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이하 상비약) 품목 확대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더욱이 약사들과 시민단체, 편의점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갈등까지 생겨나 사회 분열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8일 안전상비약 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사제와 제산제를 편의점 상비약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결정한다. ‘지사제’는 감염, 소화장애, 장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설사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이다. ‘제산제’는 위산으로 인한 속쓰림과 위통 등의 급성 증상에 사용되는 위장약이다. 거론되는 품목은 대웅제약의 ‘스멕타현탁액’(설사증상 완화), 보령제약의 ‘겔포스엠현탁액’(위산과다·속쓰림 완화) 등이다.
약사업계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편의성 이전에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편의점업계는 “공급량 대비 부작용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라며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편의점 상비약 구매량 날로 증가…부작용 사례도 덩달아 증가
지난 2012년 도입된 ‘편의점 상비약 제도’는 심야나 주말 등 병원과 약국을 찾기 어려운 취약시간대에 일부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약사법에 따르면 일반의약품 중 성분과 부작용, 인지도, 구매편의성 등을 고려해 20개 품목 이내에서 안전상비약을 지정토록 하고 있다. 복지부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종을 편의점 판매 품목으로 지정했다.
제도 도입 이후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최상은 고려대학교 교수팀이 실시한 ‘안전상비의약품 구입행태 및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389명 소비자 중 ‘상비약 구매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414명으로 전체의 29.8%에 달했다. 2013년 14.3%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구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2.9%는 ‘공휴일, 심야시간에 약이 필요해서’가 가장 많이 거론됐다. ‘약국보다 가까워서’(22.8%)라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편의점 상비약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복지부는 지난해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편의점 상비약 품목 조정방안 논의에 돌입했다. 최근 지산제와 제산제를 추가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복지부의 결정을 두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약사회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로 인해 부작용과 오남용 우려가 크다며 품목 확대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편의점 상비약의 의약품 부작용은 1023건에 달했다. 이중 타이레놀 계열의 의약품이 659건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대다수의 약사들은 타이레놀에 포함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간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4년간 아세트아미노펜 부작용으로 인해 6건의 사망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훈 삼육대학교 약학과 교수는 “타이레놀을 일정량 이상 복용하면 최악의 경우 간이 멈추는 부전현상이 올 수 있다”며 “미국에서도 타이레놀로 인한 간 독성 보고가 약 10만여 건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증이 심하다고 10알 이상을 한 번에 먹거나 숙취로 인해 발생한 두통 때문에 먹는 경우 부작용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며 “특히 임산부가 장기 복용할 경우 태아의 발달장애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먹기 전 꼭 약사와 현재 상태와 증상 등을 설명하고 조언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시민들 역시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 움직임에 적지 않은 우려감을 보이고 있다. 자취생활을 한다는 직장인 임성현(29·남) 씨는 “전문가 없이 스스로 골라야 하는데 의학적 지식이 없어 부작용이 생길까봐 걱정될 때가 많다”고 “편의상 편의점에서 구매했더라도 나중에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먹어도 괜찮은지 물어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의 건강과 관련된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아무 때나 구매할 수 있는 흔템(흔히 구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판매자의 전문성 결여 문제는 우려감을 더욱 드높이고 있다. 현재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 점주는 의무적으로 의약품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점원에 대해서는 관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대한약사회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의약품 교육을 받지 않은 점원이 상비약을 판매한 비율은 무려 72.7%나 됐다.
약사회 “국민안전 보다 중요한 것 없다” vs 시민단체 “의약품 접근성 높여야”
복지부의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 제도는 부작용 우려 뿐 아니라 사회 분열까지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성, 편의성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중요한 가치가 서로 맞물리다 보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은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29일 ‘국민건강 수호 약사 궐기대회’를 열어 “취약시간대 의료불편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편의점 상비의약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헌수 약사회 홍보정책국장은 “의료불편을 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편의점 상비약 품목 몇 개를 추가하는 것보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달빛 어린이 병원과 같은 기관을 확대하거나 지역 거점의원의 심야, 주말 당번제 운영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편의점 업계는 약사회 주장을 반박하는 등 상비약 품목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상비약의 대부분은 부작용 예방이나 처치 등에 대해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품목이다”며 “약물 오남용의 우려로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사회는 판매 확대 저지에 몰두 할 것이 아니라 15년 넘도록 방치된 의약품 재분류에 집중해야 한다”며 “안전성이 확보된 다수의 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약품 접근성을 확장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할 일이다”고 밝혔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도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최상은 고려대 교수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편의점 판매 이후 부작용 비율은 2012년 0.0048%에서 2015년 0.0013%로 줄었다”며 약사회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같은 약이라도 약국에서 팔면 안전하고 편의점에서 팔면 부작용 위험이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각 이해관계자 간에 갈등의 골이 날로 깊어지자 일부 전문가들은 편의점 상비약의 부작용 방지를 위해 약사의 복용지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재훈 삼육대학교 약학과 교수는 “가장 최상의 방법은 전문가가 관리해주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약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경고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며 “복약지도를 대체할 수 있도록 중요한 부작용을 언급해 소비자가 확인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한빛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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