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관련 실내악을 하는 단체는 많지만 저희처럼 오직 전통음악에 현대식 어법을 도입해 창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동서악회는 대중적인 음악보다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고 깊이 있으며, 국악 부문에서조차 잘 다뤄지지 않는 그런 우리 음악들을 재조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통음악 전공자로써 현대음악 작곡가분들, 또 연주자분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고 참신한 일이죠.”
지난해 판소리 수궁가의 ‘자라 호랑이 만나는 대목’을 바탕으로 재창조된 퓨전 국악인 이날치의 ‘범내려온다’ 공연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400만회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국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현대식 어법을 사용해 이를 재해석하는 단체 ‘동서악회’의 이복남 회장, 길석근 부회장, 이해정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전통음악 배워보자’ 신념 아래 모인 음악가들
2009년 창단된 동서악회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해 서양음악의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전통악기 연주자들로 이뤄진 동서악회는 창단 목표 자체가 전통음악에 대한 연구, 나아가 전통음악을 현대적인 요소들과 결합하여 우리 시대의 우리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뉴저지 주립 럿거스 대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해 현재 명지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이복남 동서악회 회장이 창립 멤버로서 단체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첫 발단은 우리 음악으로 관현악곡을 썼을 때였어요. 어떤 논문을 쓰려는 과정에서 쓴 곡이었는데 곡을 쓰면서 정말 저 스스로가 한국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걸 통감했어요. 한국인인데 한국 음악을 모르다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또 언젠가는 꼭 배워보겠다는 그런 갈망도 있었던 거죠.”
“당시만 해도 국악이란 정말 생소한 분야라서 접하기조차 어려웠어요. 그런데 함께 현대음악을 전공한 다른 작곡가분들도 은연중에 한국 음악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들이 있으셨더라고요. 이참에 배워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다같이 국악 전공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그분이 우리 가락의 기본 리듬은 장구라면서 장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소개받은 분이 저희 길석근 부회장님이예요.”
길석근 부회장은 국악의 타악 부문에 조예가 깊다. 현재 우리가락연구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전통음악에 뜻이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전통음악의 정서와 기조를 가르치며 이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동서악회 내 작곡가 회원들의 창작곡에 아낌없는 조언도 한다.
그런 길 부회장의 밑에서 본격적으로 장구를 배우던 이 회장과 다른 작곡가들이 우리 가락에 매력을 느끼고 또 배운 것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 것은 예술가로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국악과 서양식 음악을 합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렇기에 저희가 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무대도 기회도 좀처럼 찾기 어려웠죠. 어쩔 수 없이 그렇다면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우리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자, 해서 만든 게 바로 동서악회예요.”
현대음악과 전통음악 사이의 벽, 서로의 선율 이해하며 힘든 여정 이겨내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을 함께 다루며 어우러지도록 하는 단체답게 회원들은 모두 현대음악과 전통음악, 두 가지 전부 조예가 깊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명창 및 산조 전수자이자 경기가야금 앙상블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는 이해정 사무총장도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을 가리지 않고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저는 가야금을 전공했지만 항상 현대음악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경기가야금 앙상블에서 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앞으로 우리 전통음악이 갈 길은 현대음악과의 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중 길 부회장님께서 동서악회를 소개해주시면서 전통음악을 공부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주셨어요. 제가 생각하던 방향과 잘 맞는 것 같아 감사히 제의를 받아들여 초창기 멤버로서 단체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다만 초창기에는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길 부회장은 설명했다. 현대음악과 전통음악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잦았다. 또 이들의 작품을 들은 현대음악 작곡가와 국악 전공자들은 각각 이게 무슨 현대음악이냐 혹은 이게 무슨 전통음악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제일 힘들기는 했어요. 서로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전통음악을 바라보는 색깔론, 현대음악을 바라보는 색깔론이란 결코 같을 수 없었고, 따라서 제가 전통음악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선과 이복남 회장님이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그리는 선이 많이 달랐지요.”
그러나 그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해결됐다. 현대음악 작곡가라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음악을 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덕분이었다. 이해정 사무총장은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을 조합한 동서악회의 곡이 곧 우리시대의 전통음악이 될 수 있지 않겠냐며 서양식 기법을 차용했더라도 결국 한국인이 한국 음악을 하는 것이니 곧 우리 음악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서악회는 매해 새로운 주제를 정해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어요. 단순한 퓨전 음악이 아니라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곡의 서사와 그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저희 작곡가분들의 작곡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하고 각자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 등 원곡에 대한 배움을 바탕으로 그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다는 과정만큼은 모두 같아요.”
세미나를 통해 충분한 지식을 쌓은 작곡가 회원들은 그 지식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곡을 창작해낸다. 길 부회장은 그들의 작품에서 원곡이 가진 정서와 이야기, 원곡의 색깔이 지워지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때로는 길 부회장과 작곡가의 의견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작곡가가 원곡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곡 변형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경우 타당성을 검토한 뒤 작곡가의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자문을 진행한다고 길 부회장은 설명했다.
작곡가 회원들의 분투와 길 부회장의 자문, 마지막으로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의 조합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곡을 마주한 연주자들의 끝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동서악회의 작품은 매해 열리는 단 한 번의 정기연주회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성과 관객 이해 위한 소통… 우리 시대 고유 음악으로 널리 알려지고파
동서악회는 창립 이후로 줄곧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통음악들을 연주해왔다. 제7회 정기연주회에선 ‘경기12잡가’를 풀어낸 ‘춘향연가’를 선보였고 제8회와 9회 두 번에 걸쳐 진행한 ‘종묘제례악’, 제10회 탈춤 음악을 주제로 한 ‘탈들이 날아와 소리가 되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낯선 곡들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 회장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서악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예술성과 관객과의 소통이에요. 동서악회가 다루는 곡들이 대부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보니 곡을 쓸 때에도 어떻게 써야 예술적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요. 그래서 저희는 원곡과 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관객들이 연주회를 즐길 수 있도록 곡의 시작 전에 창작곡이 아닌 원곡의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하려 하고 있어요. 영상을 활용하거나 현대무용팀과 협업하는 등의 방법을 차용하는 것도 관객의 이해를 도와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에서죠.”
이해정 사무총장은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춘향연가’를 예시로 들기도 했다. ‘춘향연가’는 본래 ‘경기12잡가’를 현대음악과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것이다. 다만 토속 민요인 ‘경기12잡가’의 내용을 관객들의 이해가 쉽도록 풀어내기엔 어려움이 있어 춘향의 사랑노래를 빌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현대적 어법으로 작곡한 것이다. ‘춘향연가’ 연주회에는 동서악회의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유명 현대무용가들도 참가했다. 흑인, 백인으로 이뤄진 현대무용팀이 한국 무대에서 한국 음악에 녹아드는 것을 보면서 인종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곡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이 총장은 말했다.
“현대음악은 어려워요. 전통음악은 지루하죠. 어렵고 지루한 것을 함께 두면 자칫 더 기피하게 될 수도 있어요. 가령 저희가 한 종묘제례악도 그렇지요. 종묘제례악이란 조선 임금들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긴 음악이에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전공자들도 잘 손 대지 않아요. 저희 정기연주회를 보러 오시는 관객들도 이를 어떻게 보완하고 풀어냈는지 궁금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대다수는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로써 즐겁게 받아들이시고 만족스러워하세요.”
동서악회는 언젠가 단체 내 작곡가들이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곡들이 상설화되고, 나아가 우리 시대의 우리 음악으로서 자리잡도록 하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종합예술로써 많은 관객과의 소통이 가능한 대중성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이복남 회장은 말했다.
“저희는 전통음악에 대해 배움으로써 접근해 상생하는 길을 찾아가는 단체예요. 모르고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알고 영감을 얻어 재창조함으로써 본질적으로 그를 이어나가려 하는 것이죠. 언젠가 저희의 작품들이 자연스러운 우리 음악이 되어 저희가 아닌 다른 악단에서도 연주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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