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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강금원 대한민국 명장

“뼈아픈 가난 이겨내고 자동차정비 명장 됐죠”

진실된 삶으로 대한민국 명장 반열 등극…후학양성·전기차 AS구축 목표

조성우기자(jsw5655@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11-13 00: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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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완도에서 홀어머니와 어려운 시절을 보낸 강금원(사진) 대한민국 명장은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정비 분야 명장 반열에 오르게 됐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과 미래차 AS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글 모르는 어머니와 세상에 던져졌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찢어질 듯한 가난에 부잣집 식모살이까지 하셨고 전 삼촌 집에 얹혀 살았죠. 지금 생각하면 끝없이 공부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동차 정비 분야의 명장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론 후학양성과 함께 미래차 정비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쓸 예정이에요”
 
세상의 모든 일이 인간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환경 속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이다.
 
강금원 자동차 명장은 홀어머니와 함께 거친 세상을 헤치고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많은 방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강금원 자동차 명장은 최근 정비 분야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강 명장의 삶의 실타래를 풀어 본다.
 
홀어머니와 세상에 던져져…군 시절 접한 자동차 정비가 인생을 바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강금원 명장은 유년 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건강이 좋은 않은 어머니는 육지와 섬을 오가며 생계를 이어갔고 강금원 명장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파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족이라곤 어머니가 전부였어요. 그때는 ‘난 글 모르는 어머니와 세상에 던져진 존재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가난한 섬마을에서 가장 빈곤하게 살았죠.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으셨음에도 육지와 섬을 오가며 물건을 팔고 일을 하시면 일당을 받아 생활을 이어가셨어요. 저는 바다 건너 육지로 나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꺼란 생각에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죠. 하지만 매번 검문소에서 붙잡혔어요”
 
강 명장은 가난과 함께 친구들의 놀림과 무시와도 맞서야 했다.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괄시를 받았고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이 강 명장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다.
 
“아버지가 없고 형제도 없는데다 어머니마저 힘이 없었죠. 그래서 많은 괄시를 받았어요. 괜히 놀림을 받고 또래 친구들에게 맞기도 했죠. 그때는 세상이 거꾸로 보였어요. 나만 가난하고 나만 가족이 없는 느낌이었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제가 굉장히 난폭해졌어요. 어른도 무서워하지 않았죠. 어머니를 놀린 친구가 있으면 화장실로 데려가 때리기도 했어요”
 
그런 강금원 명장이 안쓰러웠던 교회 안주인은 그에게 서울로 상경할 것을 권유했다. 안주인은 서울에 있는 외삼촌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상황을 설명했고 강 명장이 서울의 한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 고등학교 시절 홀로 상경해 외삼촌과 함께 지냈던 강금원(사진) 명장은 외삼촌의 주폭을 견디며 성실히 학업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생계을 연명하던 강 명장은 군대에서 정비의 매력에 빠져 전역 직후 정식으로 정비를 배우게 됐다. ⓒ스카이데일리
 
“집 근처에 150년 된 교회가 있었어요. 교회 사모님이 저에게 많은 관심을 주셨어요. 제가 사고라도 치고 오면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고 저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방황하니 서울의 외삼촌 집으로 편지를 보내셨어요. 조카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이후 저는 서울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공업고등학교를 다니게 됐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첫 발을 디딘 서울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던 공업 분야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외삼촌이 술에 취한 날이면 폭행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평생 농업을 배우던 놈이 공업을 공부하니 너무 어려웠어요. 2학년 때가 되니 공업이란 걸 조금은 알게 됐죠. 이후론 중상위 성적을 유지했고 3학년 때에는 반에서 7등을 했죠. 당시 외삼촌은 학교 버스를 운전하셨어요. 외삼촌은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술을 3병 정도 드셨죠. 그리곤 저를 많이 때리셨지요. 그래서 도망도 다녀봤고 심지어는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죠”
 
강 명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그런 그는 군대에서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그전까지 그는 정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군에서 자동차를 고치며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고등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했는데 졸업 이후 학교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전기 설비를 고치는 일을 했어요. 군대에선 대대장의 운전병 보직을 받았죠. 당시 전방에는 정비병이 따로 없어서 운전병이 손수 자동차를 고쳐야 했어요. 언젠가 출장 전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걸리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죠. 시간이 지나 해가 뜨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다시금 시동을 걸었는데 경쾌한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어요. 그때 ‘정비가 내 길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끊임없는 노력 통해 자격증 취득…미래차 AS 선두주자 될 것
 
강 명장은 군 전역 후 자동차 정비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비싼 학원비가 부담됐지만 어머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정규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강 명장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역하는 그날 자동차 정비학원을 찾았어요. 당시 5개월짜리 정규반을 등록하기 위해선 1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어요. 당시 어머니는 서울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계셨는데 몇 개월 치 월급을 가불을 해 저에게 보내주셨죠. 그 돈을 가지고 학원을 등록했고 자격증을 취득했죠. 그 후엔 학원 강사로도 일했어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높은 상위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16개의 자격증을 갖게 됐죠”
 
강 명장은 다양한 자격증을 바탕으로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에는 여러 정비소를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장에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강금원 명장은 지난 1996년 자신의 정비소를 차렸다.
 
“다양한 자격증을 바탕으로 당시 인천에 있던 대우에 입사했어요. 이후엔 대우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만든 공업사에 취업을 했죠.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실행해 보기 위해 가장 열악한 정비소에서 일하기도 했죠.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점차 실력을 쌓았고 지금은 24년차 정비소 사장이 됐어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강금원(사진) 명장은 후학 양성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본인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기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행사에도 동행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강했던 강 명장은 삶에 여유가 생기자 곧장 대학 문을 두드렸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었기에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강 명장은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교 교수들의 권유로 국내 최고 권위인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하게 됐고 2012년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정비소를 차린 직후 대림대학교에 입학 했어요. 급변하는 자동차 환경을 직접 보고 체득하고 싶었으니까요. 이후 석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취득했고 박사는 국민대에서 취득했죠.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어요. 많은 것을 보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죠”
 
“교수님들이 명장에 도전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사실 저는 명장이란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제가 쓴 학술 논문·저서·실적 등에 대해 평가를 받았죠. 특히 정비 분야에서 KS서비스 인증을 주도한 것과 현장에서 배운 것을 바탕을 만든 매뉴얼 정립 등이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아요. 또 열심히 살았다는 진심도 통한 것 같아요”
 
이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가능성 있는 학생들에게 직접 기술을 교육하고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본인의 집에서 숙식까지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로 강연을 많이 하고 있어요. 숙련기술원에서 기술 이전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죠. 지방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5명을 불러 주말동안 저희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정비를 가르치기도 했죠.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직접 자동차 행사장도 데리고 가고 있어요. 누군가는 피곤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어요”
 
아울러 강 명장은 열악한 부분인 미래차 AS에 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는 소비자와 정비사의 안전이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관련된 교재를 집필하고 교보재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최근에 전기차 등 미래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권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AS분야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출발조차 못하고 있어요. 전기차의 경우 4만5000볼트가 흐르는데 운전자나 정비사도 모두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전기차 AS에 대한 교재와 교보재를 만들어 해당 분야가 성장에 일조하고 싶어요. 또한 전기차 AS 분야의 명장이 되고 싶어요”
 
[조성우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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