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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무역분쟁의 시발점은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대법원이 내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이다. 미쓰비시 등 일본기업에 대한 자산압류 및 매각명령 결정에 아베 정부가 발끈하며 한국경제의 급소를 찌르는 보복조치로 해석된다. 우리 수출의 주력품목인 반도체의 핵심소재 공급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정부는 100여개의 보복카드 중 이제 겨우 한 개가 나온 것뿐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베 총리는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 한국에게 더 이상의 무역특혜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 약속이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을 말하는 것으로 무상 3억달러와 유상 2억달러 합계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의 제공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다분히 이번 기회에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을 확실하게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협박에 한국의 경제계와 정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물량확보를 위해 일본에 바로 날아가는 등 대책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예상 피해액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도되자 야당에서는 일본에 대통령특사를 파견해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협상이 아니라 일본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수출규제를 철회시켜야 한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에서 그 교훈을 찾아 처신해야 한다. 어느 역사적 사건에 현재의 한일 간에 야기된 무역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훈이 들어있을까. 필자는 993년 거란(요)의 1차 침입을 당당하고도 대담한 논리로 물리치고 오히려 강동 6주를 돌려받은 서희(徐熙)의 예를 이번 사태의 해법으로 추천하고 싶다.
역사상 최고의 외교가이자 협상가로 불리는 서희는 광종 때 내의령을 지낸 서필(徐弼)의 둘째 아들로 942년(태조 25년)에 태어났다. 학업에 정진해 960년(광종 11)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고, 972년(광종 23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쳐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승승장구하며 벼슬이 날로 올랐다.
한편 하남성 요택(遼澤)에 살던 선비족은 서진의 8왕 난 때 용병으로 중원으로 들어갔다가 아예 나라를 세워 5호16국 시대를 열었다. 모용(慕容)부의 전연(燕)과 후연, 우문(宇文)부의 북주(周), 탁발(拓跋)부가 세운 북위(魏)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양견(楊堅)과 당나라를 세운 이연(李淵)도 선비족 출신이다. 고구려와 중국의 중간에 있던 옛 땅에는 후예인 거란족과 여진족이 살게 된다.
(요택의 위치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85460참조)
줄곧 고구려에 예속되었던 거란족은 잠시 당나라 편에 서기도 했지만 나중에 대진국(발해)을 구성하는 주요부족 중 하나로 커졌다. 그러다가 10세기 초 강력한 지도자 야율아보기라가 등장해 부족들을 통합하여 대진국의 오성장군 및 요왕(遼王)으로 봉해졌다가 926년 쿠데타를 일으켜 대진국을 무너뜨리고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요나라는 942년(태조 25) 사신 30명과 낙타 50필을 보내 같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와 화친을 맺으려 했지만 태조 왕건은 이를 거절하며 사신들을 가두고 낙타들도 모두 굶겨 죽였다. 후대 왕들에게 남긴 유훈인‘훈요십조’에서도 거란과 거리를 둘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당시 요나라는 내정이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굴욕을 당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요나라에서 6대 성종이 즉위하면서 정치를 안정시키며 세력을 크게 키워나갔다. 993년 요나라는 마침내 고려의 침공을 단행했다. 목적은 고려가 한족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사촌형제와도 같은 요나라에 적극 협조하라는 위협사격의 성격이 강했다. 소손녕을 대장군으로 하는 요나라 80만 대군은 첫 전투에서 봉산군을 함락시키고 고려군의 선봉장을 포로로 잡으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소손녕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고려 조정에 “우리가 이미 고구려의 옛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데 고려가 마음대로 강점하고 있기에 정벌하러 왔으며 천하통일을 할 우리에게 귀의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없앨 것이니 속히 항복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송나라와의 대결전을 앞둔 요나라 입장에서는 파트너로 끌어들이려는 고려와의 전투는 서로 병력의 손실만 가져올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려 조정의 대신들 대부분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거란에게 땅을 떼어 바치고 항복하자는 의견을 내니 왕도 그렇게 해서라도 전쟁을 끝내야겠다고 결정했다. 비록 정치는 야만적이지만 경제·기술은 대국인 일본정부의 위협에 대한민국이 처한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993년 요나라가 고려에게 항복을 종용했듯이 현재 일본 아베정부는 이번 기회에 우리를 무릎 꿇리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서희는 “전쟁의 승패는 병력의 강약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적의 약점을 잘 알고 행동하는데 있다”며 “거란이 고구려의 옛 영토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위협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적군의 기세가 크다는 것만을 보고 우리가 바로 서경 이북의 땅을 바친다면 실로 만고의 치욕이 됩니다. 원컨대 어가를 돌려 궁으로 돌아가시고 신 등으로 하여금 한 차례라도 싸움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 후에 이런 의논을 한다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며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다.
한편 고려 조정에서 여러 논의가 오가는 사이 소손녕은 고려의 답변이 늦는 데 따른 보복조치로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했다. 고려군이 이에 맞서 싸워 크게 이겼다. 그러자 재공격을 못하게 된 소손녕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종용하며 면담을 요청했다. 드디어 거란과의 담판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 서희는 스스로 사신으로 나서 거란군 진영으로 찾아갔다. 드디어 서희와 소손녕의 세기의 회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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