인륜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향후 검토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국 사람들도 해외로 나가 안락사를 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며 “사회에서 수요가 늘어가고 있는 만큼 당장은 어렵더라도 지속적으로 법안을 고쳐 ‘적극적 안락사’ 도입을 단계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배태용 기자 / 생각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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