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문재인정부를 비롯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들의 대표 부동산 정책이자 공약인 임대아파트 확대를 둘러싼 회의적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임대아파트를 기피하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 붙여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효과만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대아파트를 지을 부지에 민간아파트를 짓는다면 실제 공급확대 효과를 낳을 수 있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는 데 대해 ‘집값 하락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온다.
실제 임대아파트에 대한 국민 인식은 단순 기피를 넘어 혐오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나타났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린 초등학생들조차 임대아파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임대아파트를 지칭하는 혐오 표현까지 등장하는가 하면 임대아파트 거주 학생을 따돌리는 현상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엘사·휴거를 아시나요”…어른·아이 할 것 없이 임대아파트 혐오·기피 현상 확산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최희정(가명·여) 씨의 가족은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 왔다. 처음 입주했을 당시만 해도 가족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꽤 기뻤다. 살면서 몇 가지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크게 와 닿진 않았다. 서울 어디에도 임대아파트 임대료 수준의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딸과의 대화 이후 생각이 싹 바뀌었고 지금은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 중이다.
당시 최 씨는 딸로부터 ‘우리 집이 누구꺼냐’는 질문을 받았다. 중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곧장 묻는 의도를 물어봤다. 딸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최 씨는 질문의 경위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딸은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고 했다. 충격을 받은 최 씨는 한 동안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 최 씨는 “11살 아이들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 처음엔 황당했지만 지금은 딸에게 미안한 감정 뿐이다”고 고백했다.
서울시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김현진(가명·여)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김 씨의 아들은 성격이 쾌활한 편이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부터 아들이 갑작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춘기가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느꼈는데 아들로부터 이유를 듣게 된 후 충격에 휩싸였다. 김 씨의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은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반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아들은 반 친구들이 아들보고 ‘너 엘사냐, 휴거냐’라고 물어본다고 했다”며 “내 아들이 자기가 원치도, 의도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학교에서 무시 받는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서럽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무리를 해서라도 ‘이 아파트를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엘사’와 ‘휴거’는 각각 ‘LH 사는 사람’, ‘휴먼시아 거지’ 등을 일컫는 신조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조롱할 때 쓰이는 단어다. 이 신조어들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은연 중 임대아파트 차별…고급아파트와 동 학교 배정 시 차별 두드러져
맘고생을 하는 이는 부모뿐만이 아니었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린 학생들 중 일부는 부모에게 속사정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속을 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 강동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생 허예은(가명·여) 양은 매일같이 등교하는 길이 우울하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허 양은 “학교 친구들이 ‘나는 OO아파트(고급 아파트) 사는데 너는 LH 산다며’라는 식으로 매일같이 나를 놀린다”며 “그런 아이들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LH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이 놀린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데 엄마가 슬퍼할까봐 아직까지 참고 지낸다”며 “LH같은 아파트가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고급 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학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각각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거리 때문에 같은 학교로 배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아파트 주변 민간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 한 편이다.
한 고급브랜드 아파트와 준공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임대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E초등학교 한 학생은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고급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만 논다”며 “나도 반에 있는 친구들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데 SNS나 메신저도 단톡방(단체 메신저방)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E초등학교의 또 다른 학생은 “처음엔 내가 사는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인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반 친구들이 내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며 “친구들은 서로서로 누가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우리 가족도 임대아파트에 안 살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어린 초등학생으로까지 번진 임대아파트 기피 현상에 화살은 공공임대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정부·여당을 향하고 있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공공임대 정책 때문에 차별과 혐오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E초등학교 학생의 한 학부모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 임대아파트를 수없이 짓고 있는데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현상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임대아파트를 꺼리고 있다. 차라리 임대아파트를 지을 땅에 민간아파트를 많이 지어 자연스럽게 집값이 내려가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공임대 기피 현상을 바꾸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임대주택을 더 공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 단지에 임대 아파트를 섞어놔도 아이들은 누가 임대로 살고 있는지 금방 안다”면서 “임대주택 기피 현상이 사라지긴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미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8%로 OECD 평균에 도달했다”면서 “미입주도 속출하는 상황에서 임대주택을 계속 짓는 것은 무리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이라는 유럽 국가들, 일본 등은 5% 미만이고 미국은 1%대다”며 “이들도 임대주택 기피현상이 사라질 수 없음을 인지하고 연구 끝에 어떤 집에 살더라도 임대료를 보조해 주는 정책을 꺼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거 복지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주택 시장을 안정화 시키려면 공급이 잘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된다”면서 “규제 완화,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국민들 대다수가 내 집을 가지고 싶어한다”면서 “분양 받을 수 없는 임대주택을 많이 지을 것이 아니라 저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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