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 View]-보복살인
신당역 살인에 ‘보복’ 용어 사용 유감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9-23 00:02:40
 
▲ 박선옥 국제문화부장
 14일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역내 순찰을 돌던 여성 역무원이 동료 직원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던 끝에 결국 그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가해자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19일 서울경찰청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범행의 잔인성 등을 고려해 가해자 전주환(31)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17일 경찰은 용의자 전 씨에게 적용된 혐의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특가법상 보복살인은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징역 5년 이상인 형법상 살인죄보다 형량이 무거운 만큼 죄가 더 크다는 뜻이다.
 
이날 언론에서는 일제히 “신당역 살해범 혐의 ‘보복살인’으로 변경”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법률 용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제목만 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범죄는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당할 만한 일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보복살인으로 변경한 것은 가해자의 죄의 무게를 덜어 주고자 하는 것이겠지.” 사실 고백하자면 기자에게도 언뜻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물론 기사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야 오히려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죄로 규정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자는 이후 주위의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다. 신당역 사건이 ‘보복살인’이라는데 그 의미를 알고 있느냐고. 대부분은 “피해자가 보복당할 만한 일을 했느냐”고 되물었는데, 설명을 해 주면 그중 일부는 “보복살인이란 용어가 부적절하다. 누구든 설명을 듣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할 거다”며 분개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보복(報復)’이란 ‘갚을 보(報)’와 ‘돌려보낼 복(復)’이 합쳐져서 ‘남이 저에게 해를 준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네이버 국어사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복수’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이해하고 쓰는 단어인데 법률적으로 독자적인 해석을 붙이고 있으니 국민의 인식과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특가법 제5조의9(보복범죄의 가중처벌 등)에서는 형사사건의 피고(가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나 진술을 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를 ‘보복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복’의 개념은 국민이 이해하는 의미가 아닌 특정한 상황에 국한해 적용된 것이어서 이번 사건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와 유사하게 잘못 사용된 용어로 오해와 피해를 양산하는 것이 ‘리벤지 포르노’다. 복수를 뜻하는 ‘리벤지(revenge)’와 외설적인 영상을 가리키는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용어이지만 사실상 ‘복수’의 뜻에도 맞지 않고 ‘외설적’인 의도와도 동떨어진 영상이 가해자에 의해 악의적으로 오용되면서 그런 용어로 유포되었을 뿐이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설에 따르면 2000년대 초에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매체가 만들어 내놓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은 허핑턴포스트가 내놓은 헌터 무어 출처설이다.
 
헌터 무어는 소위 미국판 ‘N번방’을 만들어 큰돈을 번 사람이다. 그는 2010년 ‘IsAnyoneUp(dot)com’이라는 ‘리벤지 포르노’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사용자들이 누드 여성의 사진과 비디오를 익명으로 게시하도록 했다. 시작은 무어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여자들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그들의 동의 없이 사진을 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범죄행위는 결국 2014년 FBI에 체포되는 것으로 결말이 났고, 최근 넷플릭스에는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한 남자’라는 제목의 관련 다큐멘터리가 올라와 있다.
 
이 같은 비겁하고 불법적인 영상을 만든 가해자가 ‘리벤지 포르노’라고 붙인 이름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는 건 피해자에게 두 번 가해하는 일이다. 하물며 ‘보복살인’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이해와 다르게 용어가 사용됐다면 당연히 바꿔야 할 것이다. 특히 피해자와 유족을 생각한다면 ‘보복’이란 단어는 어불성설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서, 어느 날 덴마크의 왕자 햄릿에게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동생 클로디우스가 자신을 독살하고 왕관과 왕비를 차지했다면서 꼭 복수를 하라고 당부한다. 복수나 보복이라는 단어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 온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용된 ‘보복살인’ ‘리벤지 포르노’란 용어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3
감동이에요
0
화나요
1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41(청담동) 세신빌딩 9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5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