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 이른바 호남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내년 4월15일 치러지는 제21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진보 진영의 심장’으로 불리며 진보정당인 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졌던 호남 지역에서 탈진보·탈민주당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호남 지역민들 사이에서 경제정책 실정으로 삶이 더욱 팍팍해졌다며 민주당 지지를 고민하는 여론이 빠르게 확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내년 총선은 문재인정부의 ‘중간평가 무대’인 동시에 정국 주도권의 향배가 좌우될 ‘한 판’ 승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나아가 차기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갖는 만큼 여야 각 당이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치는 등 어느 총선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의 변화에 귀추가 주목되는 배경이다.
민주당 텃밭 탈환 자신감 속 하나 둘 등 돌리는 호남 민심
호남 지역은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지역이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 곳 역시도 진보정당인 민주당과 같은 뿌리에서 파생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변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는 ‘정권교체’에 힘입어 민주당이 다시 강세를 띄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열했다. 현재 민주당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대통령·당지지율이 내년 총선까지 유지될 것이라 전망하며 텃밭 탈환을 자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단체장과 의회라는 ‘지방 권력’을 장악한 점이 총선에서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호남의 민심이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에게 보내는 지지율이 출범 직후 70%였다가 현재는 50%대까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어려운 민생경제, 연이은 인사 참사 등으로 인해 정부·여당에 대해 마냥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만 있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지율 하락세는 호남 지역민들의 반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광주에서 만난 택시기사 최일호(가명) 씨는 “이전에는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지금은 다른 분위기다”며 “손님들도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실정에 실망과 불만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목포 내 전통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윤진석(가명) 씨는 “현 정부·여당이 열심히 일하고는 있지만 북한 비핵화에만 너무 힘을 쏟는 나머지 어려운 서민의 삶이나 이 지역의 발전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대로라면 이 지역 사람들도 내년 총선에서는 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를 돌릴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재인정부가 구태의연한 적폐청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민생현안에는 다소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어려운 경제상황 등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전 정부에 대한 청산에만 과도하게 몰입해 실망했다는 여론이 상당했다.
목포역에서 만난 강일수(가명) 씨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데만 너무 몰입해 정작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서민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며 “물론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성토했다.
진보의 성지 호남 지역에 부는 황교안 바람…“종횡무진 현장정치 신선”
최근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호남 의원들 사이에서는 ‘제3지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양당 소속 호남 의원들이 결집해 정부·여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견제하는 세력을 만든다면 이 지역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최근 정치권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열한 정쟁을 벌이는 바람에 국회가 장기간 ‘개점휴업’ 상태로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거대 양당 구도를 깨트려야 한다는 지역 민심이 적잖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제3지대론’에 대한 광주·전남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 민심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제3당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당시 국민의당에 큰 지지를 보냈지만 국민의당이 다시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열하면서 제3당 역할은 커녕 호남 정치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광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희준(가명) 씨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들을 전폭 지지했지만 그들이 지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믿음이 깨졌다”면서 “앞으로는 당을 보고 투표하지 않고 후보를 본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진보정당의 텃밭’으로 인식되던 광주·호남에서 새로운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활발한 현장정치를 선보이는 황교안 대표의 행보로 인해 보수정당에 대한 반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광주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장경조(가명) 씨는 “예전에는 보수정당하면 치를 떨 만큼 반감이 있었던 이 지역 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며 “황교안 대표가 최근 자기 당 소속 의원들의 망언에 대해 진정성있게 사과하고 또 활발한 현장정치를 선보이자 자유한국당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처럼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민주당 쪽을 찍어줘야지 하는 생각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며 “이제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생각으로 많이 바뀌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젊은층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호남도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이승구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