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난치병 투병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다시 일어나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2-02 08:54:43

 
▲박병헌 언론인·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쾌유 기원하는 감동의 레이스 열려
풀코스 41회나 완주한 불굴의 정신
가난과 역경 떨친 늦깎이 마라토너
20년 전 세운 기록 아직도 ‘넘사벽’
이젠 우리가 용기와 격려 줘야할 때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 종합운동장에서는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치러졌다. 국민 마라토너인 ‘봉달이’ 이봉주의 쾌유를 기원하는 감동의 레이스가 펼쳐진 것. 난치병으로 투병중인 이봉주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스포츠 스타, 육상 동호인 등 30명이 함께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완주했고, 이봉주도 어렵게 동참했다. 마지막 바퀴에선 이봉주가 직접 주자로 나서 200m를 질주했다. 이봉주가 ‘한국 육상의 미래’ 비웨사와 손을 맞잡고 결승 테이프를 끊는 순간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고, 이봉주도 큰 힘을 얻은 듯 했다. 몸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지만 투병 이후 달리기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마라톤 생애 42번째 풀코스 완주(?)는 잊지 못할 감동 그 자체였다.
 
대수술 받았지만 몸 상태 아직 나빠
 
이봉주는 지난해 1월 모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사이판 전지훈련 촬영 도중 타이어 끌기 훈련을 하다가 통증을 호소한 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때서야 자신의 질병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후 6월 척수지주막낭종 제거라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 병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꼬이거나 목이 뒤틀리면서 돌아가는 등 통증을 동반하는 근육 이상이 나타나는 희귀병이다. 복근이 당겨져 허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마라톤이 곧 인생이었던 이봉주는 목이 ‘ㄱ’자 모양으로 앞으로 굽어 왕년에 마라톤을 뛰던 강인함과 근성을 찾아볼 수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국내외 공인 대회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무려 41번이나 완주한 이봉주는 선수 생활 시절 성실 그 자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41번을 완주할 수가 있었다. 2시간03분59초의 세계 최고기록 보유자인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현역 최고령 베테랑 선수이자 종전 세계기록(2시간04분55초) 보유자 폴 터갓(케냐) 등 세계를 주름잡았던 어떤 마라토너도 생애 마흔 번의 풀코스를 뛰지는 못했다. 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고난의 행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봉주보다는 빨랐어도 이봉주가 뛴 그 엄청난 거리를 다시 달릴 수 없기에 이봉주의 진가는 더욱 빛이 날 수 밖에 없다. 이봉주가 공인 대회에서만 뛴 거리는 서울~부산을 두 번 왕복하고도 남는다. 대회를 위한 산악 및 도로 훈련까지 포함하면 그 거리는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일 게다. 이봉주는 동갑내기 친구인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뒤 4년 만에 은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가족의 힘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올림픽에 무려 4번이나 출전했던 이봉주가 이토록 쉬지 않고 20년을 줄기차게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마라톤을 뛰며 힘들 때마다 어린 시절 농사일을 하며 고생한 어머니를 떠올렸다. 마라톤의 고통은 고된 농사일에 다섯 자식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2002년 4월 결혼한 뒤 두 아들을 두었지만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달리고 나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그의 마라톤 인생 20년은 파란만장했다. 그에게 많은 별명들이 따라붙지만 ‘늦깎이 마라토너’란 말처럼 그의 인생을 잘 표현해 줄 단어도 없을 것이다. 가난함은 그에게 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충남 천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평범함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던 그는 여느 아이들처럼 공차기를 좋아했지만 축구팀에 들어갈 순 없었다. 부모의 뒷바라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그 흔한 상장 하나를 받은 적도 없다. 오래 달리기를 잘했던 그에겐 상장과 메달은 아예 남의 차지였다. 그가 어린 시절을 얼마나 가난하게 지냈는지 사진조차 없다.
 
등록금 면제 받으려 세 번이나 전학
 
등록금을 면제받기 위해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전학 다닌 이봉주는 고교 졸업 후 돈도 벌고 야간대학(서울시립대)도 다닐 수 있다는 서울시청을 택했다. 그가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뛴 것은 1990년 10월 전국체전에서였다. 2시간19분15초로 2위를 차지했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육상선수 등록 4년 만인 21세에 시작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중장거리와 10km를 주로 뛰었다.
 
1996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8분26초(2위)를 기록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그는 그해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조시아 투과니(남아공)에게 불과 3초 차이로 뒤져 은메달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입상한 것이어서 기뻤지만 금메달을 놓친 게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넉 달 뒤 열린 후쿠오카마라톤에서는 투과니를 제치고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07분20초의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게 됐고, 이 기록은 20년 넘도록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남아 있다. 비록 2위에 그쳤지만 이봉주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이다.
 
훈장보다 값진 ‘국민 마라토너’ 호칭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에서부터 2009년 서울국제마라톤에 이르기까지 그가 달릴 때마다 국민들은 그의 거친 심장 박동소리와 함께 호흡하며 박수를 보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경쟁 선수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부진했고, 2001년 에드먼턴세계육상선수권에선 중도에 기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나 끊임없이 도전하는 오뚜기 같은 그의 모습 속에서 국민들은 강한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국가가 주는 그 어떤 훈장보다 국민들이 모두 아낌없이 불러주는 ‘국민 마라토너’라는 값진 칭호가 생겼다. 마라토너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40세이던 2009년 3월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마감하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비록 14위에 그쳤지만 국민이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던 이유다.
 
선수시절 강인함과 투지 떨쳐라
 
황영조가 마라톤계를 일찌감치 떠나 홀로 국내 마라톤을 이끌었던 이봉주는 승부사만은 아니었다. 그는 푸근한 인상처럼 진정으로 동료를 아끼고 후배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기에 그를 따르는 후배들도 적지 않다. 가난과 역경을 딛고 불굴의 마라토너로 군림했던 이봉주에게 이제는 우리가 용기와 힘을 실어줄 때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한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달리고 싶다는 게 이봉주의 소망이다. 비록 난치병을 앓고 있지만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마라톤 코스를 숱하게 누빈 그였다. 불과 10여년 전 보여줬던 투지와 강인함을 재연해 건강한 몸으로 팬들 앞에 다시 설 수 있기를 기원하고, 확신한다. 마라톤을 달릴 때 힘이 되어준 노모와 가족들이 여전히 옆에 있지 않은가. ‘봉달이’ 이봉주 파이팅!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우, 제작자, 감독 등을 오가며 만능엔터테이너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정우성' 빌딩이 있는 동네의 명사들
김문경
원일종합건설
김지아(이지아)
BH엔터테인먼트
정우성
아티스트컴퍼니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미세먼지 (2022-01-26 18:0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